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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Dec 20. 2023

방문요양, 방구석 일출

일곱 시, 알람소리에  깼다.  몸이 알아서 절로 움직여 주었으면  좋으련만 점점 쉽지 않다. 좀 더  파릇할 땐  꿈인지  생인지 몰라도 기계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아 잘만 해냈던듯한데  이젠 깊은 곳에 숨은 의지  한 조각을 찾아  딛고 '끙' 몸을 일으켜야만 한다.  저벅저벅  걸어가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핸드폰 바탕화면에 깔린 스마트장기요양에  접속한다. 열댓 걸음도 못 미쳐  도착한 작은 방 앞에 멈춰  오른쪽 벽에 붙은 태그를 향해 스마트폰 뒷면을 가져다 댔다.


"승인되었습니다!"

벙긋 열린 문틈으로 보니 엄마는 벌써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간혹 비나 눈이 오는 날, 엄마는 궂은 날씨를 예감하고  거의  뜬눈으로  날을  지새운다.  그런 날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살풋 잠이 드신 모양인지 가늘게 코 고는 소리가 방문틈으로  새어 나온다. 오늘, 다행히  얼굴이  맑다. 그럭저럭  잘  주무신듯하다.


"엄마 일어났어?  천천히  나와요!"

반말이었다가  높임말이었다가 엄마와 나는  친구였다  모녀관계였다  들쭉날쭉하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한 달에 20일, 일곱 시부터  여덟 시까지  한 시간 동안 요양보호  대상자인  엄마의  방문요양시간이다.

밖을 내다보니 동쪽하늘 아래서  붉은 해가  드밀고  올라오는지  어둠이  뒤꽁무니를  보이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풍광맛집이다. 어제 하루종일  내리던  눈이  앞산에  얼어붙은  모습에  창문도  열지 안은채  어디선가  떠오르는  해그림자를  담아보았다. 거실에  앉아  달도 보이는  그런 집이  어디 있겠느냐며 스스로  족한  웃음을  흘리곤 하데  아침에  일어나  가끔  내다보는  방구석  일출로  더욱  뿌듯해진다.

 

그것도  잠시,  뒤돌아서서  싱크대로  간다. 밤에  먹었던  흔적들이  싱크대 가득이다. 언제부터인지  아침에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퇴근해서  씻은 후,  저녁준비를  해서  먹고 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지켜보던  엄마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쩌다  저녁에  설거지를  하면  왜 하느냐고  물어오신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  날은  술 한잔이  된 날이다. 술기운이  설거지를  하는 것이라는 것은  나만 아는 비밀이다.


아침에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하는 것은  몸을  깨우는  행위가  되어있다. 손등에  닿은  따듯한  물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 좋다. 얼굴에  하얀  물입김이  닿으면  내 손은  더  바지런해진다. 저녁에  했더라면  한없이  더디고  길었을 설거지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아침을  깨운다.


내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사이, 엄마도 나름 바쁘다. 먼저 당신 귀를  찾는다. 습기제거통에서  보청기를  꺼내  팥알보다  작은 보청기약(배터리)을  넣어  오른쪽 귀에  끼우신다. 세상의  소음과  접속한  엄마는 워커(보행보조기)를  밀고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세정제에  담가놓은  틀니를 씻어  끼운다. , 과정 하나가  빠졌다. 틀니  안쪽에  접착제를  발라야 한다. 부분틀니가 아닌 완전틀니는   음식을  씹을 달그락거린다. 이제  엄마는 동치미 무라도  조근거릴 수 있는 이를  찾았다. 입술 주변  주름이  펴진다. 틀니를 빼고 있을 때와 끼웠을 때 당신 얼굴은  십 년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그래서 모녀는 틀니를  빼고 있을 때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보아도  못 본 척 애써 감춘다.

 

잠시 후, 당신 딴에는  무지하게  바쁘다는 그  일을  마치셨는지  아침준비를  하는  내  등뒤로 워커를  밀고  거실을  몇 바퀴 걸으신다. 열심히  걸어  봄이 오면  집에 가서  당신 손으로  밥 해 먹고  지내겠다는  야심 찬  걸음이  세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국을  데우고, 배추김치. 갓김치, 파김치, 총각김치, 동치미까지  김치 일색인  반찬중  한두 가지  꺼내어 놓고

계란을  꺼내어  계란말이를  한다. 그리고  치즈 한 조각을  꺼내어  식탁 위에  챙겨놓는다. 참  희한하다. 치즈가  엄마 입맛에  맞는다는 사실이. 혹여  잊어버리고  꺼내놓지 않으면  찾으신다. 갈비뼈와  척추와  고관절 골절을  겪으신  엄마는  어디서  치즈가  뼈에  좋다는  말을  귀동냥하신 게  틀림없다.  몇 장 남지 않은 것을  보면  이제  사 오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꺼내놓지 않으면 ' 없냐?'라고  물어오니  뭐  어려운 일이겠냐 싶어  챙겨드리는 내 작은  효도템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혈압약, 관절약, 위장보호제등등이  섞인 약을  한 줌  털어 넣고, 식탁에서 소파로  자리를 옮기신다. 뒷모습만으로도 오늘의 기분을 읽을 수 있다. 다행히 괜찮아 보인다. 덩달아 내 기분도 맑음이다. 모녀는  한집에 사는지라  서로의 기압곡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어제는 저기압이었다.  주기적으로  곡선을  그리면서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마음이  읽힌다. 이리 살아서  뭐 할 것이냐는  저점과  그래도  너희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고점을  이 작은  집에서  당신은 그저 겪고 계신다. 모두  출근하고  나면  티브이를  보다가  아들, 딸들, 뒷집 할머니에게  온  전화를  받거나  걸고 그래도  심심한  하루를  동화책  베껴쓰기로  시간을  메우고  계신다.


마음에  바닥이  보일 때면  목욕을  시켜드린다.

"목욕만  하면  살 것 같다는  네 말이  딱 맞다!"

"크나큰  등신  씻기느라  고생했다 와!"

퇴근해서  피곤한  몸을  씻고 나면  다시  힘이  생긴다. 말끔한  정신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목욕을  시켜드리면  마음이  맑아진다. 목욕을 마치고  보습제를  발라드리면 엄마는 굽은  허리 위로  내의를  입는다. 큰 키의 엄마는 허리가  사라져서  내의  바지를  올려드리니 바로  가슴아래까지  올라간다. 많은 게  익숙해진  엄마와 나의  손놀림은  무심하게  움직인다. 그사이  엄마는 면봉으로  귀속을  닦고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끼운다. 그제야  엄마는  세상의  소리들과  접속을 한다. 드라이기로  엄마의 하얀 머리커락을  말리고 헤어  에센스를  뿌려드리면  엄마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진다. 마지막으로 발가락  사이를  말려드리고 나면 끝이다. 엄마는  가져다 놓은  스킨과  로션을  바른다.

"크나큰  등신  씻기느라  고생했다 와!"

항상 같은  말이지만  엄마의  말에  웃음이  배어있다. 좋으신 게다. 개운하신 게다. 적어도 씻는 날과 다음 날까지 이틀은 갈 수 있는 웃음이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목욕이지만  엄마의  목욕은  꽤 까다롭다. 젊었을 적부터  때를  박박 밀던  엄마는  나보다  야물딱스러운  손을  갖고 있는  언니가  등을  밀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대충  샤워 정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엄마와  언니는  때가  밀리지 않을 때까지 등이  벌게지도록  밀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곧  구순이  돼 가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  방법을  고수하신다. 엄마의  스타일대로  목욕을  시켜드리는  나는  쉽지 않다. 내가  등을  밀고  있는 사이에도  엄마는  계속해서  다리와  가슴, 당신이  손 닿는 곳을  이태리타월로  밀고 계시니  구석구석  시원하게  밀어드리는  수밖에  없다.


"방문요양을 종료합니다!"

 8시 5분  맞춰놓은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다시  스마트 방문요양에  접속을 하고  작은 방 오른쪽 벽에 태그를  찍는다.  64분의  방문요양  태그를  찍고  종료한 후  내 하루는  나머지  시간을 향해  흘러간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나를  일으키고 난 또  그 일을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따듯한 날이  오면  당신 집에 가서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엄마는  오늘도  겨울  하루를  넘겼다. 이제  봄날에  하루 더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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