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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Oct 24. 2023

낚시꾼이 채비를 하지 않아 불안하다

새벽 네시, 낚시꾼은  집을  나섭니다.

글꾼은  반쯤 뜬 눈으로  

"해 뜨거든  사진 보내쥬."

 한마디만 하고  다시  눈을 감고 이불을 끌어당깁니다.

부스럭거림에  일어났던 강아지도  다시 글꾼 옆구리에  등을 대고 자리를  잡습니다


두어 시간 뒤,  낚시꾼 사진이 올라옵니다. 

글꾼은 누운 채  낚아 올린 어획물을 바라보며 게으른 눈을  비빕니다.

검은 바다 위로  뛰어내리는  노란 햇살과  파란 하늘 그림자.

그녀는 언젠가  글을  버무릴 때 쓸 요량으로 항아리에  담아놓은  장이  숙성되길  바라는 장독주인처럼  뚜껑을 열고  조르륵  부어놓습니다.

우리는  낚시꾼과  글꾼을 꿈꾼다. 먹고 자고 일하고를  반복하다 ' 이게  뭐 하는  짓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면 그는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가고, 그녀는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콕콕 글을 쓴다.


꾼이란 어떤 일을 능숙하게 잘하거나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 쟁이란 어떤 명사에 붙어 그 명사의 일을 행동으로 곧잘 하거나 그것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라는  부분에  밑줄을  긋고  낚시꾼과 함께 ''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는  낚시를  즐긴다. '운동해야지'를  밥먹듯이  입에 달고  살면서도 숨쉬기  운동만 하던 그는, 3개월 헬스등록을 하고  며칠 가고  그만인 행동반복했었다. 밥 먹고  살기 위한  직업 이외에는  꾸준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낚시는 몇 년째 한결같이 다닌다. 그리고  일을 놓고 나면 오직 낚시만 하고  살겠다며  백수를 꿈꾼다. 그러면  그녀는 주변  그늘에  앉아  놀면서  책 보고  글을 쓰겠다고  한다. 물론  희망사항이지만  원하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싶다.


그녀도  공수표를 날리곤 했다. 화선지에  난을  치기  시작하며  10년 후 수묵전시회를  할 거라 하더니  두어 달도  안되어  코로나를  핑계로  화선지와  먹물을 구석에 묵혀두고 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겠다고  책과 색색의 펜을  사들여놓고 얼마가지 못하고  다시  잠재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글쓰기  욕구는  부스스  일어나  그래도  여섯 달을  지나고  있다. 내친김에 이름 지어놓으면  뒷모습이  무색할까 봐  열심히 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글꾼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런데 자영업을 하고  있는  그와 그녀는  동시에  생업을  떠나면  안 된다. 그래서  어쩌다 함께 가는  여행이나  가족이나 친척행사를  제외하고는 번갈아가며  일터를  떠난다. 대체적으로  그날은  그에게  낚시 가는  날이고 그녀는  친구들과  여행이  되거나  고향에 가는 날이다.


낚시꾼은  문어나 주꾸미 같은 두족류 낚시를  선호한다. 두족류는  심심치 않게  낚아 올리는 손맛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는 긴 시간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꿈꾸지 않는다. 대부분 낚시꾼들의  손맛은 사적으로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도리질하는  물고기와  잡으려고 하는 악착같은 인간의  줄다리기에서  손가락에  전달되는  희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낚시꾼들 큰  우럭이나  광어, 농어를  잡아오는 날, 그  손맛이   죽여주는  맛이라는  표현으로  그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는 낚싯바늘  끝  살짝 앉은  미세한 느낌을 잡아 올리는  다리 많은  오징어나 주꾸미  문어등의  낚시를  즐긴다. 그는 새벽부터 오후  서너 시까지 큰  거 한방을  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자주  잡아 올릴 수 있는 것을 노린다. 하지만  그가  광어 9자를  잡은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리고 그날의  활약을 무협지 주인공처럼  이야기하던  그 얼굴을  기억한다. 그도  큰 고기를  잡고 싶지만 쉽지 않기에  차선책으로  작은 것을 목표로 낚시터로  향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유유상종,  부부는  닮는다더니 낚시꾼도  글꾼도  도긴개긴, 낚시꾼은  낚시가방을  들고  바닷바람에  그새 자란  거뭇한 수염과 자잘한  성취욕으로 들뜬 얼굴로  돌아온다. 글꾼도  그저  '꾼'다운  글로  눈자위를  누르며  배시시 웃고  컴퓨터 앞에서  털고  일어선다. 그리고  가끔 그렇게  즐기는 일로도 피곤한 얼굴을 서로  발견해 내고는  안아준다. 둘은 따듯하지만  작아져가는  어깨에 금세 애틋해진다.


낚시꾼은 이백여 마리 백조기를 잡아온 적도 있다. 시장에서  사 온 것이라 해도  믿을만한 크기의 고등어를  잡아온 적도 있다.  산골에서  자라  바다 생물 손질하는  법 하나  모르던 그녀지만  25년의  세월과 친절한 검색창은  글 꾼 손에  칼을  쥐게  만든다.

그녀는 고등어  배를  갈라   내장을  걷어내고  깨끗하게  씻어  굵은소금을  뿌려 물기를  조금  제거한 다음 지퍼팩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한다. 조기도, 주꾸미도, 문어도  지퍼팩에  납작하게  담아  자곡 차곡  냉동실에  쌓아놓는다. 어느 날  친구,  친척, 아이들, 정이 가는  사람들 손에  하나씩  들려 보낸다. 낚시꾼과  글꾼의  낙이다. '정말  맛있더라!' 한마디가  다시  바다로  나가는  낚시꾼의  어깨들  토닥이고  있음을 그녀는 알고 있다. 글꾼도  '정말 좋더라!'는  한마디, 토닥거림을  받고 싶지만 낚시꾼만큼은  아직  어렵다. 낚시꾼  몇 년 차이니 아직 경력이 짧은  글꾼은 그러려니 하려 하지만  자꾸  낚시가방에  들려온 어획물과 비교가 된다.

 

10월  달력을  펼치며  그가  달력에  표시를 하라고  했다. 그녀는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아래 적었다. 이사, 친구, 여행. 무려  시월 한 달  동그라미가 8개였다. 징검다리처럼  놓인  동그라미를  피해  낚시 갈  날을  잡기 위해서 그는 달력을  몇 번 보았다.

그런데  낚시꾼이  요즘 낚시에  심드렁해졌다.

얼마 전  글꾼은 친구들과  이박삼일  여행을 다녀왔다. 동시에 낚시꾼은  낚시를  갈  수  있는  티켓 한 장을  거머쥐었다.

'내일  낚시 갈 거야!'

라고  말해도  가는 길 부리마저도  뽑아  주며

'어서  다녀오세요!'

하고  말할 수  있는  낚시티켓이었다.

그런데  말이 없다.

"이번주  낚시 계획 없어?"

고개만  젓는다. 병이  심각해진 것이  틀림없다. 심드렁 병. 그것마저  재미없다는  심드렁 병. 글꾼은 어조를 높이고  괜스레  웃어가며  차가운 공기를  예열을  한다. 그가  어서  저녁식사 자리에서

'내일  낚시가!'

라고  말하는  다소  느닷없는  시간이  오기를  맘속으로 빌었다.

심드렁이  무섭다.

글꾼이라  불리기를  바라는  그녀도  알고 있다. 그녀에게도  심드렁했던  어느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사이에도 마음의  저울은  있어  한쪽으로  기울어있는  저울은  불편하다. 친구들  만나느라  며칠  집을 비우고,  다시  여행을  앞두고 있는  글꾼은 수평을  이루기 위해  낚시꾼의  낚시티켓 사용을  종용해 보지만 허사다.  아직 며칠의 기회가  있지만  아직 낚시꾼이  채비를 하지 않는다. 어서 낚시꾼은 낚시대를 바다에 꼽고 충전을 하고, 가끔 낚아올린 바다와 하늘과 고기가 글꾼의 항아리에 담겨 차오르는 날을 그녀는 기다린다.다음 달에는 하루 전부터  문어나 갑오징어 낚시 채비를  하는 낚시꾼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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