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오전내내 만들어 놓은 메주를 찍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가족 단톡방에 올려놓았다.
"스팸인 줄 알았넹"
몇 분 지나지 않아 올라온 작은 아들의 문자였다.메주를 자주 본 적 없는 아들 눈에는 언뜻 보면그리 보일 듯도 했다.
"불린 콩을 삶고찧어 이렇게 만들어낸 메주를 볏짚 위에 올려놓고 여러 날 동안 발효를 시킨단다. 정월, 그러니까 내년 설이 지난 후에 메주를 일정한 소금물에 담글 거야. 또 시간이 흘러 숙성이 되면 메주가 담겨있던 소금물은 간장이 되고, 건져낸 메주가 된장이 되는 거야."
청국장 앉혀놓은 사진까지 보내며 욕심껏 곁들인 설명에 아이들은 신기해한다. 그럴 만도 하다. 나만해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직접 메주를 만들어본 것은 겨우 두 번째, 청국장은 처음이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엄마와 함께 시골로 향했다. 두 시간여를 달려 도착하니 아홉 시, 마당에는 이틀 전부터 불려놓은 콩 두 솥이 벌써 끓고 있었다. 두솥 가득 삶아 메주 열 덩어리를 만들고 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콩이 물러지도록 뜸 들이는 시간에 불멍을 때리는 여유가 잠시 있었을 뿐, 나머지시간은엉덩이를 붙인 채 꼼짝못 하고 거실에 앉아메주덩어리를 만들어야했다. 언니는메주콩 담은 뜨끈한자루를밟아 으깨느라 새벽부터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빻아진 콩을 메주틀 안에손으로 꾹꾹눌러 다지고,다시 틀에서 꺼내어 벽돌 같은 메주덩어리매무새를 만지는 내 손은 메주범벅이었다.입고 있던 바짓가랑이도 야금 메주 한입 물고있었다.
세 모녀가 참여한 메주 만들기 전수 과정, 엄마는 안방 침대 위에서 서툰 두 딸의 메주 만들기 과정을 눈으로 감독 중이었다. 중간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한가한 손이 없어시작과 끝만 사진에 담는 수밖에 없었다.
메주쑤는 일은몇 해 걸러한번치르는일이어서 마침 그날 그곳에 있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기억 속 메주 쑤는 날은 온전한 하루가 아니다. 그래서 여러해에 걸친 짤막짤막한장면들이 조각보처럼 알록달록하게 기워져 남아있는지 모른다.
메주 쑤는 날 아침은새치름한 날이었다.
"어이, 춥네! 당신은 안 추운가? 손이 깨지게 시럽구만..."
"아이고, 요것이 춥다고 그요? 당신은 불이나 얼른 때시오!"
지금처럼 그날도 엄마의 진두지휘하에 있었다. 장맛을 담당하는 엄마가 그날의 선장이었다. 흰 머릿수건을 쓰고 부엌과 마당을 오가며 분주한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빨간 털실로 만든 술이달린 붉은 털모자를 쓰고 아궁이 앞에앉아계셨다. 아버지는 솔가리(마른솔잎)를 한 줌 넣어 성냥을 그어대고 불이 댕겨 붙으면 불이 날아가지 않고 적당히 옆 솔가리에 당겨 붙을 만큼 후 입김을 불었다. 그리고 조금 거친 소나무 가지나 콩대를 넣었고, 활활 타오르면 장작을 아궁이에 들이밀었다. 엄마는 여전히 부엌에서 마당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콩이 익었나 물렀나를 확인해 가며 부산했다.
어느새 자란동생은 불끈 절구공이를 들어 절구통 안으로 내리쳤다. 김을 설설 피우던 삶은 콩알이 밖으로 튀었다.
다 큰 아들이 듬직하면서도 요령 없이 힘만 쓰는 게어설픈지 엄마는 절구공이를 뺏어 들었다. 몇 번 보고 있던 동생은 다시 절굿공이를 엄마 손에서 뺏어왔다. 그날 진눈깨비가 날아와 절구통에 내려앉았었다.
엄마는 쪼그려 앉아 메줏덩이를 뭉쳐서 아기 궁둥이 찰싹거리듯 쳐가며 다지고 있었다. 찰지게 다져지는 엄마의 메주를 옆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한쪽면을 다지면 다른 면이 흐트러지고 잘 뭉쳐지지 않는 정말 메주같이 생긴 메주와 실랑이 중이었다.
"음마, 나 보다 잘 헌다잉!"
아버지는 부엌으로 들어와 만들어놓은 메주덩어리를 안방으로 옮기며 추임새를 읊었다. 일이 우리들의 손끝에 좀 익었을까 싶을 무렵, 마지막 메주덩어리가 안방 볏짚 위에 앉혀졌다.
메주 쑤는 날은 외할머니,아버지,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할머니와 큰엄마 큰아버지마저 소환된다. 메주 모양을 성형하기 위해 광 구석에서 나무로 된 둥그런 상도 먼지가 쌓인 채 시간을 거슬러 걸어 나온다. 거실 창가에 앉은 엄마는 삶은 콩자루를 꾹꾹 밟아 으깨고, 벽돌모양 메주를 빚느라 여념이 없는 두 딸에게 동그란 나무로 된 밥상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다. 엄마 나이 스물서넛, 큰언니도 낳기 전 샀던 동그란 나무상은 시댁과 친정을 걸어 오가며 들고 다녔다고 한다. 동서 시집살이를 겪고 있는 둘째 며느리이자 전쟁 후 졸지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의 맏딸로 고단했을 그 시절의 엄마를 상상해 본다. 이제는 칠도 벗겨져 나무 본래의 모습만 남은 그 상은 우리들 어릴 적 칼국수를 밀어내던 분식점이었고, 팥앙금을 넣어 찐빵을 동글동글 굴려내던 빵집이었으며, 약과와 강정 유과를 밀거나 칼질해 내던 떡방앗간이 되기도 했었다. 이젠 메주 성형대가 되었다. 메주에서 떨어진 으깨진 콩덩어리를 한입 했다. 단맛이 났다.
"엄마가 메주 쑤기 전날 꼭 머리 감으라고 하시더라."
메주 쑤는 날은 머리를 감으면 안 된다고 미리 전화를 하신 모양이었다.
"에이, 메주에 머리카락 들어갈까 봐 걱정돼서 옛날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이겠지?"
다행히 의도하진 않았지만 새벽에 일어나 출발해야 했기에 전날 저녁에 머리를 감았다. 메주 쑤는 날 머리를 감으면 메주에 머리카락처럼 검은곰팡이가 올라온다고 한다. 메주 사이에서 검은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연기처럼 나오는 상상을 아주 잠시 했다. 굳이 금기사항을 어길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동안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어 줄 간장과 된장의 시발점, 메주를 만드는 일이니 만큼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떡시루를 앉혀놓은 아궁이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불을 지피는 사람은 떡이 익기 전까지는 함부로 화장실을 다녀와서도 안되고, 행여나 시루가 앉혀진 아궁이 불길이 들어가는 방에서는 떡이 설익는다며 가로 누워있지 말라고 아예 우리들을 안방으로 내쫓았던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언니는 발로 꾹꾹, 나는 손으로 탁탁 리듬을 탔다.
메주를 쑤기 위해서 모두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났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는 허공에 메주를 쑤느라 밤새 한숨 못 잤다. 처음 주인된 손놀림으로 메주를 쑤려니 걱정되어 깊은 잠을 못 잔 것은 언니도 매한가지라고 한다. 힘만 보태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온 나만 홀로 태평이었다.
메주를 쑤기 위한 과정은 며칠, 아니 보름 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가을에 수확한 메주콩을 아랫목에 개다리소반 펼쳐놓고 그 위에서 썩거나 벌레 먹은 콩을 골라내는 일부터 시작일 터이니 그리 잡아도 될 일이다. 골라놓은 콩을 묵은 콩은 이틀 전, 햇콩은 하루 전에 깨끗이 씻어 불려놓은 수고로움을 거친 뒤 하루 만에 메주 스물다섯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불을 지핀 언니 덕분에 오후 4시쯤 되어 마무리되었다.
이왕 한 김에 삶아놓은 콩도 있으니 메주 한 덩어리를 포기하고 청국장도 앉혔다. 이제 구순이 다 돼 가는 감독님의 지시대로 시루에 삶은 콩을 앉히고 볏짚 뭉치를 세 군데 비스듬히 찔러 넣어주었다. 언니와 나는 묵은지에 숭덩숭덩 썰어 넣은 돼지고기와 청국장 한 움큼이면... 벌써 꿀꺽 침이 넘어간다를 연발했다. 이틀의 시간만 지나면 고약한 냄새를 무시할 만큼 맛있는 청국장을 만날 수 있다. 따뜻한 공기와 콩과 볏짚이 만나 시간과 버무려져 청국장을 띄워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