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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sisoso Feb 28. 2019

애만 낳아봐라

아주기냥 낳기만 하믄 아주 내가 내가내가

길고 긴 임신 10개월의 대장정이 끝이 보일 수록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를 만난다는 설렘 그리고 내 몸이 온전히 내 몸이 된다는 기쁨.

우리 꼭 다시 만나 했던 10개월 전의 나.

내 의지로 안 하는 것과 할 마음이 없었음에도 못하게 하면 다 하고 싶은 이상한 심보.

아이만 낳으면 내 미뤄왔던 것들을 하나씩 해치우리라- 나는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아! 라며 자만했던 지난날의 나.

나는 요일별 5-7개 들어있는 임부용 면팬티를 열 달 내내 입었고 출산 후에도 일 년 정도 입었던 것 같다.

임신 전에도 그다지 예쁘고 화려한 속옷이나 무조건 짝을 맞춰 신경 써서 입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이만 낳으면 꼭 하늘하늘 예쁜 속옷 세트를 사야지 하고 다짐했다.

맥주라고 했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술자리 ,모임 ,수다 ,안주 ,내가 사랑했던 이자카야에 앉아 하이볼이며 사케며 내키는 데로 마시고 깔깔거리는 밤. 마시고 마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에 오면 눈밑까지 번진 아이라인을 대충 지우고 내 방 싱글 침대에 아무 생각 없이 잠들던 밤까지 모두 포함 그립고 그립다.

임신기간 동안 입은 옷들을 생각하면 기능 기능 기능 이런 기능성들이 없다 오가닉이니 전자파를 차단한다는 둥 바지 위에 복대가 붙었지만 티만 내리면 감쪽같은 마술 바지까지 다 됐고!!아무런 기능이 없어도 좋으니 그저 내가 맘에 들고 예쁘면 그만인 것들을 걸치고 싶었다.

전 편에도 적었지만 결혼 전부터 예쁜 머리스타일 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데 괜스레 아이만 낳으면 미스코리아 라도 될 참이었을까

염색? 펌???? 그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허무하게

탈모조차 방어 못하고

박영규 아저씨 같은 이마를 갖게 되었다

이제까지 이런 스타일은 없었다-
이것은 탈모인가 털갈이인가


여기저기서 지겹도록 들은 뛰면 안 돼 뭐는 안돼 저것도 안돼 이것도 안돼 이제 온전히 나만 쓰는 내 몸이 되었으니 내 맘 데로 할 거야-

"출 산 후 "전에 "출 산 중 "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가볍게 생략 할 출산이 아니다

나는 제왕절개를 했는데 나중에 제왕절개 수술 동영상을 보곤 이렇게 배를 세네 겹을 가르고 벌리는 수술을 내가 했다는 게 놀라웠고-

뱃속에 아이를 안전하게 꺼내는 기술에 감동했다.

징그럽기보단 뭉클했다.

가장 놀라운 건

도대체 마취란 무엇이길래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가... 하는 공포감

영화 같다.. 무섭다. 아무 일 없던 것 맞지?

그런 느낌

어쨌든 출산부터 회복도 보통일이 아니었지만

생략하고

육아 스타트-

마치 무인도 외딴섬에 떨어진 내가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점점 밀림에 적응해 오랑우탄의 행색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발견된 여자가 있다면 딱 지금 내 모습 일까 싶었다 아이가 어릴 때니 종일 말도 한마디 안 하고 있는 날도 많았고 정말 우울할 일도 참 많았는데 너무 정신없고 바쁘고 조심스럽고 모르는 것 투성이라 우울할 틈 조차 없었다

나는 그래도 몸이 좀 가벼워진 출산 후가 낫다고 생각도 더러는 했는데 어쨌든 사람 하나를 키워내는 건 하면 할수록 어렵다. 아이가 크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늘어 내 몸이 편해지면 위에 쓴 버킷리스트 정도는 하고 산다- 하지만 아이가 좀 크면 아이의 인성까지도 잡아주어야 한다. 나는 내인성도 한참 부족한 사람인데 그러니 너도 대충 하라곤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쉬운 게 없다-

5살 된 딸아이랑도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육아 1-2년이 가장 힘들었다.

지금 글을 읽는 1-2년 차 육아맘이 있다면

지금 느끼는 우울감 상실감 남편과의 깊어져 가는 골.. 모두 잠들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흐르는 눈물 모두 당신 탓이 아니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요즘 나의

가장 큰 버킷리스트는

"나를 잃지말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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