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 색감 어쩔 거야? 인생 컷인데?
바랭이 풀이 한몫했네!
주인장 바구니는 어떻고!
저 자두 빛깔은 또 어쩔 건데!
'땅을 뒤덮은 바랭이와 대바구니에 담긴 붉은 자두' 사진 한컷에 산골에서 보낸 우리들의 2박 3일이 들어있다.
지난 주말, 해묵은 친구들을 만났다. 나를 포함하여 셋, 우리는 솥단지채 밥 비벼먹던 고등학교 친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드문드문 만나오던 우리는 10년 전부터 1년에 한두 번씩 만나 국내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호기롭게 예약했던 유럽여행을 취소한 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산속에 자리 잡은 친구 집에서 만나고 있다.
올해는 2박 3일,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사흘을 묵었다. 그곳은 티브이가 없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다. 세상과 소통이 필요할 때에는 밖으로 나와 한 손에 핸드폰을 높이 치켜들고 전파가 잘 잡히는 곳을 찾아 종종거려야 한다. 알고 보면 읍내에서 차로 2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지만, 주인장 부부가 직접 만든 평상에 앉아 휘둘러보면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숲 속 통화권 이탈지역, 두메산골 아닌 두메산골이었다.
첫날, 오후 늦게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장이신 친구 남편은 짚불구이를 해주셨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숯불에 굽다가 마지막에 짚불로 연기를 피워 내놓은 고기 맛, 나와 친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탄성을 질렀다. 돼지고기 먹부림 중 단연 최상위에 오를 만한 맛이었다. 간장구이를 해놓은 듯한 고기 때깔과 후루룩 타오르던 지푸라기 향이 배인 그 깊은 맛. 마당이 있더라도 짚불 연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해 먹을 수 없을 것이라며 꽤 장소를 가리는 음식이라는 말이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게다가 빙 둘러 온통 초록 공간에서 맛보는 입안의 황홀함.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주인장 남편에게 드렸던 감사의 인사가 너무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생각만 해도 자꾸만 입안에 침이 고이고 구쁘다.
짚불구이를 해주고 당신의 임무는 끝났다는 듯 주인장 남편은 도시에 있는 집으로 퇴장해 주셨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바로 베짱이 모드로 들어갔다. 아무도 찾지 않는, 아니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먹고, 이야기하고, 자는 것을 시작했다. 끊이지 않는 수다, 머릿속에 꾸깃꾸깃 뭉쳐있던 이야기보따리를 마구 떠들며 풀어헤쳤다. 아이들 이야기였다, 어느새 남편이야기로 옮기고, 다시 생각지도 못한 자기 이야기에 삼천포로 빠졌다.
우리는 겨우 세명, 각자 다르다. 오십견을 앓고 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성격도, 잘하는 것도, 하고픈 것도 다르다. 각자 집에서 챙겨 온 물건도 제각각이었다. 두메산골 아닌 두메산골, 그곳에서 하는 일도 달라 제 알아서 움직였다. 덕분에 세 베짱이는 빈둥거리면서도 잘 먹고 잘 쉬었다.
나는 어부는 아니지만 바닷가에 산다는 이유로 준비한 바지락과 집에서 딴 자두와 블루베리를 챙겨갔다. 그리고 자칭 전 부치기 달인이라며 감자를 갈아 넣고 바지락살을 넣어 부추전을 부쳐내고, 실렁실렁 설거지를 했다.
다른 친구는 이곳은 서울보다는 저렴한 옷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우리들에게 어울릴만한 티셔츠를 사 왔다. 그리고 바느질 솜씨를 발휘하여 동치미 담을 때 사용할 양념주머니와 만두 찔 때 바닥에 깔 모시깔개를 만들어 왔다. 세심하게 더운 여름 머리를 틀어 올리라며 머리집게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휘리릭 만든 야채샐러드와 조물조물 무친 고춧잎나물, 집에서 가져온 오이장아찌와 콩장으로 요리조리 색감과 모양을 잡아 식단을 차려냈다.
셋 중 으뜸은 주인장이다. 주인장은 통도 크셔서 텃밭이 준비물이다. 고추, 상추, 양상추, 오이, 호박, 고구마, 부추등 있을 건 다 있는 시장이 따로 없는 텃밭을 내놓는다. 그리고 석류나무와 자두나무, 보리수, 감나무도 '먹을 때만 되었거든 아무거나 따 드세요'하며 꺼내 놓는다. 거기에 아침이면 목련차와 발효녹차까지 내주며 따뜻하게 몸을 데워준다.
게다가 이번에는 특식을 준비해 두었는데 그 맛에 나와 친구는 반해버렸다. 텃밭 곳곳에서 자라던 쑥 이파리를 뜯어 검은쌀 현미를 넣은 쑥떡이라고 하는데, 거무튀튀한 것이 오랫동안 꺼내놓아도 굳지 않고 야들야들한 데다 한입 베어무니 쑥향이 쑤욱 올라왔다. 콩가루 없이도 입안에 계속 두고 싶은 맛이었다. 짚불구이에 놀라 튀어나왔던 우리 눈이 또다시 휘둥그레졌다. 옛날 엄마가 해주신 쑥떡 맛이라며 또 먹고 싶다는 요청이 빗발쳐 떡방앗간을 네 번 갔다고 하니 말해 무엇하리! 우리는 내친김에 쑥떡 만들기에서 카페 디저트사업 계획까지 주인장에게 들이밀고 말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싸준다던 떡을 잊고 왔다. 떡보가 아니었는데 그 쑥떡 이후로 떡보가 돼버린 우리는 가을에 갈 때까지 잘 보관해 놓으라고 거듭 절절하게 부탁했다.
배를 채웠으니 움직여야 했다. 마침 텃밭 가장 위쪽에서 자두가 익어가고 있었다. 거의 야생이다시피 방치된 자두나무는 빨갛게 익어 '어서 드세요'하고 우리에게 손짓을 하건만 너무 높았다. 그래서 두 번째 날 주인장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편하게 지내라며 나타나 주지 않던 주인장 남편은 오후 늦게 내일 쓸 장비를 챙기느라 올라왔다. 자두 좀 따달라는 주인장의 말에 주인장 남편은 부드러운 눈웃음과 미소를 날리더니 굴착기를 꺼냈다. 그 뒤를 처음 하는 일이 아니라는 듯 주인장이 뒤따르고, 우리는 ' 어떻게 하려고?' 하는 물음표를 달고 비탈길을 올랐다.
잠시 후 우리는 난생처음 굴착기로 자두 따는 광경을 보았다. 주인장 남편이 굴착기 바가지를 바닥에 내리자 주인장은 그 바가지 안에 들어앉았고, 다시 주인장 남편의 기계조작에 의해 바가지는 공중으로 올라 붉게 읽은 자두 아래에서 멈췄다. 우리 눈동자는 굴착기 바가지를 따라 땅에서 파란 하늘이 듬성듬성 보이는 자두나무 가지에 멈췄다. 가을 단감을 딸 때도 이렇게 하지만 매번 무섭다며 무서운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 모를 주인장의 웃음소리가 자두나무를 흔들었다. 키도 크고 풍채도 좋은 자두나무는 굴착기를 사용해도 닿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다. 이제 주인장 남편은 굴착기 바가지로 나무를 가볍게 치기 시작했다. 후드득 자두와 함께 세 여자의 주렁주렁 매달렸던 붉은 웃음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바랭이 풀숲으로 떨어져 내린 자두를 우리는 한참을 쪼그려 앉아 주어 담았다.
바랭이 풀밭에 놓은 자두바구니를 만지려는데 초록 풀물과 자두의 상큼한 붉은 물이 손가락사이로 흘러내릴 듯했다. 아무런 약도 거름도 주지 않는 야생의 자두가 주는 작지만 야문 향은 대바구니와 바랭이풀과 너무 훌륭한 조합이었다. 그만 색깔이 튜브에서 짜내는 물감처럼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밤이 되었다. 한낮더위가 산골에 머무르지 못하고 서둘러 내려갔는지 평상 위에 한기가 올라왔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왔다.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옆에서 자는 친구, 말이 사라졌다. 금세 잠든 모양이었다. 갱년기로 잠 못 드는 주인장은 무척 부러워했다. 내 옆에 모로 누운 주인장의 머리카락 웨이브가 예뻤다. 뭔가 벽을 만났을 때 애먼 머리카락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나처럼 주인장도 길게 웨이브진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지 며칠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주인장 등을 보고 모로 누워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만지작거렸다. 그 때 주인장이 살풋 잠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카락을 만져주니 잠이 솔솔 올 것 같아...
그래? 고까짓 것 내가 해주지...
나는 주인장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제 잠이 올 만도 한데 주인장은 아직 잠이 들지 않은 듯했다. 시간이 점점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팔이 저리려고 할 때쯤 주인장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손동작을 멈췄다.
다음 날 아침, 주인장이 말했다.
계속 머리카락을 만져주니 좋은데 잠은 오지 않는 거야. 네가 졸리는데 계속하지 않나 싶어서 잠든 척했어.
그랬더니 바로 손을 멈추고 코를 골고 자더라.
그곳 주인장은 그런 친구다.
깊은 잠을 못 자는 주인장이 들락거릴 때마다 새벽부터 문틈으로 새들이 고개를 들이밀고 지저귀기 시작했다. 특히 한쌍의 새가 꼭 대화를 하듯 주고받으며 두 시간여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우리가 일어나 움직이는 8시쯤, 우리를 깨우는 알람이었다는 듯이 조용해졌다. 새들이 지나간 다음에는 셋이서 짹짹거렸다. 산중은 고요와는 먼 곳이었다. 오디오가 비어있는 우리들이 잠든 시간마저 뻐꾸기와 산비둘기 소리가 그 자리를 메웠다.
우리들의 지저귐은 마음 굽이굽이 접힌 부분에 숨겨진 일들을 꺼내놓고 함께 흥분하고 기뻐하고 열을 내고 서로를 다독이고 또 충고를 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마음속 고갱이는 이미 자존의 껍질들로 에둘러져 버린 나이였지만 우리는 서로 말캉한 부분을 알고 있다. 다독이는 손길에 상처를 씻지만, 충고에는 내성이 생겨 고개는 주억거리지만 쉬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서로 알고 있다. 단지 밖으로 내놓음으로써 상처에 난 진물이 바람에 고슬고슬 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한점 있을 뿐이다. 그렇게 지저귐만으로 우리들의 마음은 비워지고 있었다. 한산해지고 있었다.
산골에서 돌아와 다시 사진을 본다.
그 안에는 바락바락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 치고는 너무 초록이 이쁜 바랭이와, 자꾸 뭔가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맘이 오래된 빛으로 따뜻한 대바구니와, 존재 자체를 드러내며 직언을 서슴지 않으나 던져놓고 상대가 다칠세라 눈치를 볼 줄 아는 속이 붉은 자두 같은 친구들과 2박 3일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