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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Jun 01. 2023

고향의 봄

                                                                                                    

등장인물     

- 일천네 : 아이 하나 남기지 않고 삼십 년 전 먼저 간 남편의 이름이 ‘일천’ 임

             가장 연세가 많은 할머니, 동네 할머니들의 다툼을 해결하는 너른 품이 있음.     

- 앗쌀네 :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고 동네사람들이 지어준 이름.

             아들만 셋 둔 할머니로 5년 전 남편이 사망.

             둘째 아들 진승과 서운네 일곱 번째 딸인 서운이의 결혼으로 서운네와는 사돈관계임. 

- 서운네 : 딸만 일곱을 낳아 젊을 적 늘 울상을 하고 다녔으나 이제는 가장 풍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음.

             일곱 번째 딸 이름대로 서운네로 불림.

             아들을 셋 둔 사돈관계인 앗쌀네를 부러워함

- 이쁜네 : 할머니들 중 제일 젊으며,얼굴이 고와서 이쁜네라 불림.

              남편은 치매로 요양시설에 들어간 지 5년 되었음.

              전답을 다 팔아 하나 있는 아들 철진의 사업에 투자, 얼마 전까지 생활이 넉넉했으나

             최근 어려워짐.

     

무대     

- 마을 회관 안 방      

     

제1막

 마을회관 안 방. 무대 가운데 벽면에 걸린 시계는 열 시를 가리키고 있다. 

무대 오른쪽으로 싱크대. 싱크대 위로 전기밥솥과 양념통, 그릇등이 보이고 싱크대옆 빈 공간에 쌀가마, 양파, 마늘 꾸러미들이 보인다.

왼쪽으로 안마기, 족욕기, 러닝머신등 운동기구가 널브러져 있다.    

 

앗쌀네 :(쌀을 씻으며 혼잣말한다) 워메, 시방까지도 암도 안왔능가 비네! 잉. 내가 밥 당번잉께 그럴 수백

           끼 없다 쳐도 이쁜네는 왔어야제. 나 보다 겁나게 젊은것이 뭣 허니라고 아직까정 안 온다냐?

일천네 : (문소리와 함께 들어오며) 뭣이라고 혼자 떠들었싼당가?

앗쌀네 : 워메, 일천 성님 나오시오? 삼월 장독 깬다드만 날이 겁나게 쌀쌀허지라. 근디 성님은 당번도 아님

           서 뭐 헐라고 요렇게 빨리 나온다요?

일천네 : 집에 있음 뭐 헌당가? 말 걸어줄 남편이 있어? 아들이 있어, 딸이 있어? 요라고 여기 나와 있는 게 수

            제. 근디 오늘 반찬은 뭐시당가?

앗쌀네 : 긍께라이...

          (싱크대 위에 올려놓은 죽순과 조기를 들어 보이며) 지가 죽순 밑에 깔고 양반괴기 올려서 지져 불라

         고 가져왔는디 성님 입맛에 맞을랑가 모르겄소잉?

일천네 : 양반괴기? 막내아들이 보내왔등가? 처가가 영광이라 허등마 조기 맛도 보고... 좋겄네.

앗쌀네 : (샐쭉한 표정으로) 좋기는 뭐시 좋아라! 아들 세 놈 키워났드만 통 코빼기도 안 보이고 명절에만

         살째기 왔다가 지 마누라 눈치나 봐감서 처갓집으로 후딱 갈 생각만 허는디...

일천네 : 아들이건 딸이건 코빼기도 볼 수 없는 내 앞에서 차암 잘하는 말이여 잉?

앗쌀네 : 워메 워메 성님, 지송 허구만이라! 그려도 무자식이 상팔자일 때도 있응께 너무 서러워 마셔라.

일천네 : (손을 내저으며) 시끄럽고! 이쁜네가 같이 밥 당번 아녀?

앗쌀네 : (벽걸이 시계를 쳐다보며) 맞는디 아직 안 나왔어라.

일천네 : 요렇게 밥 해묵는 것도 이 달이면 끝이여. 사월이 되믄 들로 산으로 일이 천지여서 워디 요라고 빠끔

            살이 맹키로 오블오블 앉거서 노닥거릴 새가 있가니...

앗쌀네 : 그라지라. 요것도 이 달이먼 끝나고 인자 겨울이 와야 또 우리가 요라고 모여서 밥을 먹지라. 그나저

             나 이쁜네는 얼매나 맛난 것을 맹글어 갖고 올라고 아직도 안 온가 모르겄어라.

          (일천네를 싱크대 쪽으로 잡아끌며)일천성님, 이왕 일찍 나온 김에 양반괴기 좀 자작하게 지져주시오.

        성님 손에는 참기름이 나오는지 손만 대면 꼬숩고 찰지게 잘 만들어내잖여라.

 일천네 : (마지못해 한다는 듯이)하여간 자네 그 뻔지르르한 말에는 안 넘어가고 못 배긴당께. 참나!     


무대 왼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서운네가 들어온다

서운네 : (무엇인가 물어볼까 말까 하는 표정으로 들어오며 일천네 옆으로 다가가 작은 소리로) 

          저어그 일천 성님...

일천네 : (놀란 표정으로) 왜 근당가? 얼굴이 백지장맨기로 희케져 갖고 들어옴서 나는 왜 불른당가?

서운네 : (작은 목소리로) 성님! 아이고 성님...

앗쌀네 :(밥솥에 쌀을 앉히다 말고) 음마! 사돈은 점심 당번도 아님서 요로코 일찍 나온다요?

         (서운네 얼굴을 보고 놀라며) 워메 어디 아프요?       

서운네 : 서운이가... 우리 서운이가...

앗쌀네 : 뭐? 우리 메누리가 뭔 일이 있소? 아니먼 우리 아들한테 뭔 일이 생겼다요?

서운네 : 아니... 그것이 아니고라...

일천네 : 아니 서운네. 뭔 일인디 그런당가? 얼른 말을 해보소.

서운네 : 긍께라 그것이...

앗쌀네 : 워메 답답한 거! 사돈 말을 해 보랑께라. 우리 둘째 아들네헌테 뭔 일이 생겨 붔다요? 얼릉 말을 해보

           랑께라.

서운네 : 그것이 없어져붔어라.

앗쌀네 : 그것이 없어져붔어라?

일천네 : 그것이 뭔 소리여? 그것이 뭐신디?

서운네 : 우리 서운이가 해준 목걸이가 없어져붔당께라. 일곱 번째도 딸이라고 지그 아부지가 서운허다고 이

             름도 서운이라고 지어준 그 서운이가 해준 목걸이가 없어져붔당께라!

일천네 : (차분하게 서운네 손을 잡고 마주 보며 묻는다) 긍께 서운이가 해준 목걸이가 없어져붔다는 것이여?

서운네 : 맞어라. 지난 설 날 사위가 보너스 받은 것으로 해줬다고 목에다 걸어준 금목걸이가 흔적도 없이 사

            라져붔당께라...

앗쌀네 :(흥분하며 큰소리로 ) 긍게 서운네, 다시 말해서 사돈! 금목걸이가 사라졌다는 것이지라? 우리 둘째

              아들 진승이가 보너스 받아서 사돈 금목걸이를 해줬다는 것이지라?

서운네 :(흠칫 놀라며) 그.. 긍께... 그것이라... 그것이 어찌케 된 거냐면 말이여라...

앗쌀네 : (서운네를 바라보던 눈길을 거둬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린다) 뭣이 어찌케 된 건지 다 알아붔응께

          딴 말은 마시요! 

서운네 :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며 서운네 팔을 잡고) 저기 사... 사돈...  그것이 아니고라...

앗쌀네 : 긍께 금이야 옥이야 키워논께 이 놈의 자식은 지그 엄니는 제껴불고 장모님 금목걸이를 해드렸단 말

             이제잉? 오냐 진승이 이놈의 자식, 나한티는 은까락지 하나도 안 해줌서 지그 장모라는 사람한테는 

           작은 가락지도 아니고 목걸이를 해줬단 말이제라?

서운네 : 그것이 아니당께요. 사돈!

앗쌀네 : 한 동네서 뻔히 사돈끼리 사는 줄 암스롱 아들을 셋씩이나 낳았다고 좋다고 미역국 먹던 나는 구리

           반지 하나도 안 갖다 줌서 딸을 일곱씩이나 낳아서 코 빠뜨리고 댕기던 서운네한테는 금목걸이를 

          바쳤단 말이제잉? 그것도 우리 아들 진승이가 말이여! 

       (서운네 팔을 뿌리치며) 일천 성님, 저 집에 좀 갔다오께라! 열불 나서 가만있을 수가 없구만이라!

        아무리 자식 놈이라도 따질 건 따져야제라!     

앗쌀네 문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허둥지둥 밖으로 나간다.


일천네 : (앗쌀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고, 앗쌀네! 시방 중요헌 것은 그것이 아닌 것 같은디...

서운네 : 워메, 성님! 금붙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정신이 미쳐갖고 안 할 말을 해분 것 같은데 어찌끄라?

           앗쌀네 성질에 우리 서운이 또 눈물바람 허는 거 아닌가 모르겄어라?

일천네 : (혀를 끌끌 차며) 한바탕 바람이 일겄구만... 앗쌀네 이름이 뭣땜시 앗쌀이겄어... 헐 말은 씨알도                 남기지 않고 다 해분다고 앗쌀허다해서 붙여진 이름 아니당가. 

         그건 그렇고 서운네, 잘 찾아보고 허는 이야기여? 목걸이 말여...

서운네 : 그러믄이라. 장롱을 발칵 뒤지고 혹여 잘 못 뒀나 해서 찬장까지 다 뒤졌구만이라. 

일천네 : 잘 생각해 봐, 이 사람아! 원래 잘 두면 잊어버리는 법이여. 잘 챙겨둔다고 어디다 뒀을 것이구만.

서운네 : 아니여라. 정말  착실하게 챙겨둔다고 잘 열지 않는 서랍장에 놔뒀는디 감쪽같이 사라졌당께라.

          죽음에 옷이랑 같이 서랍장에 넣어놨단 말이여라.

일천네 : 죽음에 옷이랑? 귀신이 곡해분 것 아녀? 흐흐(웃는다)

서운네 : 일천 성님은 이 와중에  웃음이 나온당가요?

일천네 : (멋쩍은 얼굴로) 긍께 왜 죽음에 옷이랑 같이 놔두고 그랬당가?

서운네 : 이제와 생각해 보니 괜히 그랬어라... 성님도 알잖아라.(옛 생각에 잠긴 얼굴로) 딸을 둘만 낳을 때까

            지는 그래도 괜찮았제라. 물론 시어머니야 첫째를 낳았을 때부터 고운 눈으로 절 보지 않으셨지만 그

           래도 시아버지랑 냄편이 그런 저를 안쓰르와 했응께 그래도 전딜만 했어라. 근디 셋째부터는 그것이

            아닙디다. 나도 저것이 고추만 달고 나왔으먼 싶더라고라. 첨으로 젖부리를 물리는디 코 끝에 찡허게

           전기가 옴서 끝도 갓도 없이 눈물이 흘릅디다. 그깟 아들이 뭐간디 이러나 싶어서 기어코 아들 낳아야

          지 싶드랑께라. 그래서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가 되었지라. 그 세월 동안 지가 뭣이랑 씨름하고

         산 줄 아요? 

일천네 : 뭣인디?

서운네 : 베틀이었어라.

일천네 : 베틀이라... 그려 그 시절에 삼베 안짜본 사람은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제.

서운네 : 성님도 알제라. 우리 시어머니 독헌 거?

          베 한필 짜고 내려와야만 밥을 줬던 양반이어라. 그래도 가실 때는 '아가 나 먼저 간다' 하고 가시긴 합

           디다만...

일천네 : (갑자기 생각난 듯이)근디 자네 죽음에 옷 이야기허다 독한 시어머니 이야기까지 가부렀네?

서운네 : (못들은 척) 그 독한 시어머니가 가신 뒤에 본께 당신 꺼 죽음에 옷을 미리 챙겨놓으셨더라고라.                 서운이 아버지 것도. 그리고 제 것도 챙겨놨지 뭐여라. 일곱 딸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느라 삼베

           팔아 돈 대기도 힘들었을 것인디 제 것까지 남겨놨더라고라.

일천네 : (다시 갑자기 생각난 듯이) 그래서 자네는 죽음에 옷 옆에 금붙이를 뒀다고?

서운네 : 그랬어라. 근디 더 우스운 것은 말이여라. 지도 저승 갈 때 입을라고 딱 한 사람 해 입을 삼베옷감을

           몰래 남겨났더라는 것이여라. 고것은 제 것이었어라...  지는 제 것만 챙겨놨는디 그 독한 시어머니는

             딸 일곱 낳았다고 그라고 시집살이시키던 메누리, 제 것까지 냄겨놨더라고라...

일천네 : (서운네 말 자르는 것을 포기한 듯이)그래서?

서운네 :서운이 아부지도 그랬듯이 저도 그 옷을 입고 떠나겄지만 인자는 죽음에 옷 같은 것은 필요 없는 세

          상이 돼야 가고 있응께 금붙이가 나을 성싶어서 놔뒀지라. 내가 죽은 뒤에 남겨 놓은 것은 있어야 헐

           것인디 요것이라믄 그래도 괜찮겄다 싶었지라.

일천네 : 참 나. 서운네도...

          (궁금하다는 듯이) 근디 딸이 일곱인디 금붙이가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인디 다 없어져분 것이여?

서운네 : 아니라... 딱 그 목걸이만 없어져붔당께요!

일천네 : 그라믄 도둑이 든 것은 아니제. 보통 도둑놈 같으먼 다 갖고 가제. 아니제? 삼베로 맨든 죽음에 옷이

             얼매나 비싼디... 그것도 가져가불었어야제...

서운네 : 워메! 성님 말 들어봉께 그 말이 맞소이! 그저 목걸이가 사라졌다는 것에 반 미치광이가 되야갖고 아

            무 생각도 못했당께라.

일천네 : 다시 한번 집에 가서 찾아보고 그래도 없으면 다른 수를 내보세.

           어여 다시 가서 찾아봐. 아녀, 나랑 같이 가서 찾아보자고!

           이 와중에 밥하는 것이 중요허겄어?      

일천네와 서운네 회관 방에서 함께 나간다.

(암전)  

   

2막

시계는 열한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문소리와 함께  마을회관 방으로 노란 양푼을 든 이쁜네가 들어온다. 

이쁜네 :(여기저기 살펴보며 혼잣말한다) 아직 아무도 안 왔당가?

         (전기밥솥을 열어보고) 앗쌀성님이 밥은 안친 모양이고...

        (냄비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며) 냄비에... 죽순허고 조기가 있는 것이... 요것을 지질 모양인디...

        (노란 양푼 안에서 꺼내며) 봄동 겉절이 허고 시라구 무침허고 들고 왔응께 요걸루다 먹음은 쓰것구              만...     

이쁜네는 싱크대 위에 놓인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불을 켠다.

그리고  밥상을 펴고 숟가락, 젓가락을 올린다. 

이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상대방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린다.

이쁜네 : 여보시오!

아들 : (다급하게 큰 소리로) 엄마, 저예요!

이쁜네 :(반가운 목소리로) 응, 철진이냐?

아들 : 제가 어제 말씀드린 것 생각해 보셨어요?

이쁜네 : 뭣을?

아들 :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아, 엄마! 제가 힘들다고 했잖아요.

이쁜네 : 아... 근디 말이다...

아들 : 제가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다시 말씀 못 드려요.

이쁜네: 긍께 그게 말이다...

아들 : 엄마 시간이 없어요. 어차피 아버지도 요양원에 계시는데 그 집이 있으면 뭐 하겠어요? 일단 팔자구요!

        그리고 엄마는 저희들이랑 같이 살면 되잖아요!

이쁜네 :그래도 그렇제. 그게 어떤 집인디... 어떻게 지은 집인디...

아들 : 제가 지금 힘들어서 그런다구요. 이번 위기만 벗어나면 그보다 더 좋은 집 지어 드릴께요.

이쁜네 : 그 집은 말이여...

아들 : 엄마! 또 그 말씀이세요? 아버지가 몇십 리를 걸어 다니며 소 내다 팔아서 번 돈으로 지은 집이라고...

        알아요. 아니까 더 좋은 집으로 사드린다잖아요!

       그리고 그 보다 더 바쁜 것은 아버지 병원비예요. 엄마 통장에 돈 있죠? 아버지가 폐렴으로 입원한 지 

       한 달 정도 되니까 이백오십만 원이 나왔다고요! 우선 그것부터 해결해야 하니까 먼저 준비해 두세요!

이쁜네 : 저번에도 돈 필요하대서 통장 탁탁 털어 줬는디 어느 구멍에서 돈이 나온다고 ...

아들 : 아, 몰라요! 엄마가 알아서 해보세요! 동네 아짐들한테 꾸던지요!

이쁜네 : 시골 할망구들이 뭔 돈이 있다고 ...

아들 : 엄마 제가 바빠요. 끊을 테니까 구해 보세요!(전화를 끊는다)

이쁜네 : (허탈하게 웃으며) 어허, 지 할 말만 허고 끊어부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때 문소리와 함께 앗쌀네 들어온다.     

앗쌀네 : (허기져 죽겠다는 듯이 배를 쓰다듬으며)

           워메 워메, 아침부터 아들 자슥하고 한판 했드만 배가 등껍데기에 붙어불겄네!

이쁜네 : (당황하며) 성님 나오셨소?

앗쌀네 : 전화를 받던 모양인디 누군가?

이쁜네 : 철진이여라...

앗쌀네 : 잉... 시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허디 귀헌 아들 철진이?

         동생도 아들헌테 너무 잘허지 말어. 내 꼴 난다고. 내가 다 키워놓은께 인자  지 마누라밖에

        모르더라고. 그래도 이쁜네는 철진이가 귀허제?

이쁜네 : (작은 소리로)귀허지라 귀혀...

앗쌀네 : 워메, 이쁜네는 아침도 못 먹었어? 아니제? 시방 점심때가 다 되아붔응께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인

            가?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보며) 아, 근디 밥 준비는 다 되었당가? 내가 밥은 앉혀놓고 갔는디...

          (가스레인지 위에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을 열어보며) 오메 오메, 임금님 밥상에만 오른다는 조기새끼가

           다 쫄아부렀네! 아따메, 이쁜네는 뭐허고 있었단가? 

         (냄비를 내려놓으며) 내가 요때 딱 맞춰서 안 왔음 어쩔뻔했당가? 

이쁜네 : (냄비를 내려다보며 놀란다) 아이고 성님, 지가 전화받느라 정신줄을 놓고 있어갖고 가스 우게 뭘 얹

           어놨다는 것을 잊어불고 있었구만이라!

앗쌀네 :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근디 이쁜네 자네, 뭔 일이 있당가?

이쁜네 : (시치미를 떼며) 아니여라. 암 일도 아니여라...

앗쌀네 : (궁금하다는 듯이) 암 일도 아니라고 헝께 더 뭔 일이 있는 거 같은디?

           (이쁜네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이 사방 동네에서  질로 이쁜 이쁜네 얼굴이 합쭈그리 해진 거 봉

           께 암일도 없는 것이 아닌디...

이쁜네 : (망설이며) 긍께 그것이라...

앗쌀네 : 워메, 이 놈의 동네가 언제부터 요렇게 의뭉시러져붔당가? 아까는 서운네가 속을 뒤집어 놓드만 인

           자는 이쁜네여? 나도 눈꼽만치도 안 궁금헌께 말허지 말어! 응, 그냥 입 꽉 다물고 있어부러!

이쁜네 : (대뜸)성님 돈 있소?

앗쌀네 : (한 발자국 물러서며) 뭔 소리여? 밑도 끝도 없이 돈이 있냐니?

이쁜네 : 긍께 돈 있냐고라. 나 빌려줄 돈이 있냐고라.

앗쌀네 : 아, 돈이야 이쁜네가 젤 많음서 왜 그런당가? 사업에 성공해서 돈 많이 벌었다고 저번 명절에 동네에

         떡 벌어진 한 상 차려준 아들이 이쁜네 아들, 철진이 아녔어?

이쁜네 : (한숨을 포옥 쉬고)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고 시방은 그것이 아닌께 성님헌티 염치불구하고 허는 말

            아니다요... 

앗쌀네 :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워메, 좀 있는 사람들이 쪼금 없으믄 뭔 엄살이 그라고 심헌가 몰라이! 

          뭐시냐, '큰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 그런 말 있든가... 안 그래? 철진이 아버지도 시설  좋은 요양

          원에 모시고 있담서...

이쁜네 : 아이고, 성님! 속을 모르믄 말을 허지 마시오... 

         철진이 아버지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갖고 치료받았어라... 근디 그 잘 나가는 아들이 아버지 병원

         비도 없다고 탈탈 털어분단 말이요!

앗쌀네 : 워메, 그런 일이 있었어? 그라믄 우리들한테 말을 헐 것이제...

이쁜네 : 그것도 한두 번 이제라... 벌써 치매로 요양시설에 간지 다섯 해가 지나붔어라. 그동안 폐렴으로 입원

           헌것도 몇 번짼가 모르겄어라. 처음 한 두 번은 서울까지 찾어가서 보고 오고 했는디 인자는 그것도 

           무뎌졌어라...

앗쌀네 : 그러긴 해... 세월 앞에 장사없다고 둔해지고 그러제...

         이쁜 양반이 그라고 쉽게 치매가 올 줄은 몰랐제. 우리 진승이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간지 오 년 됐응께

         이쁜양반이 여그 떠나서 서울로 간 것도 그 정도 됐겄구만...

이쁜네 : 철진이 아부지가  진승이 아부지 겁나게 따랐는디라. 그래서 그랬는가 진승이 아부지 그렇게 돌아가

          시고 갑작시럽게 치매가 온 것도 같고 그랬어라.

앗쌀네 : (콧등에 주름잡고 들이마시며 코를 찡긋거리며 ) 아따메, 이쁜네가 내 눈에 눈물 나게 헐라 그러네!

          새삼시럽게  진승이 아부지 이야기는 해갖고...

이쁜네 :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훔쳐내며) 성님도 진승이 아부지 생각도 허고 긍갑소이. 난 하도 성님이

             씩씩해서 다 잊어 불고 사는지 알았드만...

앗쌀네 : 음마, 사람들은 나를 인두껍만 쓴 허새비로 안당께!

          그건 그라고, 철진이 아버지는 인자 어쩐디?

이쁜네 : 인자 다 나았다요... 근디 퇴원을 해야헌디 병원비가 없다 않허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사업헌다고

            논밭 다 팔아서 줘 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이 몸뚱아리허고 집 밖에 없는디...

앗쌀네 :(안타까운 얼굴로) 근디 어찌까 몰라... 나도 돈이라고는 씨가 말라서 이쁜네헌티 도움이 못되겄는

           디...     


이때, 서운네와 일천네 들어온다     

일천네 : 이쁜네 나왔는가? 밥 준비는 다 되았고?

이쁜네 : (어두운 얼굴에 어색하게 웃음을 띄우며) 예, 일천성님!  밥 다 되았구만이라...

앗쌀네 : (서운네를 직접 바라보지 않고 옆 눈길로 바라본 채) 서운네 사돈은 목걸이를 찾았다요?

서운네 : ...

일천네 : 내가 집안을 이 잡듯 들춰봐도 없드랑께. 

앗쌀네 : (비아냥거리며) 분명 귀신이 가져갔을 것이요! 이왕에 허는 거 가늘게라도 내 껏까지 해줬음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인디? 분명히 귀신이 곡을 했당께!

서운네 : (서운한 목소리로) 꼭 말을 해도 그라고 해야겄소 사돈...

앗쌀네 : 서운헌 사돈! 그라고 서운해할 껏까정 없소! 담에 내려올 때 우리 진승이가 서운네 사돈것허고 똑같

           은 것으로 해다 준다고 했응께, 내가 터억하고 목에 걸고 댕길랑께 고것이 서운네 것이려니 허고                   보소!

서운네 : (화가 난 듯이) 참나 입이 있어도 딸 갖은 죄로다 말을 안 허고 있응께 내 입은 주둥이로 보이요? 

          나도 말 좀 합시다! 앗쌀헌 사돈은 큰돈 들여서 우리 서운이가 보청기 해준께 어떡해 말아 묵었소?

          뭣이라드라? 자다가 손길에 콩처럼 잡히는 것이 있어서 깨물었더니 고것이 보청기였다고라? 아이고

          내가 그 소릴 듣고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옵디다! 그것이 얼마 짜린 줄이나 안다요? 앗쌀헌 사돈은

          내가 받은 금 목걸이 두 개를 허고도 남은 돈을 콩인 줄 알고 씹어부렀단 말이요!

앗쌀네 : (놀랜 듯이) 워메, 사돈! (소리를 낮춰가며) 여기서 보청기 소리는 왜 허고 그런단가?

일천네 :(앗쌀네와 서운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뜯어놓으며) 나 배고프당께, 이 사람들아! 얼릉 밥 묵게!

           그라고 십 원짜리 고스톱한판 치자고... 

          글고 앗쌀네하고 서운네는 저그 화장실 가서 손들이나 씻고 와! 그래야 밥 묵제...

 

앗쌀네와 서운네는 마지못해 방 밖으로 나간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쁜네가 끼어든다.


이쁜네 : 일천성님, 뭔 소리다요?

일천네 : (이쁜네를 싱크대쪽으로 끌어당기며) 아따, 이 사람아! 들었으면 알꺼아녀? 일단 밥부터 먹자고!

이쁜네 : 예...

         (밥상에 냄비를 올리고 김치, 시래기나물을 접시에 담으며) 서운형님이 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이여

          라?

일천네 : (이쁜네와 둘이서만 들리게) 잉, 그려... 서운이가 목걸이를 해줬는가 본데 그것만 감쪽같이 없어져붔

           다네... 그래갖고 앗쌀네는 며느리 서운이가 친정엄마한테만 목걸이를 해줬나 해서 꽁해갖고 있는 

           것이고...

이쁜네 : (방백) 목걸이? 그거 그저께 서운형님이 읍내 나가면 몇 돈이나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맡겼던 거 아

            녀?  나한테 맡겨놓고 왜 잃어버렸다고 한단가?

일천네 : 이쁜네 뭐 한단가? 얼른 밥 푸지 않고?

이쁜네 : 예? 예... 알았어라. 성님... (밥을 푼다)

일천네 : 서운네랑 앗쌀네는 아직도 씻는당가? 얼릉 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고 싸우드라고. 잉?


앗쌀네와 서운네 뚱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이쁜네 :(푸던 밥을 밥상 위에 올려놓으며) 워메 성님들, 지가 집에 깜빡 잊어 버리고 온 것이 있어라! 집에 핑

            갔다 올랑께 성님들 먼저 잡수시오! 

앗쌀네 : 뭘 잊어불고 와부렀는디? 그냥 밥 묵고 가서 뭔 일을 해! 밥 안 묵는다고 어디서 돈이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닝께.

일천네: (뜬금없다는 듯이) 그것은 또 뭔 소리여?

앗쌀네 : 그런 것이 있어라...

서운네 : 이쁜네, 우리가 속 시끄럽게 해서 밥맛이 없는 것이여? 그냥 밥 묵어. 

이쁜네 : 아녀라. 철진이가 집에 온 편지들 중에 챙겨놓으라는 것이 있어서라.

         (서두르며) 설거지는 지가 이따가 와서 헐랑께 그대로 두셔라.

앗쌀네 : (손을 내저으며) 아녀 아녀! 울들이 알아서 헐랑께 이쁜네는 집에 가봐.

이쁜네 : 그라문 고맙고라. 맛나게들 잡수시오. (바쁜 걸음으로 나간다)

일천네 : (앗쌀네를 바라보며) 우리들이 모르는 뭣이 있는 것이여?

          뭔 일인디 이쁜네가 저렇게 뭐 꽁지 빠지게 가분당가?

앗쌀네 :(숟가락으로 밥을 뜨며) 성님, 먼저 점심부터 잡수시오. (밥을 입에 넣고)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기에

           대고 큰소리를 쳤드만 겁나게 허기가 지요. 

일천네 : 그라믄 천천히 씹음서 이야기를 풀어보소.

앗쌀네 : (밥을 먹으며) 이쁜네가 얼굴만 이쁜 것이 아니랑께라. 요라고 게미가 있게 반찬을 만들어왔소 안?

           근디 미인박복이라고 딱 하나 있는 아들 사업이 폭삭 망해불어서 이쁜 양반 병원비도 못 내게 생겼다

           고 안 허요.

일천네 : (밥을 먹으며) 살다 살다 미인박복이라는 말은 앗쌀네 헌티 처음 듣네! 미인박명이라는 소리는 들었

          어도...

앗쌀네 : 음마, 일천성님도... 그것이 그것이제라!

일천네 : 그건 그렇다 치고 철진이가 쫙 빼입고 와서 동네에 한턱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왜 그렇게 됐으까?

앗쌀네 : 아 사업이란 것이 그런갑서라! 철진이가 뺀조롬허니 차려입고 와서 한턱낼 때 만해도 회사원에, 공

          무원에, 생활에 빠듯한 세 아들놈헌티 느그들은 뭐허냐 했는디 요라고 봉께 또 그것이 아니여라.

일천네 :  그라고 왔다 갔다 헌 것이 사람 맴인 것이여...

서운네 : ...(밥을 먹지는 않고 계속 반찬을 뒤적거리며 생각에 잠겨있다)

일천네 : (서운네를 툭 치며) 아니 근데 이 사람은 좋은 음석 가지고 지금 뭐허고 있는 것이여?

서운네 : (깜작 놀라며) 성님, 내 목걸이를 찾은 것 같어라!

앗쌀네 . 일천네: (동시에) 뭔 소리여?

서운네 : 내 목걸이를 찾았다고라!

앗쌀네 : 여기 가만히 앉아 있음서 금방까지도 없다던 목걸이를 어디서 찾았단 말이여?

서운네 : 이쁜네한테 있구만이라...

일천네 :(놀라며) 뭐라고? 그럼 이쁜네가 훔쳐갔다는 것이여?

앗쌀네 : 그래서 이쁜네가 밥도 안 묵고 가분 것이여?

서운네 : 아니 그것이 아니고라...

앗쌀네 : 워메, 오늘 여러 번 숨넘어가게 맹그네. 이 사람들이!

         그믄 뭣이여? 훔쳐간 것이 아니믄, 서운네가 갖다 줬다는 것이여?

서운네 : 오메, 사돈은 어떻게 그걸 알았소?

앗쌀네 : (어이없다는 듯이) 사돈, 서운 사돈! 그것이 뭔 소리요?

         이쁜네 손에 사돈이 그 목걸이를 쥐어줬다는 말이요?

일천네 : (앗쌀네의 입을 막는 시늉을 하며)앗쌀네, 좀 지달려봐! 서운네가 말을 못 허고 있잖어!

           (서운네를 바라보며) 인자 속 씨원히 말해보소!

서운네 : 생각해본께, 지가 며칠 전에 이쁜네 헌티 맡겼구만이라... 

앗쌀네 : 왜? 뭣 땜시? 

일천네 : (서운네의 말을 막으며) 그래서?

서운네 : 이쁜네가 그래도 우리 동네서 제일 젊은 사람인께 읍내에 나가거든 금은방에 들러서 몇 돈이나 되는

            지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어라.

앗쌀네 : 돈으로 바꿀라고?

일천네 : (밥숟갈로 앗쌀네의 입을 막으며, 서운네에게 계속 말하라는 행동을 취한다)

서운네 : 아이고 근디 그것을 깜빡허고 아침부터 동네를 발칵 뒤지고 있었으니... 인자 지도 죽을 때가 됐는 갑

           서라.

앗쌀네: (입안의 밥을 억지로 삼키며) 아니, 우리 아들이 해준 목걸이를 금세 돈으로 바꿔먹을라고 했단말이

           여?

서운네 : 앗쌀헌 사돈,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내가 세 번째 딸을 낳았을 때, 사돈 집 앞에는 금줄에 빨간 고추가

           걸려있습디다. 우리 집에는 없는 그 빨간 고추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사돈은 모를 것이요. 근디 일곱

            번째까지 딸을 낳았을 때 내 심정을 사돈이 알겄소? 그건 사돈이 죽었다 깨나도 모를 것이요... 

앗쌀네 : 사돈은 여그서 그런 케케묵은 것은 왜 꺼내불고 그런다요?

서운네 : 근디 나도 모른 새에 세월이 흘렀지라. 글고 세상이 변했는지 딸이 일곱인 내가 그래도 좋아보이는

           시절이 옵디다. 그라고 본께 아들만 셋인 사돈이 지나는 말처럼 나를 부러워허기도 허드란 말이지라.

앗쌀네 : 옴마! 눈치도 빠르네...

서운네 : 목걸이를 받은 담날 사위한테 전화를 했지라. 그 목걸이를 쌍가락지로 바꿔도 서운해 하지말라고라. 

           서운이는 사위한테 미안해서 그런지 말리는디 사위는 내 맘대로 허라고 헙디다. 그래서 이쁜네한테

           맡겼지라.

앗쌀네 : (비꼬듯이) 뭐 다른 딸들이 해준 목걸이가 많어서 쌍가락지로 바꾸고 싶었는가 보제?

서운네 : 쌍가락지로 바꿔서 하나씩 나눠낄라고 그랬어라... 자식도 나눠가졌응께 우리는 쌍가락지라도 나눠

           가지먼 좋겄다 싶은 맘에 그랬다고라...

앗쌀네 : (멋쩍고 미안한 표정으로) 아, 그믄 그렇다고 빨리 말을 해야지라... 사돈...

일천네 : 자식 없는 사람 서르와서 못살겄네! 서르와서 얼른 무덤 파고 들어가 불어야 겄네!

앗쌀네 : 워메, 일천성님! 그라믄 안되제라... 성님이 없으믄 우리들 싸웠싸믄 누가 말려준다요?

서운네 : 일천 성님, 내가 돈을 보태갖고라도 세 개짜리 까락지를 맹글어 갖고 그중에 하나는 성님을 드릴께

           걱정마시오!

앗쌀네 : 워메, 우리 사돈! 생각도 잘허지라이! 그렇게 해붑시다.

일천네 :(웃으며) 나는 돼얐어...

         그건 그렇고 일단 그 목걸이가 이쁜네 손에 있다는 것 아녀?

앗쌀네 : 워메, 이라고 여그 없는 목걸이로 우리끼리 반지를 만드는 사이에 이쁜네가 고것을 확 팔아서 철진네

        아부지 병원비로 써불지도 모르는디!

일천네 : 고건 또 뭔 소리단가?

앗쌀네 : (답답하다는 듯이) 이쁜네가 목걸이 잃어부렀다는 소리 듣고도 지가 갖고 있음서도 암말도 없이 쏘옥

           빠져서 집으로 가분거 아니요?

서운네 : 워메, 사돈헌테 설명허느라고 고 대목은 내가 생각을 못했어라!

일천네 : 이쁜네가 고 목걸이를 갖고 뭔 짓을 헐 사람은 아니여...

         아닐 것이여...

앗쌀네 : 워메, 성님도... 견물생심이라고 누가 그라고 자와서 그란다요! 이쁜네 앞에 딱 일이 그라고 벌어져

           부렀는디  나라도 한 번은 생각해 보겠소. '요것을 내 것으로 해불것인지  아니면 쥔헌테  돌려줘야 헌

          가' 말이요. 그러기 전에 우리가 가서 찾아와야 한당께요!

서운네 : (고개를 끄덕이며) 사돈 말이 맞는갑소! 얼른 이쁜네로 가보잔께요.     

서운네와 이쁜네, 일천네 먹던 밥상을 그대로 둔 채 일어서 부리나케 나간다.  

   

3막

회관 방안. 벽시계가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다. 낮에 먹던 밥상 그대로 한쪽 구석에 밀려나 있다. 

앗쌀네와 일천네 뭔가를 기다리듯 서성거린다.

앗쌀네 : 일천 성님, 이쁜네 별일 없겄지라?

일천네 : 뭔 일이 있겄어? 해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어도 끄덕없이 잘 살던 양반이 그깟 폐렴 때문에 가겄는가?

앗쌀네 : 다 낫어 갖고 퇴원준비 헌다던 양반이 갑자기 뭔 일이다요?

일천네 : 울 갖은 노인들헌테는 폐렴이 무섭다고는 허드만은...

앗쌀네 : 근디 요번엔 뭔가 불안허단 말이여라... 점심 때도 못 되야서 올라간 사람이 시방까지 전화도 안 받

            고. 집에 가서 본께 문단속도 못 하고 허겁지겁 나간 모양이던디. 그나마 택시기사 양반이 알려줘서

            그라제 안 그랬으믄 이쁜양반이 위급한지도 몰랐을 뻔했당께라...

일천네 : 그러게...  아무 일도 없어야 헐 것인지...     

서운네 핸드폰을 들고 다급한 얼굴로 들어온다.    

앗쌀네 : (서운네에게 다가가 급하게 묻는다) 사돈, 뭔 소식을 들었다요?

서운네 : ...

앗쌀네 : 뭔가 듣고 온 모양인디 얼른 말을 좀 해보랑께라...

서운네 : 이쁜네 그 양반이... 흐흑

앗쌀네 : 뭐 돌아가셨다드라 그런 건 아니지라? 사돈?

서운네 : 흐흑...

앗쌀네 : 정말 돌아가셨단 말이요? 사돈?

서운네 : 예... 한 시간 전에 떠나붔다고... 

앗쌀네 :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들었다요 사돈? 공갈치지 마시오!

서운네 : 나도 참말이 아니였음 좋겄어라... 아, 철진이하고 우리 여섯 번째 사위하고 친구잖여라. 철진이가 

           연락을 해왔다고 막 전화가 왔어라...

앗쌀네 : 워메 워메, 정말인갑네! 어째야 쓰꺼라 성님?

일천네 : (한참을 말을 못 하다가) 그래서 어디서 상은 치룬다든가?

서운네 : 장례는 읍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치르기로 했다고... 여그로 내려오고 있는 모양이드라고라...

일천네 : 이쁜 양반이 우리 일천 양반 갈 때도 상여소리 울려가며 보내줬는디...

         피붙이라고는 한나도 안 냄기고 간다는 말도 지대로 못 하고 떠나는 우리 서방 대신 요령소리, 상여소           리로 대신 달래준 사람이 이쁜 양반인디... 

서운네 : 어디 일천아재만 그랬당가라... 우리 동네 먼저 가신 양반들 다 이쁜양반이 저승길 잡아줬구만이라...

앗쌀네 : 오는 곳이 있응께, 언젠가 갈 것이라는 것은 뻔허니 알고 있는디 그라도 서릅소이...

(화면 어두워진다)


요령소리와 상여소리를 배경으로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 들린다.

앗쌀네 : 성님 이쁜네가 큰일이구만이라. 그래도 남편이 어디에 있든지 살아있응께 맴이라도 든든했을 것인디

           인자 그마저 가불었으니 어찌끄라...  

일천네 : 다 살아지는 거겄지. 나도 그랬응께...

앗쌀네 : 우리 서운이 사돈이 이쁜 양반 죽음에 옷 해줬다고 하드만이라...

일천네 : 나도 들었네. 서운네가 베틀에 앉어서 세월로 짜냈던 그 삼베로 이쁜양반  옷 입혀갖고 저승길에 보

            내드렸다고 하드만...

앗쌀네 : 그놈 목걸이는 서운네가 장례식장 들어서기가 바쁘게 이쁜네가 주드랍디다... 

           울기만 험서 말이여라...

일천네 : 그랬다고 하드만....     

요령소리와 상여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고향의 봄' 노랫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앗쌀네 : 성님, 봄이 오고 있는 갑구만이라... 저그 저그서 서운네가 쑥 캐고 있는 거 본께 우리 빠끔살이도 이

          젠 끝나고 들로 산으로 일하러 갈 때가 된갑그만이라!

일천네 : 그랑께... 고향에 봄이 오고 있네이...

           이 늙은이들한테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구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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