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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더분한 버마재비
Dec 08. 2023
마당이 수상했다. 아무도 없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으니 지금 쯤 떠들썩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어야 했다. 평상 위에는 배추 쪽들이 푸른 머리를 감긴 인형처럼 뒤돌아 앉은 채 얌전하게 포개져 있어야 했다. 고춧가루 양념 그득한 고무통도 한쪽에 있어야 할 텐데 그것마저 없다. 빨리 감은 영상처럼 분절되어 후다닥 돌아가다가 일순간 멈춰버린 듯한 마당의 풍경에 아이들도 나도 갸우뚱했다. 생뚱맞게 수돗가에는 엉성한 모양으로 배추가 절여져 있다. 김장할 양은 아니다. 여러 해 봐 왔지만 저 정도 배추는 턱도 없다. 끝도 아니지만 시작도 아닌 듯한 고무통들의 배치, 분명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고모! 이건 뭐죠? 김장 안 해요?"
멈춰버린 마당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서며 쨍하고 외치자 손위시누이 형님 두 분,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지으며 부엌에서 나왔다. 들고 온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내려놓으며 무슨 의미의 웃음인지 알아내려 잠시 애썼다.
"응, 어서 와서 점심이나 드시라고!"
"예?"
"맨날 자네가 와서 고생한다고 이번에는 늙은 시누들이 밥 한 끼 대접하려고 그랬다고!"
"예?"
"얼른 와서 앉아. 김장은 우리가 어제까지 다했으니까 와서 맛나게 잡숴보기나 햐!"
"예?"
굴이 들어간 배추 겉절이, 돼지고기 수육, 물메기탕, 장대조림, 새우젓, 골뱅이무침까지 떡 벌어진 상차림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그제야 생각하니 처음부터 수상했다.
"어제 오후 네시에 간을 해버렸어."
몇 시쯤 간을 할 계획인지 묻는 전화에 둘째 시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배추 씻을 때 연락해 달라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아침, 8시 반쯤 전화가 왔다.
"다 씻었으니 내일 버무릴 때나 오게나."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밀린 피곤이 아직도 몸에 들러붙어 떠날 생각이 없어보이는터라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 날 11시쯤 버무리기 시작할 테니 시간 맞춰오라는 얘기는 남편을 통해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몰래한 김장 후 점심 초대를 위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형님들은 다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솔직히 말씀해 주셨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다. 이렇게 알아봐 주시고 챙겨주심이 시어머님과 함께한 시간을 보드랍게 해 준 힘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시간 내서 내려온 무채색 김장용 옷차림의 두 아들과 머쓱하게 둘러앉아 한 일없이 밥만 먹었다. 아이들은 고모들로부터 용돈도 받는 모양이었다.
그저 얻어먹는 밥상이 황송스럽기에 설거지라도 해야 할 성싶어 싱크대 앞에 섰는데 거실에서 하지 말고 쉬었다 가라는 말이 날아왔다. 젊은 오십 대도 힘든데 일흔 안팎의 시누이들이 어찌 다 했을까 싶은 마음에 고집을 부리고 다 끝냈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한참 전까지는 시댁 육 남매 김장을 모두 큰 시누이네서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형편에 따라 맘 맞는 사람을 찾아 흩어졌다. 나를 포함한 며느리 셋은 각자 알아서 또는 친정에 붙여서 하고 있고, 시댁도 큰 시누이와 둘째 시누이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살던 우리는 친정에서 김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시댁 김장에 참여해야 했다. 일하는 도중 남편과 시간을 내서 배추를 뽑아 나르거나 다음 날 절여놓은 배추를 씻었다. 버무리는 날은 가끔 통 한 개만 보내기도 했으나 바쁘지 않은 날은 되도록 손을 보태려 했다. 잠깐잠깐 들러하는 일은 그다지 고되지 않았지만 내심 무슨 고생인가 싶을 때도 없잖아 있었다.
"고모, 이거 모두 우리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인데요?"
그렇다. 시누이들에게는 올케인 나도 잘 먹여보 내겠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당신들의 동생, 내 남편이 걸렸던 것이다. 막내아들로 작년에 떠나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동생의 얼굴에서 세월의 흐름을 읽었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편은 술 한잔 기울일 때마다 부쩍 함께 소주 한잔 기울일 시간도 없이 먼저 떠나버리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남편 나이 스물다섯에 시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흔까지 손주들과 함께 살며 여행도 다니시고 좋아하시는 음식도 드시는 시간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아들과 그런 재미도 못 보고 가신 게 시간이 갈수록 맘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나는 친정 엄마를 모신다고 함께 집에서 살고 있으니 가끔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모녀를 보고 너무 닮았다고 웃는 남편은 순간 자신의 부모님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김장에 두 아들을 부른 것일 게다. 일흔 안팎의 누이들이 김장을 하는데 건장한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 그 아래 당신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이 고이 접혀있다는 것을 알지만 모르는 척했다.
얼마 전 자주 가는 미용실에서 일이 스친다. 그날도 늘 그렇듯 머리를 맡긴 채 이런저런 이야기로 염색시간을 메우고 있었다.
어떤 이야기 끝에 미용실 원장은
"내 동생이지만 참 잘해, 내 동생 같은 사람 없다!"
는 손위시누이들의 이야기에 짜증이 나서 "그렇게 좋은 사람이면 형님이 같이 사세요!" 라는 말까지 해본 적 있다며 동생을 너무 예뻐하는 누나들과 그런 누나들을 끔찍이 좋아하는 남편이야기 중이었다. 검은 염색약을 바르고 있는 거울 속 모습을 향해 나는 말했다
"잘해요. 누나들 눈에는 안쓰러워. 동생이. 내가 늙는 줄은 모르겠는데 동생 늙어가는 것은 보여. 그래서 안쓰러워. 남편은 늙어도 안쓰럽지 않은데 남동생 얼굴에서 세월이 보이면 마음이 아파."
뒤에 않아있던 손님이 옆자리로 옮겨 앉아 머리카락을 자르며 말했다. 정말 공감한다고. 자신에게도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예민한 올케에 맞춰 사느라 큰소리 한번 못 내고 사는 것 같아 맘이 아프다고.
미용실 원장은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래요?"
두 명의 누나가 한 올케에게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 , 정말 그래요. 그러니 잘해줘요."
"아, 누나들은 그래요?"
이제 보니 내가 남동생을 안쓰러워했듯이 시누이들도 막냇동생인 남편이 안쓰럽고 애처롭고 그럴지도 모른다. 세명의 조카와 정곡을 찌르는 말로 동생을 깜작깜작 놀라게 할 올케를 모시고 고생하는 듯한 동생의 얼굴에서 엄마처럼 안쓰럽고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남편도 누나들의 동생이었다는 것을 잊을뻔했다.
"우리 동생 술 많이 먹고 그럼 전화햐!"
라고 김치 한통을 채워 들려주며 시누이가 말했다. 두 명의 남동생을 둔 내게 이렇게 들린다.
"술 마시고 밉더라도 예쁘게 봐줘, 올케!"
" 네!"
출발하는 차량을 남편의 누나들은 끝까지 손 흔들며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도 내 동생은 추운 겨울 내 뒤를 따라 학교를 향해 신작로를 걷던 아이들이다. 바람을 막아주겠다고 앞장선 내 뒤로 벙어리장갑 낀 손을 호호 불며 따라오던 코흘리개 내 동생들처럼 당신도 누나들 눈에는 그리 보일런지도 모른다. 아직도 어린 동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