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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Jan 11. 2024

1호 팬의 선물

소포가 왔다. 언박싱의  즐거움, 펼쳐보는 그 재미가  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진즉 알고 있었지만, 부욱 찢어지며  갈라지는  종이소리와  손에 닿는 질감만으로도 싱글벙글이다. 탁상용 달력과 다이어리를 펼쳐놓으니 양쪽 귀가 이미 벌어진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새 종이를 만지작거릴 때 엄지와 검지손가락 끝에 와닿는 머뭇거림이 좋다. 잔뜩 힘이 들어간 낱장을  넘기고 잘 꺾이지 않는 페이지를 손날로  쭈욱 밀어 올렸다 다시 내렸다. 새것 앞에서  모쪼록  겸손해진다. 접힌 다이어리를 왼손으로 누르고 오른손에 볼펜을 쥐었다. 가장 먼저  얇은  볼펜으로 1월달생일과 결혼기념일과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적어보았다. 그리고  12월에  이르기까지  가족 행사를  쓰는 손이 미끄러지듯 술술 써진다. 새 옷을  입고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향해 한번 씨익 웃어보이, 작년과 같이 올해도 애쓰지 않아도 다가오는 행사들을 가장 먼저 적어놓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다음이 문제다. 하지만 일단 올해의 목표, 그저 욕심껏 해야겠다고  맘먹은 일들을 적으며  다 마친 것 것처럼 두둑한  마음이 든다. 그래  이 맛에  다이어리를  쓰는 거지.


내  침대 머리맡에는 지나가버린 해, 세 권의 다이어리가  쌓여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시작만 무성한  오분의 일쯤에서 손때가 멈춰있다. 가끔 탁자 위 먼지를 닦아낼 때면  휘리릭 넘겨보다 멈춘 손때에  씁쓸해진다. 3,4월 나른한 봄빛쯤에서 멈춰버린 해도 있고, 어느 늦가을  문을 열고 들어가 흘려놓은 일기가 듬성듬성 들어있기도 한다. 시작은 나름 창대하나  끝이 흐린  용두사미는 잊히지도 않고  해마다 반복된. 끝내지  못하고  시작만  요란했던 다이어리가 '또 쓸 거야?'라고 허리춤에  손을  얹고  노려본다. 애써 눈을 돌리며 '올해는 꼭, 큰 일은 못해내더라도 하루하루 짤막하게나마 적어볼 거니까 걱정 마!'라고 내 안의 내게 주먹다짐으로 우겨본다.


1호 팬은 올해 하나 더 보내왔다. 먼저 받은  친구로부터  뜨끈뜨끈한 손편지까지  동봉했더라는 말을 들은 참이었지만 받고 보니 새해 덕담과  마지막 쓰여있는  1호 팬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설렘을  일으킨다. 누군가 지지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어제와  다를 게  없는 밍밍한 날이는 생각을  확  걷어내고  반짝이는  하루로  변신하게  만든다. 변검술사처럼  화르륵.


새해 시작은 탐욕으로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욕심과 집착, 어쩌면  정도를 넘어선 욕심을 부린다. 건강과  느 정도의  경제력과 지적  즐거움을 만족시키기  위한  욕심으로  또박또박 적어본다. 그저 해본다. 목표에  닿지 않으면  또  어때? 하지만  늘 그  과정이  충분치 못했기에 적어놓은  계획들을  바라보며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목표지점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해온 것에  만족하다면   자신이  얄밉지 않으련만.


아주 오래전 주말, 여남은 명의 직원들과 일림산 산행에 올랐었다. 맑은 오월이었고 우리는 모두 젊었다. 하지만 중턱에도  못 미쳐 주저리주저리 내뱉던 이야기는 턱밑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소리로 바뀌었다. 게다가 바로  산 밑에  사는 직원을  앞세워  걸었지만 길마저 잃어버렸다. 이러다 산속에서  못 나가는 것 아니야, 다시  되돌아갈까? 라며  농담 섞인 말들로 잠깐 술렁거렸다. 하지만 잠시 후 선두에 선 직원들이 잡목을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우리들의 말없는 행군은 이어졌다. 파란 하늘이 쏟아내는 더위와 옆에서  엉겨 붙는  가시덩굴을  피하느라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여직원도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우리는 만났다. 산등성이를  타고  펼쳐진  철쭉군락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붉은색이  입체감을  드러내며  무더기  무더기  끊일 듯 이어질 듯  펼쳐져있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펼쳐진  철쭉꽃의  향연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지나온  가시덩굴 속  헤맴은  이미  잊힌 지  오래였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던  사람은  다시 가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농담이 철쭉꽃 언덕에서  넘실거렸다. 서로 등을 타고 흐르는 땀과 겨드랑이에  밴 땀을  바라보며 철쭉을  뒤로하고 붉은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2024년  시작즈음에서 떠오른 지난날이다. 오월이면  열리는 일림산  철쭉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지만 30여 년 전  우리가  보았던 그곳은 아무런 손길도 가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 순수한  얼굴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뚫고  연분홍과 진분홍이  얽히고설킨 듯 구릉을  이루고  있는 철쭉 앞에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젖은  머리카락, 얼굴에  흐르는 파운데이션과 섞인 땀, 허리에  질끈  묶은 겉옷은   여기저기 쥐어뜯긴 듯한  모습으로  우리는  환희에  차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리석게도 계획을  세우고  그  욕심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배부른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잔뜩  공기를  집어넣고  배부른 양하면 얼마 가지 않아  허덕이던  날들을  이미  보아왔기에 그저  올 한 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무던히  걸어보고자 한다. 시도도 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해 본 날이  더욱  의미가 있고, 언젠가는  정확한 목표지점은  아니지만  비슷한 그 무엇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걸어보고자 한다. 아니 걷자고 내게 말한다.

하산길 어스름 무렵, 용추계곡 바위에 앉아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뿌듯함에  취해 '술잔을  들자!'라고  외치던  그날처럼  한해를  갈무리하며 외칠 수  있기를. 그저  묵묵히  가보자. 시금털털한  탁주 한잔을  마시며  이 정도면  됐잖아!라고 스스로  족할  시간이 오도록.


현명함은 어리석음과 탐욕의 과정을 거쳐야 얻어진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잘 될 수  없으며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을 두려워하면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없다. 현명함은 어리석음과 사악함을 통해 숙성되고 발효된다.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 이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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