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더분한 버마재비 Jul 24. 2023

띄어쓰기, 애릅다

"요것 좀 읊어볼래? 요것은  아무래도  뒤에서부터  읽는 모양이어야."


'방귀쟁이  며느리'

세로 쓰기로 된 책, 오랜만에 책을 뒤에서 앞으로 넘겨본다.

"한 처자가 있는디 참 고와. 근디 이 처자가 말여, 방귀를 참말로 잘 뀌어."

구어체,  맛깔난  사투리까지  섞인 이야기에  엄마 눈이 웃는다.

"시집을 가고 보니 어른들 앞에서든 신랑 곁에서든 방귀를 뀔 수가 있나. 참고 참고 참다 보니 누런 메줏덩이가 되었네 그려."

"근다고  방구를  참으며  쓰가니..."

 흉내 내어 읽는 내 목소리 사이사이 엄마는 참견을 한다.

나는 시아버지가  되었다가  금세 며느리가  되었다.

"방귀에 날아갔던 시아버지는 가마솥을 짊어지고 닷새만인지, 엿새만인지 비실비실 들어왔더래."

"아이구구... 시상에나..."

"방귀 한번 더 뀌었다가는 집이 풍비박산 나게 생겼거든 그래서 친정으로 보냈어."

"시상에 뭔 방구때문에 쫓겨난다냐..."

방귀소리  빵, 뿡, 뽕을  외칠 때마다  뭐  이런 남사스러운 책이  있냐는 듯  눈가에  주름을  일으키며  웃는다. 신이 난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다시  비단장수와  놋그릇  장수가  되어  나무 위에 열린 배를  먹고 싶어  허덕인다. 엄마는 이야기에 쏙 빠진 모양이다. 나는 한글을 가르치고픈 욕심 한껏 담아 글자를 짚어가며 읽는다. 그런데 엄마에게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며느리는 너무 화려한 그림이고, 글자는 너무 작다. 게다가 세로로 쓰여 있었다. 읽어달라고 한 이유가 있다.

"며느리는 다시 한번 뿌웅뽕빵뺑삥 방귀를 뀌어 후드드득  배를  떨어뜨리고는  비단과  놋그릇을  얻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부자로 잘 먹고 잘살았더래."

"음마... 방구도 쓸데가  있다이..."

이야기가 끝났다.

"근디 요건 별로 재미없다야."

"오메, 들을 때 웃는 것은 뭐다요?"

"어려서 삼 삼으러 다닐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여..."

"근디 처음 듣는 것처럼 웃었잖아, 엄마!"

"그래도 방구 이야기는 웃기냐 안(그러냐)?"

 

퇴근길, 중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방에  엄마는 둥글게 허리를 말고 침대 끝에  걸터앉아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책을  보고 계셨다.

"왜  안경도  안 쓰시고?"

들어서기가  바쁘게  타박을 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가방만 거실에 던져둔 채 엄마방으로  갔다.

"엄마 책 보고 계시네?"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으면 참 잘 쓴다, 잘 읽는다, 다독여야 한다. 더욱이 엄마는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다.

"어따 풀어묵을 라고 공부를 한다냐? 하도 심심해서 쓰고 있제..."

그러면서 은근히 당신이 쓴 공책을 보여주신다.

"한번 봐 볼래? 잘 쓰고 있는가 모르겄다. 이제 마지막 공책이어야..."

"그래서 이렇게 띄어쓰기를 안 하시나..."

"띄어쓰기가 애르와야..."

"엄마, 공책이 아까워서 그런 거 아니고?"

상그레 웃으신다.


엄마는  동생이 사다준 동화책을 필사하고 계신다. 가끔 틀린 글자가 있지만 내 눈엔 참 참한 글씨여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지우개로 지워가며 써가는 당신의 흔들리는 손가락이 애처로워서 그냥 둔다. 그래도  띄어쓰기는 짚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고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빈자리가 아까워서 자꾸만 한 글자 한 글자 들여놓는다. 심지어 한 칸에 두 글자가 서로 내외한 채 깨금발로 서있다. 가끔은 칸 밖에서 빼죽이 고개를 내밀고 선 글자도 보인다. 담장너머 접시꽃처럼.

엄마는 허리수술 후  힘든 일  하지 말라던  의사말에 ' 어찌 그라고  살 수 있간디...'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갈비뼈와  고관절 골절이 된  후에야  호미를  놓았다. 그리고 이제  호미대신  연필을  쥐고  열 칸 공책에  글자를 심고 계신다. 빈칸이 노는 땅처럼 애가 타서 흔들리는 손에 힘을 줘가며 한 칸에 한 글자씩, 때로는 두 글자를, 또 때로는 칸 밖에 또박또박 심어놓는다.



엄마에게 빈칸은 노는 땅이다.  평생 호미자루 놓지 않아 굵어진 손마디가 이제 앙상해졌어도 놀고 있는 땅은 눈에 밟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뭐라도 심어야 한다. 찰밥과 팥떡을 해 먹다 퇴물이 되어버린 시루에도 채송화를 심어놓던 엄마였다. 엄마의 띄어쓰기, 애릅다.


"어쩌다 비어있는 칸은 뭐야?"

"응, 공책이 몇 권 더 있냐 안(그러냐)?"

어젯밤 할머니 공책을 사 온 아들 덕분에 마침표와 쉼표, 느낌표가 있는 곳은 빈칸으로 두신 모양이다. 가끔 씨앗을 심다 앉아서 쉬는 공간인가 보다.


습기에 절인 몸으로 집안을 들어서면 엄마는 내게 묻는다.

"밥은 먹고 일했냐? 힘들지? 고생했다!"

"누가 보면 쉰 넘은 애기인 줄 알겠네."

"누구 전화한 사람은? 점심이랑 식탁 위에 놓고 간 주전부리들도  잘 드셨고?"

"누가 보면 아흔 다 돼가는 애기인 줄 알겠다."

우린 서로가 애기인 엄마와 딸이다.

나도  엄마도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달리는  자동차 와이퍼는 날래게  쓱싹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책을  주어들고  다시  내게  물었다.

"아이  쌔(혀)가  잘 안 돌아가야... 요것 좀  읽어봐라."

엄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나는  또박또박 읽었다.

"게.으.름.뱅. 이. 게으름뱅이!"

"게...으...르...음...배...앵...이?"

"게으름뱅이!"

"게...으...름...뱅...이..."

"응, 게으름뱅이."

"게으름뱅이..."

"인자  되았다."


*애릅다=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울지 않는 매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