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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Jul 20. 2023

울지 않는 매미

장맛비가  잠시 멈춘 오후였다. 엄마 기분이 흐렸다. 며칠 비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였다. 그보다 큰 이유는 향수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한 달여 동안 큰 언니네에 다녀온 엄마는 시골 당신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긴 장마가 시작되었다. 혼자서 시골집에 계신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현재 몸 상태로는 당신도 혼자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그렇기에  엄마의 마음에도 며칠째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책을 나섰다. 노인의  몸은  움직여주지 않으면  굳어간다. 기분이 울적할 때는 걷는 것만큼 좋은 약이 없다. 여섯 시가 넘은 시각, 나가자는  말에 엄마는 주저 없이  따라나섰다. 아마 나가자고 하기를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적어도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혼자  걸어서  당신 집으로  얼른 가야 한다고 읊으신다. 열심히 걸어야 한다며  팔십구세  종이장처럼 야윈 몸으로   워커를 밀고 거실에서  엄마 방까지  몇 바퀴를 도신다. 하지만  집안에서  개미 쳇바퀴 돌듯 걷는  걸음은  성에  차지 않는다. 둔한 오른쪽 발가락 때문에 크록스 뒤꿈치를 겨우 꿰고서 현관문을 나섰다.

  

엄마는  온 힘을  다해  보행기를  밀고  걷는다. 나는  뒤 따라가거나  나란히  걸으며 중간중간  딴생각을  하거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비가 그친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산책하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나무와  길, 하늘과  이웃 아파트를 둘레둘레 바라보았다. 비 온 뒤 여름의 초록이 싱그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매미를 보았다. 길옆  참빗나무 가지에 붙은 매미를  보았다. 내  허리춤쯤 닿는  참빗나무 줄기에  매미가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보통 매미라면  사람 인기척에  이미  푸릉 하고  날아가버렸어야  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죽은 듯 꼼짝 않는다. 하지만  여섯 개의  다리는  참빗나무  줄기를  꽉 붙들고 있었다. 몸체를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잡아 보는데  그 아이가  나무줄기를  붙들고 있는  악력이  느껴졌다.

살아있었다. 하지만   다리 이외의  어느 기관도  살아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시  등을  만져보았다. 다리가  오물오물  움직였다.

살아있네?

번 다리를 줄기에 비비듯이 오물거리더니 다시 꼼짝 않는다. 너의 관심이 대단히 귀찮다는 움직임으로 보였다. 다시  만지지  않았다.  사악한  인간의  손아귀에  곧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저  꼼지락거리는  다리의  움직임만  내놓는다면  내버려두어야 했다. 그저  말없이 지나가주는 것이 도리인 듯했다. 사진을  몇 컷  가까이에서  찍어대는 나의  무례함에도  뒷등으로도  말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길  오른쪽  산딸나무  위에서  다른  아이가  울어댔다. 그렇담  저 녀석은  수컷이고  이아이는  암컷일까?  알지도  못하는 깜냥에   뒤집어 보아야  울림통(발음기)이 있는 수컷인지,  꼬리모양을  보아  산란관이 있는 암컷인지    암수를  구별할 텐데  매미는  꼼짝도 않는다.

 재미없네...

벙어리매미인가 보다...

나와 매미를  지켜보던 엄마는 부질없는 행동을  내버려 두고   앞서  걸으셨다.

올 때  다시  보아야지...

엄마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후다닥 엄마에게  뛰어갔다.


돌아오는 길  다시  보았다. 매미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그대로  들러붙어있었다.


다음 날  비가 쏟아졌다. 

 다음 날,  아직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퇴근길 매미가  자꾸  신경 쓰였다. 일부러  차를 산책로  옆에  주차하고  가보았다. 매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혹시  다른 가지에  앉아있을까 싶어  자세히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없었다. 어디 갔을까? 차 안에서  얼른  집에 가자고  7살 된 강아지 재재가  짖어댔다.


굳이  인간의 생으로  따지자면 매미도 일곱살이다.

 평균  7년의  생애, 암컷의 꼬리  산란관을 통해 나온 알은 나무속에서  1년여를  살다가  부화한다. 애벌레는  땅속으로  들어가  나무 수액을  먹으며  6년여를  살아간다. 그리고  땅 위로 올라와 탈피,우화의  과정을 통해  날개를  펴고  우리가  알고있는 매미로 2~3주를  살다  간다. 수컷은  찢어질 듯  뱃속  울림통을  떨어가며  암컷을  불러들이고  짧은  사랑 후  죽는다. 암컷은  그 어미가  그랬듯  나무껍질 틈새에 알을  낳은 후 죽는다.


 한 달도  안 되는  생애를  악을 써가며  짝을찾고 사랑을  나누고 새끼를  낳고  결국 죽는다. 어쩌면 이는  인간의 눈으로  본  매미의  생이다.  어미의  뱃속에서  나온  알에서  시작된 매미의  일생을 단지 우리 눈에,  귀에  새겨진  짧은  생으로  그들을  설명한다면  섭할것이다.

 매미는  암컷으로  알을  낳는  중이었을까? 그리고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을까?  매미의  어미가, 그 어미어미가 그랬듯  대자연의  섭리를  그저  어김없이  살아내고  있었던  일까?

작은  가슴으로는  감히  이해할 수  없는  대자연의  무덤덤한 행렬에  괜스레  얕은  인간 맘보가 잠시나마 묵직해진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비를 피해  어딘가에서  남은  며칠의  생애를   잘 살아내고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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