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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r 28. 2024

냐짱에서 만난 그녀

가끔 낯선 곳에서 그녀 발견한다. 지난 늦가을, 그곳은  베트남 냐쨩이었다.


"성깔보소! "

"그런데  어쩜  그리  귀엽냐! "


새침한 건지 순한 건지  알쏭달쏭,  말수 적고 조용하기만 하던 그녀가,  지금껏 알고 있던 그녀가 아니었다. 가끔 켜뜨던  저 데룩한 눈을  알아봤어야 했다.  어쩌면 우리가  처음 만난 날부터  주욱 그녀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새벽 두 시, 베트남  깜라인 국제공항이었다.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바람의 배웅을 받고  출발했던  6시간  인천공항과  달리 출구  문이  열릴 때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달려들어왔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던 여행사 가이드는  냐짱 해변가에  위치한 호텔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녀를  우리 이름으로 지은씨라고  소개했다. 휘어질 듯  가는 허리, 까뭇한 얼굴에 오종종한 입과 달리  큰 눈, 흰 티셔츠를  청바지 안으로  넣어 하얀 벨트를  맨 그녀는 베트남 현지인 가이드였다.  그녀는 쭈뼛거리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마도  그녀는 오십 대 고향친구들로  이루어진 여행객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부담스러웠을지 모른다.


냐짱 해변가에 위치한 호텔에 새벽 3시가  넘어  도착한 여섯 명의 일행은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점심 이후부터   세 팀으로  이루어진 15명의 일행에 섞여 냐짱에서  하룻밤, 달랏에서  이틀 밤을  지내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지은 씨, 그녀는  냐짱 포나가르사원과 롱선사, 달랏 다딴라 폭포와  크레이지하우스 등 관광지  입구에서  우리들의  티켓을 구하고  입장을  도와주었다. 청바지에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삼각원뿔  모양  베트남 전통 모자인  농을  쓰거나  목 뒤로  넘긴 채  말없이 앞서거나 따라 다렸다. 저녁  호텔에서  먹을 수  있도록  망고, 잭프룻, 용과 등 과일  도시락을  구입해서  전달하거나  호텔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도와주었지만  우리들과  길게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딱 한번  그녀의  얼굴에서  생기를  발견한  날이 있었다. 달랏 야시장 입구였다.  가이드가 쏘는  야식에  입맛을  다시며  구경하는  우리들과 달리  젊은  요리사 손은  더디기만 했다.  서너 개가  만들어졌을 때쯤  지은 씨가  어디선가  엄마뻘로  보이는  분을  모시고  나타났다. 그분은   자리에  앉자마자 빨리 감기 한  화면처럼 손기술을  펼쳤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번철 위에 놓인 라이스페이퍼 위에  고기와 야채를  얹고  재빠르게  소스를 뿌려가며 반짠느헝을  굽는  두툼한 길을  열다섯 명의  눈이  쫓아다녔다. 그때 잠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녀의 경쾌한 목소리와  소박한 웃음소리를 보았다.  아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냐짱 야시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가이드는 30분 후 입구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고  일행들은 모두 시장안으로  어졌다.


첫날 들렀던 냐짱 담시장에부터  친구들은 탬버린 모양의 라탄가방을  기념품으로 함께  구입하고  싶어 했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달러로  환전해 온   경비를  털어 라탄가방을  사기로  지만  부르는  가격과  주머닛돈은  맞지 않았다.  두 군데서  실랑이를  하다 다시 돌아 나와 맨  처음  들렀던  가게에서  결정을  지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부르는 대로  주면  낭패라며 흥정이  어려우면  지은씨를  부르라는 가이드의  조언은  있었지만  실상  들은  옆에 없었다.  상점 주인의 전자계산기에 맞춰  다소  부풀려진  몸짓으로 동(VND)으로 흥정을  겨우 마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불해야 할  달러(USD) 사이에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어수선한 그때, 두  가이드가  달려와  어서  전기차에 타라고  재촉했다. 벌써  야시장에서  주어진 30분이  지난  것이었다. 중간중간  말린 망고와  베트남을  상징하는 소품을  사느라  짧은 영어와 풍부한  몸짓으로  몇몆 물건을  고른 친구들은  이제  지쳐있었다.

 

그때였다.

지은씨는  허리에  양손을  짚고 외쳤다. 데룩한  눈에  힘이 들어갔다. 뭐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상대방을  향한 제법 고압적인   몸짓이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달러를  지은씨에게  넘겨주고  기다리고  있는  전기차를  향해 뛰었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높은 지은씨 목소리가  뒤쪽에서 쨍하고 깨졌다.  뛰면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우리가  흩트려놓은  라탄가방 흥정을  수습하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알 것 같은  몸짓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때문에 5분이 지체되었다. 숨도  고르지 못하고  기다리는  일행들에게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기가  바쁘게  두 팀이  먼저 출발하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출발했다.


전기차(툭툭이)에  오르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밀려  빗방울이  시원하게 몸에  닿았다. 그녀의  큰 목소리와  허리에  얹은  두 손이  어디선가  본 듯 익숙했다.

야, 지은씨  솔찮하더라!

성깔보소! 그런데  어쩜  그리  귀엽냐!

냐짱에서  그녀를  보았다.


우리도  두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중학생까지의  얼굴은  기억하지만  그 후의  날 들에  대해서는  들리는  소문과  일 년에 한 번 마주할까 말까 하는  만남을  통해  알고  지내는  그녀들. 3박 5일의  여정에서  우리는 알고 있었던 그녀의 얼굴과는  다른   뜨악한  서로의  모습을  마주하고 그  모습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고  12시가  넘도록  웃다가  화내다가 또 웃었다.

일찍  결혼해 벌써  두 아이를  장가보내고  늦은 공부로  간호사가  된 그녀와  육 남매 중  맏이로 동생들을  엄마처럼   남매 뒤치다꺼리해야 했던  그녀, 둘째 며느리이지만  홀로 되신  시아버지를  돌보느라  주말마다  시골집에  음식을 해서  싸들고  다니는 그녀. 그리고  딸들과 카페를  하며  남편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이뤄  이제 제법 사는 것 같다는 그녀를  보았다.


어쩌면 어젯밤  보았던  뜨악한 내 친구가 그녀였는지도  모른다. 놀램과 또 고구마 백개가 얹혀있는 듯한 이야기  끝에 동치미 국물을  들이켠 듯이  풀리는  그녀의  인생이  그러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 어릴 적 입에 담았던 비릿한 욕을  한방 날려주며  그녀의  쓴  인생을  소주 마시듯  털어 넣었다


지은씨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의  허리에 얹은  손과 높은  목소리와 콧김을  품는  상대가  우리를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라탄가방상점의  주인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를  향한 것인지 모른다.

단지  그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는 것이다.

 

전기차 툭툭이를  타고  냐짱 시내 야경을 구경하고  다시  해변가 식당에  앉아   맥주와 피자를  먹고  있노라니  지은씨가  우리가  사흘째  흥정한  라탄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흥정한  금액보다  달러 몇 장을 얹어 어지러웠던  흥정을  정리해 준 지은씨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고마웠고 친근하고 예뻤다.


세시간여 깜란 공항에 앉아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던  우리는  냐짱의 그녀, 지은씨를 떠올리고  다시 한번  웃었다. 그리고 집안  어느  구석에  걸린 라탄 가방을  바라보며  가끔 그녀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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