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짝지근함을 넘은 들척지근한 맛에 멀미를 느끼는 내 입맛이 아이들에게 까지 미칠 줄은 미처 몰랐다.
"형이 변했어! 여자 친구가 생기더니 우리가 알던 예전의 형이 아니야!"
지난, 강릉 여행에서의 일이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 셋, 펜션에서 편안하게 앉아 조촐한 술자리 중이었다. 평소 말이 많지는 않지만 급소를 찌르는 말로 가끔 놀라게 하는 작은 아들이 큰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뭘? 너도 마찬가지거든!"
큰 아들의 반격에 작은 아들은 지지 않고 '원래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변했다'라고 다시 말했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는 두 아들을 바라보던 딸이 한마디 보탰다.
"오빠들 둘 다 변했거든! 와... 사랑이 뭐라고... 남친 없는 내 앞에서 지금 뭐 하심?"
그랬다. 아들들은 군입대를 전후해서 모두 여자친구가 생겼고, 그를 기점으로 변했다. 평소 들을 수 없는 말투로 방문을 닫고 들어가며 핸드폰 속 그녀와 속삭였고, 입가에 아직 본 적 없는 미소를 흘렸다. 물론 오빠들이 변했다고 말하는 딸도 비록 지금은 남자친구 휴식기이지만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결론을 내주어야 한다.
"그래 너희들 모두 변했어! 어느 날 보니 우리들에게 보여준 적 없는 말투와 웃음을 너희들 모두 하고 있더라!"
셋 모두 웃고 만다. 그 뒤 나온 말은 이왕 시작한 술자리의 찰진 안주감이 되었다.
"우리가 좀 직설적인가 봐..."
직설적인 표현 탓에, 아니 좀 더 사탕발림을 해서 내놓아야 할 대사를 아무런 의식 없이 평소대로 내놓았다가 여자친구에게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한 이야기가 몇 점 남지 않은 횟감접시 위에 올랐다. 집에서 늘 보아 온대로 밥상에 오른 음식에 대하여 맛을 그대로 쓰다, 달다, 짜다, 시다고 말해왔던 녀석들이 어쩌다 여자친구들의 손을 거친 음식 앞에서 하던 대로 표현했다가 서운함이 가져온 일련의 사태에 당황했던 이야기들이 비어있던 접시에서 파닥거렸다. 고장 난 리액션으로 인해 허둥거려야 했던 일들이 움찔거리는 안주가 되었다.
그리고 결론은 그렇게 말하고 살아온 아빠 탓이요, 한발 더 나아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엄마 탓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단 걸 달다고 하고 짠 걸 짜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는 홍길동도 아닌데 그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런 음식 타박에 대해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는다. 달면 다음번에 단맛을 한자밤 빼면 되고 짜면 물 좀 더 넣으면 되는 일 아닌가? 물론 타박하는 남편이 안 먹는 것도 아니었고, 이마에 슬픔에 삼각형을 그려가며 말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우리의 밥상머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무런 위해를 가져오지 않았고 너무도 일상적인 평범한 것이었다. 아니 타박이란 허물이나 결함을 나무라거나 핀잔하는 것이니, 정확히 말하자면 타박이 아닌 의견제시라고 함이 정확한 것이었다. 이런 일들이 밥상머리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다 보니, 딸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들은 쿨한 것(이미 끝난 일이나 관계 따위에 미련을 두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행동하다)이었다. 대충 감잡아 들어오던 쿨하다는 의미를 살펴보니 적확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표현하는 단어로 대충 맞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란 아이들, 특히 화성에서 살아온 아들에게 금성에서 온 여자친구는 넘어야 할 산임에 분명했다. 가끔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다퉜구나'하고 지레짐작할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 바뀌지 않고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을 보아 그 산을 잘 넘고 있는 것이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는 듯하다.
거의 모든 음식을 마다하지 않고 소화해 내는 내가 싫어하는 세 가지가 있다. 아이스크림과 사탕, 초콜릿이 그것이다. 초콜릿과 사탕의 단맛은 목넘이에서 그만 '캑'소리를 내고 만다. 아이스크림은 뒤끝에 남는 유분의 느끼함이 싫다. 그래서 가족들은 내 몫의 아이스크림을 사 오지 않는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챙기지 않는다. 이쯤되니 조금은 건조하고 쿨한 우리들의 일상은 기준치 초과(각자 기준치가 다름을 인정한다) 달달함을 싫어하는 내게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닿는다.
고등학교 때였다. 날씨 때문이었는지 교실에 앉아 월요일 아침 방송 조회를 듣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들아!"
'오, 이런!'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첫머리였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듯 얇고 붉은 입술 사이로 교장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고생이 생각하는 사랑값과 교장선생님이 그동안 보여줬던 사랑값을 저울질하다 우리는 흔들, 멀미가 났다. 교실 안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났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교장선생님의 사랑은 아무런 울림도 없이 그저 시간만 먹어버리고 말았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이런 류의 인사는 여전히 내게 엷은 멀미를 일으킨다. 반질반질한 말들이 주는 거짓부렁 같은 느낌이 싫다.
사탕발림 같은 언어에 두드러기까지는 아니지만 한없이 가볍게만 보이는 말들에 여전히 거부감이 인다. 물론 달콤한 말을 건네는 이들의 말이 진정, 찐(眞)이라면 두 팔을 벌려 환영한다.
다행히 아들의 말투는 요즘말로 'so sweet!' 하다고 한다. 직선적이나 부드러운 말투로 아직까지 연애전선에 이상 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딸은 눈웃음을 짓는다. 직언은 하되 자동반사 눈웃음으로 달달함을 뿌린다. 모두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것'이라는 정현종 님의 시구처럼 우리는 아이들의 친구들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 가족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아이스크림도, 초콜릿도 눈앞에 있다면 아주 가끔 먹는다. 사탕도 올해 한 개쯤 입에 넣은 적도 있다. 아이들과 발맞춰 조금 단맛을 넣은 인생이 필요한 때인듯하다. 나의 단맛에 대한 기준치가 조금 높아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