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집에 가면 소나 돼지 같은 동물들이 있지요? 과학 시험 마지막 문제는 거기에 있어요. 집에 가거든 잘, 아주 자~알 관찰해 보세요. 이상! 반장!"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 여름, 학기말고사 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 기말고사가 있기 전 선생님들은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를 찍어 주셨다. 몇 쪽 몇 쪽을 잘 읽어보라던가 아니면 몇 쪽에 있는 그림을 잘 보라던가 이렇게. 평소 공부에 별 관심이 없던 아이들도 이렇게 시험 힌트를 주는 시간이면 책장을 넘겨 쪽수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연습장에 메모를 하느라 바빴다. 쉬는 시간이면 그나마 선생님의 시험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 공부 좀 한다는 아이 책상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거기에 반 평균을 올려 1등 반을 만들고 싶었던 담임선생님은 한술 더 떴다. 미술전공 담임선생님은 각 과목별로 주어진 힌트를 정리해서 아침 자습 시간 서기에게 칠판에 옮겨 적도록 했다. 이런 식의 시험 보기 전 족집게 강의는 시험공부에 대한 의지를 올리는 효과는 있었던 듯, 우리들은 선생님께서 찍어준 페이지와 문단과 그림에 별표를 3개까지 그려 넣었다. 나는 빨간색 볼펜으로 그 별표의 빈 속을 가득 채웠다. 이 붉은 별 세 개짜리는 시험 보기 10분 전 빛과 같은 속력으로 화장실을 다녀와도 한 번은 꼭 봐야 할 것들이었다.
시험범위 내에서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시는 동안 과학선생님의 두툼한 입술가에 하얀 침이 보글거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갑자기 과학선생님은 책을 덮었다. 선생님의 각진 턱, 굵직굵직한 눈과 코에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때 선생님이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으며 남긴 마지막 힌트는 바로 이것이었다.
"집안에 있는 짐승들을 잘 관찰해 보세요. 과학시험 주관식 마지막문제 5점짜리는 거기에 있어요. 이상!"
"아이, 선생님! 선생님! 그게 뭐예요? 무엇을 관찰해야 해요? 힌트를 더 주세요!"
우리는 과학 선생님의 뒤통수에 대고 악을 썼다. 그러나 선생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귀띔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암소가 매여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봐도 시험 문제로 나올만한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내가 짝을 맞춰 작두질한 여물을 오물거리던 누런 황소는 큰 눈을 떼룩 굴리기만 할 뿐 눈가에 낀 눈곱만큼의 힌트도 주지 않았다. 꼬리로 엉덩이 쪽에 붙은 파리만 찰싹 때릴 뿐이었다.
대추나무 아래 있는 돼지막도 들여다보았다. 화장실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살고 있던 꺼먹돼지들도 주둥이를 돼지막 나무 울타리에 쓱쓱 비비기만 할 뿐이었다.
마루 밑에 숨은 누렁이도 혀 빼물고 엎드린 채 시험공부를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는 눈치였다. 하필이면 누렁이는 부지깽이를 든 언니와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뒤였다. 토방 위에 올려놓은 언니의 검정구두끈을 누렁이가 질겅질겅 씹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소와 돼지, 강아지도 모두 내게 비협조적이었다.
포기한 채 장독대에 빙 둘러진 무릎높이의 벽돌담에 앉았다. 머리 위로 엄지손톱만 한 열매를 맺은 납작감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장독대 바닥에 깔린 자갈 사이로 붉은 맨드라미 이파리가 간장 항아리 키만큼 자라 익어가고 있었다
담장옆 쪽으로 봉숭아 붉고 하얀 꽃잎이 떨어지고 씨앗이 팽그르르 터지고 있는 날, 나는 기말시험 준비한답시고 교과서를 들고 장독대에서 그렇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진득하게 앉아서 해도 부족할 텐데 책을 소리 내어 읽고, 멋을 부리고 있었다. 심부름을 시키는 엄마에게 시험이 내일부터 시작이라고 투덜거리고 뒤꼍에 나왔지만 애당초 시험은 글렀다. 아무리 봐도 과학시험 주관식 문제는 못 맞출 성싶었다.
다음날, 종소리가 나고 선생님이 시험지를 걷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아이들은 먼저 그 문제에 쓰인 단어가 주는 그 이상야릇한 느낌에 큭큭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다음 정답이 무엇인지 서로 묻느라 요란스러웠다.
"내가 소 밥 주면서 봤다고!"
시험이 끝나자 큰소리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서 정답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눈으로 봤다는데 이길자는 없었다.
"우리 집도 키우거든 나도 봤어... 그런데... 세어보진 않았네?"
마당에서 한참을 소와 돼지랑 눈씨름을 했던 나도 헛웃음이 나왔다. 틀렸다. 문제를 보는 순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설마 유방의 개수를 물어올 줄은 몰랐다.
열네 살 우리에게 유방은 금기어였다. 이제 막 가슴이 봉긋거리기 시작하고 한 두 명씩 생리가 시작되던 우리들에게 신체적 성장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학교 가는 길 위에서 흙으로 덮어가며 그 부끄러움을 지운 적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얼마 전 가정시간에 배웠던 남녀 생식기관 구조가 아스팔트 위에 하얀 분필로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교과서를 펼쳐놓고 그린 듯 아주 상세하게 화살표를 넣어 명칭까지 적어놓은 그림에 우리는 누가 볼세라 발바닥으로 밀어 지워냈다. 지워지지 않는 부분은 도로 옆 흙을 파다 덮었다. 앞서가던 옆동네 어떤 녀석들을 욕했다. 우리의 정서적 성장은 신체적 발달을 아직 버거워하고 있을 때였다.
가까이 있다고 다 아는 건 아니었다. 마지막 주관식 정답을 맞힌 아이는 우리 반에서 서너 명에 그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험이 끝나고 큰소리치던 그 아이는 물론 정답을 맞혔다. 시험이 모두 끝난 후, 아이들은 뾰로통한 목소리로 선생님의 주관식 문제에 항의를 했고 둘 중 하나만 맞아도 점수의 절반을 주는 것으로 종결지어졌던 것 같다.
과학선생님은 전부터 상체가 하체보다 앞서는 오리궁둥이라고 스스럼없이 우리들에게 말하던 분으로 우리들의 장난을 예의 그 씨익 웃는 모습으로 받아주곤 하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기말고사 이후 선생님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도 언니랑 싸우고 마루밑에 숨은 누렁이 자리에는 달력으로 만든 딱지와 아버지가 만들어준 팽이와 썰매가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과, 한 여름밤 평상에 엎드린 채 옥수수를 물고 있는 내 옆으로 모깃불을 피운 저녁이면 소와 돼지와 강아지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선생님은 우리들 맘에 들어와 한편을 먹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과학선생님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선생님의 이상한 문제는 내게 영향력 있는 기억의 한 조각임이 확실하다. 만약 그때 감나무 사진을 보여주며 '단감나무와 단감나무가 아닌 것을 구분하시오'라는 문제였다면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동물의 유방 숫자는 내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그 정답은 알지 못하고 문제만 기억나는 까닭에 다시 공부한 내용으로 덧글을 달아본다.
포유류의 젖꼭지 개수는 한 번에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수와 정비례한다고 한다. 소는 4개, 개는 8개, 돼지는 열 마리 이상 낳으니 12개 , 종에 따라 20개일 수도 있다고 한다. 생존의 욕구가 가져온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