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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Nov 12. 2023

가을에 온 편지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좀 전까지  팔짱을 낀 채 소파에  앉아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편함으로 신경을 긁고 있었는데  말이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갱년기 아낙의  감정이  널뛰듯한다.

함께 여행을  다녀온 이십 대 청춘 딸은  푹 쉬고 난 개운한  얼굴로  운동을  다녀오겠다고  나가더니  우편함 속  묵은  신문과  고지서를  들고 들어왔다. 청춘은  싱그럽다. 다행히도 그  싱그러움이 무거운 집안공기를 약간  들어 올렸다.

"엄마  편지도  있는 것 같은데?"

"편지?"

식탁 위에  올려놓은  우편물더미에서  크리스마스에나  만나볼 법한  카드봉투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씨튼 영성의집. 수녀님에게서 온 편지였다. 겉봉투에  쓰인  내 주소와  이름이  꿈틀거리며  내 겨드랑이를  살살 간지럽혔다.

여느 때 같으면  손으로  부욱 잡아당겨  봉투를 뜯었겠지만 수녀원에서  보낸  편지는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아  얌전하게  봉투선을  살려  칼로  밀어 열어보았다. 그녀의  글씨가  내게  찡긋 웃어 보였다. 금세  나를  덮고 있던  짜증의  그림자는  엽서 한 장에  뒷걸음질 쳐가며  밀려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 편지  앞뒷면을  모두  읽었을 때에는  그나마 보이던 그림자의 앞모습마저  빠져나간 뒤였다.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 짜증이  올라온다. 몸과 마음 크기의  부실함에 언짢았고  그 화는 다시 나를 짓눌러 허덕이는 요즘날이  그러했다.  내 그릇의 크기와 깊이를 알고 수용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을 저질렀어야 했다고 다 지난 후회를 하고 있었다.  지난 시월  한 달, 바빴다. 허둥대는 내게 아들은  일 년에  한  있을까 말까 한 일을  한꺼번에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콕 짚어주었다. 맞는  말인 듯했다.


정해놓은  틀 안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모임은  고향친구들과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이 전부이다. 현재  발붙이고  살고 있는  곳의  사람들은  원하면  그날그날  맞춰  만날 수 있으니  따로  정기적 모임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간간이  지난 시절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면  그들이  궁금해서  엉덩이가 가벼운  나는  그 시절  내 목소리를  찾아  걸치고  만나러 간다. 그것이면 족하다.

그런데  이번 시월에는  딱  두 개인  그  모임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쉽게  날을 잡았다. 그중 하나는 내가 먼저 '우리 얼굴 볼까?'라고 꼬드겼다. 아마도  시간은 내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밑바닥에 고여있던  마음이 동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을  핑계로, 함께 사는 어른들을  핑계로  나가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  핑곗거리가  내게  오히려  화를  낼 것만 같았다. 나 때문이라고  하지 말라고. 누구도  너의  바람쏘임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고. 그런 쏘삭거림은  오는 문자마다  '좋아, 맞춰보지 뭐!'라고  답을 했다.

잘 다녀왔다. 그런데  떠나기 전후에  치러야 할  일들에  몸이  부대꼈다. 며칠  집을  비우기  위해서 미리  청소와 빨래를 하고   음식을  채워놓고, 또  가게일을  미리  당겨서  할 수 있는 만큼 해 놓아야 했다. 그리고  엄마를  시골집에  모셔다  드리고  일정이  모두  끝나면  다시 모시고  올라와야 했다. 그리고  여독을  풀새 없이 다시  일상의  일들을  시작했다. 그런데  체력으로  해결해 낼 수 있는  그  일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그물망처럼 얽히고설키는  관계가 가져다준 미묘한 감정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전투적 여행을  시월 끝물까지  치러놓고 보니 몸에  진기가  빠져나가고  허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쯤  되면  두통약  한 알을  삼키고  버텨야 하는  날이 며칠 이어졌다. 그리고 이내  화가  났다. '왜  이렇게  살고 있지?'하고 내 안의 내게  따졌다.

 


그때, 그녀의  손 편지가  도착했다. 시월말, 베트남  3박 5일  여행 전에  도착했지만 우편함에  고스란히  있다가   11월 초, 이제야  주인을  찾은 것이다. 눈에  익은  글씨체, 깔끔하고  귀엽지만  단단한 구석이  엿보이는  그녀가  보낸  엽서였다.

"뭘 그렇게  웃고 있어?"

소파에  앉아  실실거리는 내게  식탁에  앉아  커피를  내리는  딸이  물었다.

", 친구  편지."

베트남에서  따라온  위즐커피를  내리는  딸, 그녀의 편지에  다달보레한 커피향이  배어들었다.


그녀는 내 친구, 수녀님이. 나는  그녀가  보내온  엽서를  냉장고  측면에  붙여놓는다. 그녀가  내게 보내온  말들을  한 번씩  들여다보고  위안을 얻기 위함이다. 명언이나  외우고 싶은  단어, 레시피를  마그네틱 자석으로  눌러 붙여놓고  자꾸 들여다보며  되새김질하는 이들처럼 나는  그녀가  보내온 곱고  따스한  눈빛이 담긴  손 편지를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몇몇 친구들에게  손 편지를  가끔 보내온다. 그녀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상을  치른 후에도, 시카고에 몇 년 지내다가  귀국해서  얻은  휴가로  안면도 여행을  함께 다녀온 후에도  그녀는  고마움을 손 편지에  실어 보내왔다. 투박한  며칠의  여정에  넘치는 감사함을  담아  보낸  편지는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을  남긴다. 그녀의  편지는  투박한 일상을  별거인 양 반짝거리게  닦아준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그렇구나!'라는 감탄사로  특별함을  준다.


이번에도 그녀가 보내준 말,

'그대가  내  벗님이어서  참 좋다.

함께 걷는  이 길이  좋아서, 함께  나누는  인생이야기가  좋아서,

너를  좋아한다.'

에  취해  나는  여전히 싱글벙글이다. 

버거운 일과 사람에 치인 나는  평소  샤워 한 번이면  툭툭 털어내고  살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허용가능치를  벗어났는지 몸과 마음은 내내 바닥을 허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우울한 가을 오후에 날아든 그녀의 손 편지 속  말들이  나를  쓰다듬었다. 덕분에  나는 괜찮. 그녀가 보내준  '좋아'라는 단어가  내일 만나게 될지도  모를  뾰족한 세상을 막아줄 방패가  되어 것이기에 괜찮다. 손바닥만 한 편지가 나를 안아주었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밥 퍼주는 여인이었다. 우리들이 모이는 장소는 자취방, 그녀의  집이었고  우리를  스스럼없이  받아주던 소녀였다. 여전한  내 친구가  좋다. 말랑한  말들을  표현하는데  어색하고 인색한 나는  글로  남긴다.

'나도 네가, 우리가 좋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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