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주며 글을 쓰라고 합니다

by 수더분한 버마재비

기계에 사진을 넣으면 글이 나오는 줄 아는 모양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찰나를 저장해 놓아야, 순간을 잡아놓아야 그나마 짤막한 생각이 고이기에 사진을 찍거늘 옆에서 바라보는 남편의 눈에는 사진만 던져주면 글을 뽑아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며칠 전 은파호수를 가로지르는 물빛다리를 걸었다. 오랜만이었다. 집과는 먼 거리여서 낮에 차로 지나는 일은 있지만 밤에 걸어보는 것은 몇 년 만의 일이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 불빛도, 동화 속 그림 같은 뾰족 지붕 예식장과 가로수길이 만들어놓은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밤에만 몰래 다녀가는 가을을 만난 듯했다. 남편의 손을 잡았다. 한참 앞에 가는 아들의 친구 부모님도 정답게 손잡고 걷는 중이었다. 우리 뒤로 아들과 친구도 나란히 걸었다.

왼쪽 나, 오른쪽 아들 친구 작품


우리 부부가 '손잡고 걷는다는 것'은 막걸리 탓이다. 8시 무렵부터 물빛다리 코앞에 앉아 해물파전과 골뱅이소면, 뚝배기계란찜에 시작된 아들 친구 부모님과 술자리 때문이었다. 아들과 친구는 양쪽 집에서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들과는 첫 만남이었다. 이곳에 1박 2일로 여행을 온 김에 만나면 어떻겠냐는 물음에 우리가 응했다. 조금은 어수선하고 들떠있는 분위기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편할듯해 막걸릿집으로 약속장소를 잡는 것에 동의했다.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현지인보다 더 잘 아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와본곳이라며 잡은 장소는 그냥 차로 지나치던 곳으로 우리 가족은 모두 처음이었다.

서로 첫 만남이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악간 어색한 분위기에서 인사가 오갔다. 그리고 주변 소란함과 한잔 술에 들쑥날쑥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별것 아닌 깨알 같은 공통점은 맞장구를 치고 금세 서로를 좀 더 가깝게 한다. 우리 부부와 같은 해에 결혼을 했고 첫아이도 같은 해에 낳은 우연과, 갯벌이 있는 곳에서 자라 끄득끄득 말린 망둥어를 구워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안다는 바깥양반들의 어린 날의 향수는 어느새 또 한잔을 부딪히게 했다. 이렇게 아이들로 인해 만나게 되어서 반갑다고 소주잔과 막걸리잔을 또 부딪혔다.


우리가 그랬듯 오는 길에 아빠에게 술만 적정하게 드시라고 주의를 주었다는 아들 친구의 가족들, 두 집 모두 똑같다며 '2차 갑시다 !'이런 말은 금지라며 웃었지만 두 바깥양반들은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두 남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여기까지'라고 외치고 불빛다리로 밤마실을 나섰다.


각자 짝을 지어 물빛다리를 걸었다. 친구 부모님이 제일 먼저 손잡고 앞장을 섰다. 다정한 부부였다. 말하지 않아도 작은 몸짓에서 오는 것들이 화목한 가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나눈 이야기들 속에서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했지만 뒷모습도 좋아 보임에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러고 나니 오랜만에 나온 은파호수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아파트 불빛이 보였다. 저곳은 조금은 딱딱한 현실이고 지금 내가 걷는 곳은 말캉한 공기와 강물과 바람이 일렁이는 반쯤 눈감고 다니는 곳 같다. 막걸리와 밤이 만들어낸 조화였다. 습관적으로 물빛다리 조명과 물속에서 입을 뻐금거리는 강준치를 찍었다. 어느새 다가온 남편과 아이들이 핸드폰 플래시로 조명을 켜주었다.

어? 거미가 있네?

한마디에 나무다리 사이에 거미줄을 치고 평화롭게 작업 중이던 거미를 향해 조명을 쏘아댄다.

이런 ,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 거지?

엄마 글 쓰는데 쓰시라고...

저 멀리 예식장 뾰족 지붕과 가로수가 만들어낸 풍경이 동화 속 어느 장면 같지 않느냐는 말에 화소가 많은 핸드폰이 훨씬 그림을 잘 잡는다며 또 찍어준다. 자꾸 이것으로 글을 쓰라며 등을 떠민다. 미숙한 이 글쟁이에게 미끼를 던져주며 월척을 낚기를 바란다. 참 할 말이 없다.

이렇게 등 떠밀며 글쓰기를 가장 종용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아마도 내가 글을 쓴다는 것에 시간을 쏟은 후로 잔소리와 짜증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잔소리와 짜증이라는 것이 물론 그에게 그렇게 생각될 뿐 내게는 너무 당연한 그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였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자 입장에서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그 애정 어린 충고를 거두고 그럴 시간에 나를 위한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그 애정 어린 충고라는 것을 할 때도 안 할 때도 그는 똑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잔소리가 떠나고 밤늦게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는 내 모습에 박수를 날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에게 평화가 내린 지 4개월을 넘겼다.


'참새의 데이트' 라는 문구와 함께 남편이 보내온 첫 사진(2023.7.5.)

간혹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내게 ' 글 안 쓰고 잘 거야?'라거나 , 어쩌다 늦게까지 풀리지 않는 글발과 싸우다 지쳐 들어온 내게 다 썼느냐고 물어오는 그를 보면 응원인가 독촉인가 하는 저울질을 하게 된다. '내 그대를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 관심과 격려라는 쪽에 무게를 싣겠소' 라며 나는 내 글을 읽지도 않는 대책 없는 독자에게 글쓰기의 어려움을 푸념한다. 그러고 보면 사진을 투척하면 글이 나오는 줄 아는 남편과 내 글을 읽지도 않는 이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우리는 덤 앤 더머, 바보 같은 부부다.


내 글을 읽지 않는 독자 아닌 독자는 오늘 백조기 낚시 중이다. 이것 또한 그가 나의 글쓰기를 독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낚시를 가는 날은 가게 일이 바쁘지 않은 한 나도 맘껏 글 쓰는 날이다. 그마저 없는 가게에서 늘어져 주무시는 재재를 옆에 두고 톡톡 써 내려가는 여유로움, 나는 그래서 그가 낚시를 간다고 하면 또? 하고 반기를 들지만 속으로 배시시 웃는다. '제발 바쁜 일만 없어다오 '하고 오늘도 비실비실 웃어가며 글을 쓴다.

낚시가방 가득 백조기를 채웠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나도 내 글밭 가득 검은 글씨를 채우려고 애쓰고 있다.

그의 백조기가 실한 놈인지 아닌지, 내 글밭에 심어진 글자가 잘 여문 놈인지 헛껍데기 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각자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