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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y 19. 2023

엄마의  빈집, 골마지가 끼었다

'잠시 고속도로 입구입니다. 오른쪽 차선을  이용해 주세요.'

내비게이션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서해안 고속도로를 올라탔다.

"보리 한 줌 비어다가 떡해 묵고 잡다고  말한 지가  언젠디  벌써  누렇게  익어부렀다!"

엄마는  오늘 '도레미파솔라시도' 중 '미'이다. 평소 '도'의  톤으로  말하던 엄마는 창밖을  바라보며  '미'의  목소리로 집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카시아도  져가고, 찔레꽃은  한창이고, 저 밭에는  감자대가  저렇게  잘됐을 끄나? 우리 밭에  감자도  붓을 했다는디  잘 크고  있을랑가  모르겄다.  벌써  모를  심었어야. 지난번에  온 비가  약비였는갑다..."

'미미 미미미미 미미미...'

내가  듣거나 말거나  엄마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는 가끔 '응...  그러네... 진짜...'를  섞어가며  엄마의 말높이에  맞춰 ''로  답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일박이일 일정으로 엄마집으로  떠났다. 나 혼자 당일치기로  끝낼 수 있는 약속 때문이었지만  엄마에게   둘러대고 혼자 다녀올 수가  없었다. 혼자 운전하며 어딘가를 다녀오는 온전한 단맛을 알고 있는 나는, 그 아는 맛을 쩝쩝 거리며 포기했다. '혼자 몰래 다녀와버릴까?'를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는 약속이 있는 하루 전 오후, 엄마와 함께 시골로 향했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서 엄마는 '레'가 되었다.

마당에  빼곡한 풀 때문이었다. 늘  엄마의 손끝에서  나오는 바지런함으로  잘 다듬어졌던  마당은  온갖 풀들이  제멋대로  들어앉아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주인 없는 것을  어찌 그리 잘 안다냐..."

엄마의 톤이 내려가자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 왔다. 그래도 아직 '도'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얼른  저것들을  뽑아내야 할 텐데...

"일단, 들어가고 봅시다!"

엄마를 부축해 서둘러 집안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두 달여를 갇혀있던 엄마의 집이 문을 열자 숨을 쉬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여놓았다. 손을  씻으려 보니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다. 집안이  바싹 마른 이유가  있었다. 밸브를 열어 수돗물을 틀으니  집안에  물기도 도는 듯했다.


두 시간여의  이동에  급하셨던지  가장 먼저 화장실을  다녀온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기가  바쁘게  물 한잔을  찾으신다. 마실 물을  가져다  드리고  있는데  바깥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이,  누가  왔당가?"

빠르기도 하다. 우리 집을  지켜보기라도  하신 것처럼 뒷집 할머니는 담장너머로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셨다.

"왔는가? 차소리가  나길래  왔다냐 했드만  정말이구만. 요것 좀 먹어보소. 조카가  가져왔는디  아직 낭창낭창해서  먹을만 할꺼구만..."

"네, 잘 먹을게요!  놀러 오세요.  엄마랑 같이 왔어요."

기정떡 뭉치를  부엌 식탁 위에  올려놓고  들어오니, 엄마는  벌써  막내아들과 통화 중이다.

"방금 집에 왔다!"

엽렵한 아들과 통화하는  엄마  목소리가  이제 '파'쯤은 된 듯했다. '파'이면 안심이었다. 걱정하지 않고  내 할 일을 해도 된다는  신호였다. 

마당에  나가는데  뒷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별것 아녀도  요것 좀  먹어볼랑가? 햇볕이  어찌나  드껍던지  요것들이 나 죽겠소 해도 물에 담그먼  금방 살아날 것이네.  겁나  맛나여!"

맨손으로 감싸 안은 가슴께에서 뿌리째 뽑은 파란 상추를   내미셨다.

"정말 맛있게  생겼네요. 잘 먹을게요!"

마트에서  만나는 그저 그런 상추가  아니었다. 귀한 시골 상추였다. 거실문을  열어드리는데 지팡이를  짚던 분이  달리다시피 방으로  들어가셨다. 삼월에  보고  못 봤으니  엄마와  뒷집할머니는 두 달여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두 분은  손을  맞잡고  한참을  '오메  왔는가!  잘 있었는가!'를  주고받으며  눈물바람을  하고 계셨다. 두 분의 대화는 '#'쯤, 봇물 터지 듯한 대화는 한참을 울음에  섞여 새 나왔다.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심란한 잡초를  뽑아내야 했다. 거름을 쭉쭉 빨아들인 길쭉한 민들레 잎은 생을  다했는지  바닥에  혀를 빼물고  늘어졌고, 흩어져 내린 홀씨는 땅 위에서  풀썩거리고 있었다. 마당이 민들레 천지였다. 들어오기가  바쁘게 '저 민들레 좀 뽑아버려라!'라고 했던 엄마의  명령대로  나는  호미로 캐서 뜨거운 마당에  던졌다. 더덕 씨앗이  얼마나  퍼졌는지 새끼손가락만 한  더덕 순들이  들쭉날쭉 서 있었다. '집안에서  자라는  더덕은 향도 별로  없다'며  뽑아버리라고  했던  엄마의  말도 들어야 했다. 그것도  뿌리째 뽑혀 마당에 던져졌다.

동네에  들어오는 길, 작약밭이  훤하던데  우리 집 마당  작약은  벌써  지고 있었다. 넝쿨장미만  제일  씩씩했다. 지난  3월에  왔을 때  심어놓은  생강은  가뭄에  다  말랐는지  코빼기도  볼 수 없었고 , 무더기로  심어놓은  오이씨는 여남은 개  손가락  두 마디쯤 크고  있었다. 어쩌다 본 기특한 녀석이었다.

한참을  쥐어뜯었다. 잔디 틈새틈새에  잔디인 척  위장하려 했으나 훌쩍 삐져나온  개망초와 갈퀴덩굴등을  뽑느라  삐질 땀이 흘렀다. 내려오는 길  창밖 온도가 34도까지 올랐던 늦은 오후였다.  따가웠다. 모기마저 반갑다며 달려들었다. 이 정도면  심란함이 좀 가셨나 싶어  내일 아침 시원할 때 할 작정으로 그만  일어섰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가져갈 된장  고추장을  통에 담으라는  엄마의 성화에 떠밀려  옥상에  올랐다. 지난겨울  엄마의  감독하에  담은  고추장  항아리를  열고  담으려니...

어쩌나...  푸른 골마지가  끼었다. 

항아리  두 개  모두가  그랬다.



내려가  엄마에게 알리니 당장  옥상에 올라갈 기세였다. 내가  잘해보겠다고  안심을  시키고  다시  올라갔다. 골마지를  걷어내고  고추장 위로  굵은소금을  가벼이  뿌렸다. 그러고 나서 동그랗게 오린  한지를 고무줄로  고정시킨 뒤  항아리  뚜껑을  덮었다. 보지 않았지만 보고 있는 엄마의 지시대로 나는 움직였다.

"그냥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다더냐! 다 내가  집에  없는 탓이다..."

자세히 보니 지난 몇 개월 동안 오르락내리락하는  엄마의  발걸음 소리를  듣지 못한  장독대에는 소나무 꽃가루가 노랗게 내려앉았다. 엄마의 빈집, 시간의 더께는 반질거리게 닦아주던 엄마의 손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다음 주 내려올 때 유리뚜껑을 사 갖고 오자는 말로  골마지가 가져온  속상함을  달랬다.


빈집으로 있어야 할 곳은  쓰레기 처리할 여유도 주지 않는다. 먹고 남은  찬이나  밥을  다시  가져가야 하는 것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설거지 후  모든 그릇과 행주를  물이  잘 빠지도록  정리해 놓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 같은 마을에  터를  잡은  언니네  집에서 일박이일동안  저녁과 아침 두 끼를 해결했다.

엄마는 정말 달게 밥을 드셨다. 우리 집에서  한 주걱도  안 되는  밥을  받아 들면서 ' 입맛이  없어서' 라며  거기서 한 숟가락을  덜어내던  엄마가 아니었다. 한 숟가락만 더 주라며  밥그릇을  내미셨다. 당신의  고향이  주는  편안함이 시장기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언니와 내가 더 좋아했다.


집을 나서기 전 수도꼭지  밸브를  잠궈놓고 마당을  둘러보았다. 어제  뽑아놓았던  풀들이  햇빛에  나동그라진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엄마가 뽑아버리라던 접시꽃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뽑아 버리기엔  너무 자라서  꽃을  보는 게  나을 성싶었던 내 의지로 남겨놓았다. 마당에도  장독대에도  골마지가 끼어있던  집이  잠시  엄마가 머무는  동안  대리인  나를 통해  거둬내 졌지만 엄마의  야문  손에 가 닿을 리  만무했다. 뭐 잊어버린것이 없나 다시 한번 휘이 둘러보니 내 손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세 닢밖에  안 돼야... 가는 길에  더운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묵고  가소이!"

엄마와  조막만 할 때부터  알고 지냈다던 뒷집할머니는 옥신각신 해가며 엄마의 주머니에 돈은 찔러넣는 모양이었다. 

"어젯밤 맬갑시 서러워서  밤새  울었당께. 이제 가면  또  언제 볼까 싶네..."

내 차가  골목길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집 할머니는 손을 흔들며 굽은 등으로 지켜보고 계셨다.

"담주에  또 따라올 테니  때까지  밥 잘 묵고  잘 있으소..."

라며  엄마도  손짓하셨다. 다시는 못 볼 사람들처럼 애처롭고 애틋한 헤어짐이었다. 엄마는 눈가를 훔치시며 다음에 올 때는 팥빵이라고 사가지고 오자고 하셨다. 뒷집할머니는 요구르트는 미국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시는데 팥빵은 잘 드신다며.

 

엄마가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과 바람이 멈춘 빈집은 다시 골마지가  자랄지도 모른다. 마당에서, 장독대에서, 집안에서.

볕이요, 바람이요, 호미요 , 단물이었던 엄마의 손길이 다시 가 닿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엄마는 당신 집을  다녀온 후 그 기운을 받아 다행히  며칠은 '레'로  지내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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