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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더분한 버마재비
Mar 22. 2023
'아이 쪼끄만 지다려라이.'
허연 입김이 내뿜어지는 한 겨울 아침.
엄마는 아궁이 앞에서 설설 김을 내며 구워져 가는 털신을 들고 와 토방 위에 가지런히 놓아주셨다.
"인자 가자이! 눈이 많이 와서 질이 미끄러웅께 조심허고..."
"냇가에 돌팍도 미끄르와서 지난번처럼 빠져갖고 돌아오지 말고 건네줄랑께 얼릉 가자잉!"
당산나무 앞 버스 정류장에서 웅성웅성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첫차를 기다리고 서있는 동네 친구들을 지나 우리는 청석강으로 갔다. 되도록이면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도 버스를 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엄마는 남동생을 업어 건네주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나와 언니는 마지막에 업어주셨다. 엄마의 검은 장화 속으로 물은 넘쳐 들어갔다.
"그렇게 느그들 건네주고 오믄 얼매나 다리가 깨지게나 시릅든지... 그때는 그래도 심든 줄 몰랐어야. 거기다느그들 건네주고 올란디 막둥이 친구 놈이 따악 서있는디 그냥 오겄든? 또 건네주고 왔제. 그때는 어찌고 그러고 살았는가 모르겄어야...
내가 빵도 퍽이나 쪄댔다. 느그들 학교 갔다 돌아오믄 배 고플까 봐 밀가루를 푸대째 팔아다 놓고 팥 앙꼬 맹글어서 소죽 솥에다 쟁반째 올려놓고 사흘 걸러 한 번씩 쪘응께."
딸내미가 왔다. 몇 주 전 지난 남편 생일 선물을 챙겨 들고.
현관에 벗어놓은 운동화가 꼬질꼬질하다.
오늘 밤 기차를 타고 올라간다는데...
쪼그리고 앉아 빨면 허리가 아픈 나는 세면대에서 선 채로 운동화를 솔로 닦아 탈수를 하고 드라이기로 대충 말린다.
저녁에 들어온 남편도 소파에 앉아 드라이기로 하얀 운동화를 빵처럼 굽고 운동화 끈을 맨다.
밤기차를 타고 딸내미는 갔다.
보숭보숭하게 구워진 흰 운동화를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