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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Sep 13. 2023

번역 오류입니다.

정녕  집에  가고  싶으신 것인지  우리 집에  머무르고  싶으신 건지  헷갈린다.

 시간이  난  동생이  어제 엄마를 모시고  시골집으로  갔다. 주말까지  있다가  모시고  올라온다는데  엄마는

"나  추석까지  거기  있으면  안 되겠냐?"

하신다. 물론  된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며칠  계시는 동안  발등에  보라색 멍을  만들어 오시지 않았는가? 순간  방심하면  넘어지실게  뻔한데  혼자  집에  계시게  할 수는  없다. 아침, 저녁으로  언니가 식사를  챙겨드리러  시골일하는  도중 들르겠지만  그  사이사이  시간이  또  걱정이다.

그래도  살아생전  당신 집에서  맘 놓고  계심이  좋을 듯한  생각도  든다. 이곳  아파트에서  고작  만나봐야  매일 보는  우리 가족이  전부인 것보다는 이웃 할머니들이  놀러 오는 그곳이 당신 삶의 질을 훨씬 올려놓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다시  넘어지면  그나마  보행기를  밀고  걸어 다니는 것도  불가하게  될까 봐  조심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신 발로  걷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버지와 시어머니를  통해 학습했기 때문에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스스로  걷지  못하면  우선  그나마  가지고 있던 근육마저 달아나버린다. 그리고  입맛을 잃어가고 또 체중이  줄어들고 더 야위어 간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 곁에 안 계시게 된다. 너무도 뻔한 일을 두고 모른 체할 수 없다. 최대한 당신을 붙잡아 두고 싶다면 혼자 계시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미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시어머니에  비하면  그나마  엄마의  총기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가끔, 어쩌면  자주 우울함을  드러내신다. '이렇게  살아  뭣할 이냐?'라고. 왜  그렇지 않겠는가? 머리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몸은  겨우  먹고  자는 것 밖에  할 수 없고, 목욕마저도  당신 손으로  개운하게  하고 싶은  맘은 굴뚝같으나 그게  마음뿐이니...


퇴근길  열린 방 문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당신의  등에서  참혹하리만큼의  외로움을  읽게 된다.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살고 있는 구순을  앞둔 할머니의  어이없음과  회한이  읽힌다. 어느 때는  그  외로움이  퇴근길  피곤한 내 몸에  들러붙어  덩달아  힘들다. 그러다  어느 때는 내게 손 내밀며 걸어오는 그것을 쨍한 목소리로 차단한다.

"엄마, 오늘은  전이나  부쳐먹을까? 내가  부추하고  맨드라미 이파리  뜯어 왔어!"

엄마에게  전은  자다가도  일어나 드실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그리고 부침개 정도가 그렇다. 모두  엄마의  생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었는지  대충  짐작하게 하는  것들이어서  마음이 짠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러니까  엄마는  시골 당신 집에  계시고  싶은 것인지, 우리 집에 오고 싶으나  사위 눈치를 보고  계시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시골집에  계시고 싶으나  당신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늘  같이  살아온  제일  엽렵한  셋째 딸이  아니어서 불편할게  뻔하고, 어쩌다  넘어지게 되면  맞이할 사태들이  무서워서 다시  2년 넘게  살고  있는  우리 집으로  오고 싶으신데,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딸네 집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사위에게  미안하고  볼 낯 없어  뾰족한  수가  없으면서도  시골에  살겠다고  하는 것인가? 읊고 있는 나마저 갈팡질팡이다.


아, 복잡하다!  이럴 땐  엄마가 좀  이기적이었으면 싶다. '내  맘은  집에서  살고 싶으나  그게  어려우니  내  자네  신세 좀  짐세!'라고  속 시원하게 사위에게  말하고  편히  지내시면 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으니.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느라 애면글면 살아온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단번에  바뀔 수 있겠는가! 내가  포기한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을  대-충 읽고  내 마음으로  덮는다.

"아들이  함께  있는  주말까지만  함께  시골에  계시다  같이  올라오셔. 그리고  또  추석에  애들이랑 같이  내려가게.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라고.


그러면 당신은  속으로 '그래, 네 마음이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하자!'  싶으실 게다. 당신 마음보다  상대인  내 마음을  살피고  계실 것이  분명할 테니. 아, 어려운 일이다! 속마음을  쉽사리  내놓지 못하고  사는  어른들과  사는 일이란.  그나마  이렇게  답을  쉽게  내릴 수 있게  된 것은  거의  10여 년을  어른들과  실랑이를  해가며  살아온  세월이  준 학습효과라고  본다.


분명 '싫어'라고 했는데  정녕  싫어서  싫은 건지 표면적으로는  싫다지만  내심 '좋아!'를  못해 밖으로 싫다는 말만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어지러워진다.

'싫어요,  도련님!' 하며  옷고름을  손에 감고  애써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감추려 몸을  돌리는  아가씨는  그렇다고  치자. 사랑에  몸이  달아  자신도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몰라 싫다고  하는 게  어쩜  덜 부끄러울 것 같아  짧은  순간 선택한  말이 그것이었으려니  그렇다고  인정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엄마, 아니  어머니, 아니  두 분 모두 '보청기  하러  가실래요?'라는  물음에  같은 답이 돌아왔었다.

"아이고 됐어야ㅡ 무슨 그렇게 필요허가니?ㅡ 지금까지도 없이 잘 살아왔는디 뭐시ㅡ"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 함께 살고 또는 가끔 만나는 내게 할머니들의 yes와 no는 별반 차이 없었다. 1930년대 태어나 어린 시절  열병을 앓거나 귀앓이로 귓속에 물이 흐르고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냥 살아오신 두 분. 친정 엄마는 오래전부터 보청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no를 yes로 해석한 형부가 앞장서지 않았음 불가능한 일이었다. 행여 보청기가 고장 난 날이면 엄마는 동네 사랑방인 회관에 나가는 걸 주저했다. 그 후 동생이 서둘러 청각장애 등록과정을 거쳐 정부지원금을 받아 조금 값나가는 보청기를 했다. 비싸다는 사실과 귓속형으로 밖으로 좀 덜 드러나니 만족한 듯했다. 그것이 벌써 5년을 지나 다시 작년에 보청기 하나를 더했다. 그래서 깔끔하고 관리를 잘하는 엄마는 두 개를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다.


엄마가 국가지원금을  받아 보청기를 하신 후, 보청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어머니에게  이비인후과 진료를 어머니의 아들, 남편이 권했다. 잘 들리시지 않게 되자 아무 말도 아닌 것에 오해를 하는 일이 생겨나자 찾은 해결책이기도 했다.

"뭐시ㅡ 안 해도 돼.  옛날에 느그 아버지 살아서도 병원에 갔어야. 근디 삐이ㅡ허니 시끄럽고 혀서 그냥 왔당께ㅡ"

"여하튼, 내일 가게ㅡ준비혀요ㅡ"

둔한 며느리 '안 가신대잖아ㅡ'라고 시큰둥했으나 '우리가 한두 번이냐ㅡ'라는 아들, 금방 모시고 나왔다.

진정한 yes였다.

"시골 가보니 옆집 할마시도 귀가 꽈악 묵었드만  혔드라ㅡ"

어머니는 가끔 관절약을 타러 가는 시골 보건 진료소에서 할머니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꺼내셨다. 내심 부러우셨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야 시어머니 오른쪽 귀는 이미 어릴 적부터 청력을 상실하셨음을 알았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장애등록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어머니도 보청기를 했다. 우리는 무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정한 no와 yes를 구분하지 못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답답한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땐 가장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딸(시댁에서는 시누이)이라는 대화 창구를 통해 번역해서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번역기가 말썽이었다. 아마도 세월이 흐를수록 거울 속 자신이 작아져감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은 그 번역기마저도 속이기 때문이다. 우선 yes라고 말했을 때 자식들에게 갈 수고로움과 당신의 불편함을 저울질한 후 나온 대답은 항상 당신보다는 자식들의 입장에서 답하려다 보니 어느 것이 진정 당신이 하고픈 말이었는지 당신도 속고 있다.

번역오류다.

이런 오류에 짜증이나 하고 싶은 말 그대로 하시라 말해도 당신은 '여전히 너 하고 싶은 것이 정답이다!'를 고수하고 계신다. 그래서 여전히 어렵다.


마지막으로 요양원에 계셨던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점심 먹었냐?"

코로나로 인해 투명한 가림막 앞에서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는 찾아온 우리 가족에게 밥 걱정이셨다.

남편은 쭈그리고 앉아 어머니의 야윈 발목을 잡고 고개를 숙인 채 주무르고 있었고, 당신이 제일 어여삐 여기시던 작은 아들은 할머니 손바닥을 투명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맞대고 있었다. 아들의 손이 훨씬 컸다.

"엄마, 집에 갈까?"

남편은 물었다.

어머니는 그저 빙긋이 웃고 계셨다.



<그림 : PIXAVAY ElisaR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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