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y 22. 2023

귀밑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하지만, 낯설다

"내가  손녀딸이녜?"

"그래서  기분이  좋았어?"

"그럼! 어려 보인다는데..."

 

소파에 앉아  얼굴을 가릴 수 있을 만큼  큰 동그란 뻥튀기를  야물거리던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 왼쪽에 앉은 남편은

'장모님이 더 늙어 보이는 것보다 당신이 젊어 보인 대서 그렇게 좋았어? 퍽이나  좋겠다!'

라는  표정으로 번들거리며 웃었다.

내  오른쪽에  앉은  엄마는

" 내 머리가  희어서..."

라며 뻥튀기를 야물거리며 웃었다.


요즈음 따뜻한 날씨와 한산한 가게일 때문에   넉넉해진 나는 엄마와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산책을 나간다.

오후 네시쯤이었다. 아파트를  벗어나  이제 막 산책길이  시작되는  부근, 의자에 앉아있던 한 분이  아는 체를  하셨다.

"여기  쉬었다  가요!"

모르는  분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를 알고 있는 나이 지긋한  분이 있을 리가 없다. 

"늘  쉬는 곳이  따로  있어서요. 저기  앉을게요."

 처음 만나  말 섞기에  아직  유려하지 못한 나는 먼저  말 건네오는  그분이  무색하지 않게  대답을  하고  조금 걸어  다른 나무의자에  앉았다. 우리의  산책에는 이제 나름 루틴이  생겼는데 그곳은 산책 중 첫 번째 쉼터였다.

 "며느리인가? 손녀딸인가?"

불쑥  들리는 소리에  바로 옆 의자를 보니  좀 전에 봤던 그분이 앉아계셨다. 어느새  자리를 옮겨  오신 것이다.

"아, 예... 딸이에요."

"그럼 그렇지!"

하얀 마스크밖으로  반달눈이 웃어 보였다. 프릴 달린 검은 모자, 주홍빛 등산복  차림, 흰 마스크 밖으로  세월이  머물다간 거뭇거뭇함이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엄마보다는  적게 드셨을 것 같았다.

"연세가  어떻게  되신다?"

"네. 여든아홉이세요."

"응 그렇구먼. 다리가  많이  불편하시구먼... 우리 언니는  아흔둘인데 꼿꼿해."

아, 이분  오늘 처음 만난 분이  아니었다. 지난주쯤  똑같은  대화를  했던 분이  있었다. 마스크  속 감춰진  얼굴 때문에  내가  몰라본  것이었다.


이어 묻지 않아도  대답하는 그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삼남일녀를  두었는데  큰아들 내외와 살고  있는  그분은  며느리가   잘한다고 하신다. 막내며느리는  큰 병원  간호사라며 자랑도  덧붙여. 큰 아들이 술도 담배도  않고  착실한 데다가  당신한테  잘하니  본을 받아서  나머지 두 아들  모두 잘한다고 술술 자랑하신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너는  복 받은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잘 걸어 다니니 얼마나  좋냐?'라고 하셨다는 말도. 그리고 엄마 얼굴을  몇 번 다시 보아가며 젊었을 적에는 고운 얼굴이었겠다고 마무리 지으셨다.


 

엄마는  아무 말도  않고  앞을  바라보고  있고, 나는 ' 네... 그러시겠네요... 그렇죠....'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신 듯 산책이  끝나는  길이었다며 일어서는  그분에게   엄마와  나는  인사를 했다. 그분은  꼿꼿한 걸음걸이로 우리가 나온  아파트로  들어가셨다.

 

그분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엄마는 말했다.

"말동무가 필요하셨네... 짱짱하시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던가 싶다..."

그리고 쪼글쪼글하고  굵게  마디진  손가락으로 뒷머리를  빗어내렸다.

"머리카락이  요렇게  하얀께  더  들어 보인가 보다..."

엄마 손가락 사이로 짧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반짝거렸다.

"곱기만 하구먼... 엄마는..."

누워있다 나와서인지 조금 납작해진 뒷머리를 손가락을 넣어 띄워보았지만 힘없는 머리카락은 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염색을  할 때마다  가려움증에 시달렸던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보건소에서 항히스타민제 약까지 지어다 드시며 검은 머리카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신 손으로 염색하는 날이면  귀밑머리 몇 가닥쯤은 꼭 희끗했고, 애먼 귓불과  목덜미에는 머리카락 그림자 같은 거뭇한 흔적이 남았다. 가끔 시골집에 들렀다 가는  자식들 손을 빌려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시력에도  좋지 않고  가렵기도 한데  약까지 먹어가며  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궁싯거림도  들어야 했지만  끝끝내 고수했던  검은 머리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리가 말을 안 듣고, 허리는  굽고,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늘어가도 머리카락만은  당신 손으로 그렇게 다시 검게  만들 수  있었다. 발끝부터  얼굴까지는 세월을  비켜갈 수  없었지만  머리카락만은  젊음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엄마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젊음이었다.


그런데 흉추 압박 골절 이은 고관절 골절은  하얗게 쇠 버린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하는 행위를 아주 하찮은 일로 만들어버렸다. 엄마는 이제 염색을  못한다. 안 하고 있다. 처음에는  못하는 일이었던  것이  점차 안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염색이 당신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데는 혼자 머리를 감을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아마도 염색은 시력에도 나쁘고 약까지 먹어가며 하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들이 박박 우겨도 당신 집에서 혼자 사신다면 , 당신 손으로 머리를 감을 수만 있다면 지금도 염색을 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렇게 검은 머리로 젊음을 몇 년어치라도  사고 싶어 하실 것이다.


염색을 하지 않은 채 흰머리를 동글동글 말린 파마를 하고 미장원을 다녀오던 날 엄마는 말했다.

"너희 외할아버지가 내 귀밑머리를 땋아주셨지. 외할머니 보다 외할아버지 손끝이 여물었고...

일곱 살부터  보리쌀 갈아 밥 하던 내가 외할머니한테 야단맞을 때면 외할아버지가 그런 외할머니를 말렸어.  아직 어린데 뭘 그러냐고... 어린것이 물 길어다 밥하고 길쌈하러 다닌다고 짠하게 여기셨지...  

열아홉 시집가던 날, 쪽진 머리를 하고 시집을 가는데 너희 외할아버지가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이라며 삼 년 동안 친정에 오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삼 년을 친정에 안 갔단다. 지금 생각하면 미련하기도 하지. 그런 말을 듣고 말이야...

쪽진 머리는 가끔 솎아내 팔아서 그릇이 되기도 하고, 너희들 엎어주던 누비포대기도 되었단다.

그리고 네가 태어나던 해에 처음으로 파마를 해버렸단다. 다들 하길래 덩달아 해 버렸지. 말도 않고 해 버렸다고, 인물 버렸다고  아버지도 외할머니도 모두 못마땅해해서  며칠은 수건을 쓰고 다녔어야."  


아침, 거울 속에 여자가 맘에 들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마음의  물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푸석거리는 날도 있고, 물기  촉촉  반짝이는  날도 있다. 그날은 거울 속 여자의 마음이 비끌리는 날이었다. 결국 나는 미장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옆 의자에 앉았다. 나는 염색과 컷을, 엄마는 파마를 말았다.

"너무 짧게 하지 말아요."

"우리 엄마는 짧은 머리 싫어해요. 남자 같다고."


거울을 볼 때마다 엄마의 손은 머리카락으로 간다. 흰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빗어주면 검은 머리카락이 될 것처럼 몇 번 빗어 넘기다 갸우뚱 거울 속을 들여다보신다. 그리고 낯설은지 길게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엄마에게 아직도 흰머리는 낯설다. 아마 영영 낯설지 모른다. 내가 내 나이를 낯설어하듯이 엄마도 엄마의 세월이 낯설다.


철없는 딸은 손녀딸이냐고  했다며 헤벌쭉 웃고,,

엄마는  흰머리 때문에  나이 들어  보인다고  속상해하던 날 저녁. 

남편은  이죽거렸다.

뻥튀기  먹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똑같냐며,

내 미래 모습이 바로 엄마 얼굴이라고.

나는 말했다.

"인정할 수  없지만 인정."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빈집, 골마지가 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