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피식

네잎클로버 찾기? 쉽다.

피식 5

by 수더분한 버마재비

나에게 네잎클로버 찾기는 '누워서 떡먹기'이다. 식은 죽 먹기보다 조금 난이도가 있는 것으로 하겠다. 보통 사람들이 네잎클로버를 찾을 확률(0.02%)이 낮은 만큼 자칭 네잎클로버 찾기 달인( ?)이라는 나이지만 작정하고 찾더라도 한 점도 발견할 수 없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일이 그렇듯 전혀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으니까. 행운이라는 것은 우연이라는 감질나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데, 쉽게 내어준다면 그것은 이미 행운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나는 쉽게 찾는 편에 속한다. 시골집에 가면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 같다. 시골에 가면 해도 해도 티도 안 나는 일들로 허덕이지만, 어쩌다 오래된 나무 책꽂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보면 소설책 사이에서 마른 풀냄새가 바스락거리는 네잎클로버가 튀어나오곤 한다. 다섯잎클로버가 걸어 나와 그 시집이 내게로 온 날자와 그날의 느낌이 적힌 속표지를 만날 기회를 들이밀기도 한다.


뭐 네잎클로버 찾는 일이 대단한 일이겠는가마는 혹여라도 '행운'이라 불리는 그것을 찾고 싶어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관심이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적어본다.

네잎클로버(영어: Four-leaf clover)는 네 잎을 가지는 토끼풀 속의 기형이다. 예부터 전해지는 미신에서는 행운을 가져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 미신의 역사과학적 근거는 불분명하다.)

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토끼풀(Trifolium repens)의 돌연변이가 아닌, 일시적인 기형 현상으로 네 잎이 된다.

대략 10,000번에 한 번 꼴로 네잎 클로버가 핀다고 알려져 있다.(0.01%) 그러나 실제로 5백만 개의 클로버를 조사한 결과 네잎클로버가 핀 것은 5천 번에 한 번 꼴로 알려진 확률의 2배이다.(0.02%) 또한 네잎클로버는 옮겨 심는다고 그곳에 또 다른 네잎클로버는 나지 않는다.

(위키백과)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5천 개 중 하나인 확률로 숨어있는 네잎클로버를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보겠다.

우선 네잎클로버를 전혀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배수진을 치고 출발해야 한다. '행운'이라는 것이 좀 뻐긴다고 생각해 두자. 흔하다면 이미 그것은 행운이 아닐 테니까.

이런 마음가짐이 되었다면, 우선 클로버가 수북하게 뭉쳐있는 곳은 피해야 한다. 내 눈으로 하나하나 만져질 수 있는 곳에서 그 보물 찾기를 시작해야 한다. 클로버 이파리가 수북이 쌓여 이파리 하나하나의 선을 구별하기 어려운 곳보다는 짧은 키에 펼쳐지듯이 자리 잡은 곳을 눈여겨봐야 한다.

푸른 이파리가 수북한 곳의 클로버는 갈길을 잃은 날,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번화가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어지럼증만 일으킬 뿐이다.


다음, 얇게 펼쳐진 클로버 군락을 보았다면 내가 한번 훔쳐볼 수 있는 눈뼘만큼 테두리를 하나 그려야 한다. 동그랗게 그려도 좋고, 네모지게 그려도 좋다. 별모양을 그려도 좋지만 그러다 사팔뜨기가 되기 쉬우니 좀 참아줬으면 한다. 꼭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넓이만큼, 내 눈 그릇만큼 하나만 그려야 한다.


이제 그려진 테두리 안에서 하나하나 눈으로 만져봐야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던지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던지 그건 맘대로 해도 된다. 대각선도 가능하다. 이때 주의할 점은 뭉뚱그려 보지 말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봐야 한다. 고요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아, 너는 작은 세잎클로버구나. 아, 이런... 너는 잎에 구멍이 났구나. 오, 이런... 갉아먹히기도 했구나...'

눈을 빨리 움직이면 안 된다. 로버는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여기서, 키포인트!

잎이나 다섯 잎 또는 여섯 잎, 네 잎이상의 클로버를 만났다면 이제 주변을 끌어당겨서 더욱 가만히 들여다봐야 한다. 아무리 고요하게 바라보았을지라도 지나간 곳을 다시 돌아가 보면 주위에 더 있을 확률이 높다. 네잎크로버를 찾는다는 목적은 잊지 말고 세 잎도 촘촘히 봐야 한다. 세 잎으로 보였던 것이 다시 보았더니 네 잎이상인 경우가 있으니까.


내친김에 다슬기 잡기까지 가보겠다.

다슬기를 잘 잡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절대 터벅터벅 걸어 다니면 다슬기를 잘 잡는 사람이 아니다.

다슬기 잡이 고수는 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본다. 내가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만. (단, 허리를 펴고자 일어났을 때는 멀리 바라봐줘야 한다. 혹여 혼자 너무 멀리 나왔는지, 비가 올 것 같진 않은지 주변 상황도 살필 수 있고 눈의 피로도 가신다.)

그렇게 한눈에 들어오는 만큼의 테두리를 눈으로 그려놓고 그 안에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쓰윽 본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면 좀 어색하다.)

먼저 돌 밖으로 기어 나와 있는 다슬기를 주워 담고, 돌을 하나 뒤집어 그 바닥을 본다. 돌을 뒤집다 보면 흙탕물이 일수 있으니 그 일렁임이 가라앉을 때까지 또 가만히 기다렸다 눈이 맑아지면 그 바닥을 보고 다슬기를 주어 담아야 한다.(유리판이 딸린 플라스틱 수경을 이용해 잡는다면 물속을 들여다보기가 더 쉽다. 바람이 일으키는 물살의 주름은 유리판이 펴주지만, 물속에서 일어나는 흙과 모래의 일렁임은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살살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돌을 또 뒤집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절대로 물살을 일으키며 돌아다니는 일은 없다. 주변에 찰방찰방 흙탕물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면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슬기를 주워 담아야 한다.

가끔 꼬리만 보인 채 돌 틈에 머리를 숨긴 동사리(우리동네에서는 불뭉치라 부른다)를 만나기도 한다. 물고기 중 가장 움직임이 만만한 녀석이다. 가만히 숨도 멈춘 채 뒤에서 잡으려 손을 들이민다. 하지만 손 안에서 파다닥 버둥거리다 비늘의 까슬거림만 남기고 미끄덩 달아나 버리곤 한다. 동사리 잡이의 아까운 손맛은 다슬기 잡이가 주는 덤이다.




클로버는 토끼풀, 시계풀로 불리기도 한다. 꽃말은' 행운'이라고 한다. 세잎클로버도 네잎클로버도 행운이라고 한다. 애초에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었으니 잎을 세 개 가졌건 네 개 가졌건 모두 클로버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네잎클로버에만 행운의 의미를 부여한다. 네잎크로버는 낯설다. 그래서 흔하디 흔한 세잎 클로버는 희소성의 가치를 가진 네잎클로버에게 '행운'의 의미를 넘겨주고 만 것 같다. 세잎클로버의 행운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클로버가 네 잎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세잎클로버를 발견했다면 세잎클로버가 곱게 말려진 후 코팅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행운의 세잎클로버'라는 문구와 함께.


네 잎클로버는 원래 기형이었거나, 클로버의 생장점 상처로 인해 새로운 잎이 나면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즉 선천적 기형이었거나 후천적 기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네잎클로버를 심고 다시 교접을 통해 네잎클로버를 재배하여 유통 판매하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호텔 뷔페음식의 샐러드나 장식용, 또는 커피전문점의 오트밀크나 그린티 위에 네잎클로버를 띄워 행운을 선사하기 위해 납품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도 네잎클로버가 갖은 희소성과 의미부여로 인한 것이기에 네 잎클로버가 가지고 있는 '행운'이라는 스토리가 없다면 그야말로 그냥 토끼풀에 불가한 것이다.


중2 때로 기억한다. 가을 오후, 열린 창으로 들어온 햇살은 아이들의 오른쪽뺨에 스며들고 있었다. 자율학습시간, 반장이었던 나는 교탁 위에서 책을 보다가 고개 들어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들을 보았다.

맨 앞에 앉아 뒷머리를 긁적이는 까무잡잡한 작은 얼굴의 아이, 입을 삐죽이 내밀고 책을 보는 아이, 덧니 사이로 웃음을 내보이며 장난거리를 찾는 아이, 왼쪽 얼굴을 책상에 댄 채 오른손으로 공책에 끄적이는 아이. 맨 뒷줄에 앉아 턱을 괴고 쓱쓱 볼펜을 움직이며 유행가를 적고 있는 아이(입모양만 보아도 안다).

이때 작은 눈이 반짝이는 아이가 뒤에 앉은 친구에게 뒤돌아 보며 뭐라 소곤거리다 말고 교탁 앞의 내 눈치를 흘깃 보았다.

'쉿, 조용.'

나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얼굴을 찡그려 보였고, 우리는 이내 둘 다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그때, 느닷없이 아이들이 너무 예쁜 것이었다. 너무 뜬금포 이야기겠지만 그 순간 아이들의 얼굴에는 가을 햇살이 들어와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친구들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한 반에 오십 명이 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모두가 평범했지만, 모두가 비범했다.

그날 이후 그런 행운은 잘 찾아오지 않았다. 몇 번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은 수의 아이들이 내게 들어온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세잎클로버가 네잎클로버로 바뀌는 마법 같은 순간이지 않았을까?


정말 별것 아닌 것으로 수다를 떨었다.

네잎클로버를 방금 찾았다. 이 글을 쓰다가.

눈치챘을지 모르겠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해찰한다고 자주 엄마에게 야단맞곤 했다. 시킨 일과는 다른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는 조용히 산만한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네잎클로버였다. 행운인 듯하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잘하는 것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었. 그것이 행운이었다.

그래서 네잎클로버도 잘 찾는다.

다슬기도 잘 잡는다.

그것도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행운이었다.

잔잔한 일상에서도 가만히 보면 행운인지 행복인지 모를 것들이 빼꼼 꼬리를 보인다. 온전하게 보는 것은 내 몫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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