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다. 뽑아놓은 풀을 정리하려 뒤늦게 나온 남편이 꽃잔디 옆풀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그냥 두려고 예뻐서."
의외로 남편은 딴지 걸지 않는다. 뽑아놓은 풀과 바닥에 흘러내린 흙을 쓸어 담아화단 안으로올리는남편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이게 꽃마리래!"
왜 뽑지 않았느냐고 물었던 풀꽃을 다섯 배 확대한 사진이었다. 한번 들여다보고 웃고 만다. 민들레도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지만 이유를 묻지 않고 지나쳤는데 꽃마리는 왜냐고 물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하찮아 보였음이었다.
꽃마리와 꽃잔디
며칠 전부터 가게 밖에있는 작은 화단에 무성한 풀이 눈에 걸렸다.흐린 하늘, 잡초제거하기에 좋은 날이었다.게으른 눈을 털고 출근하자마자 호미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건물 벽 옆으로 길게 만들어진 화단이 푸르렀다. 지붕이 절반이상을 가리고 있어 비가 와도 온전히 땅을 적시기엔 역부족이었건만 그런 것쯤 개의치 않는다는듯풀은 고스란히 살아있다.
자줏빛 입술을 빼꼼 내민 꽃잔디는 풀숲에서 허덕이고 있고, 물타박이 심한수국 세 그루중 한그루만 푸른 잎을내밀었다.작년까지 풍성하지는 않지만 제법 흰나비 떼처럼 피어오르던유럽수국두 그루는 이제 쭉정이가 되어버렸다.
실외기가 놓인 가운데를 중심으로 왼쪽은 갈퀴덩굴이, 오른쪽은 방가지똥과참새귀리가 당당하게 점령하고 있었다. 우선여리지만서로 얽힌 채 무리 지어있는갈퀴덩굴을쥐어뜯었다. 하마터면 갈퀴덩굴에 휩쓸려 꽃잔디가 뽑혀나갈 뻔했다. 갈퀴덩굴에 가려졌던 환한 햇빛이 들어오자 꽃잔디는 눈이 부시다는 듯 파리한 얼굴을 들어 보였다.
시멘트 바닥과 돌사이 몇 줌 되지 않는 흙에 참새귀리는 뿌리를 박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줄기와 이파리는 어찌나 억센지 척박한 땅에서 자란 생명이 더욱 옹골차게 자리를 잡는 모양이다.뽑다가 엉덩방아를 두 번이나 찧었다. 이럴 줄 모르고 흰 바지를 입고 나온 나를 비웃는 듯했다. 에어컨 실외기를 얹어놓은 벽돌틈새로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벌써 까락이 생긴 것도 있다. 놀라운 생명력이다.
20센티정도 자란 방가지똥을 잡아당기니 속이텅 빈 줄기가 끊어졌다. 뿌리를 호미로 찍어 내니 쉽사리 나동그라진다. 수국은 물이 없어 죽어 가는 사이에도 방가지똥은 지난해 흠뻑부어놓은 거름을 먹고 어찌나 반지르르 살이 올랐던지 부러진 대궁 안에 500원짜리 동전이 너끈하게 들어갈듯하다.
화단을 빙 둘러쌓아 놓은 돌과 갈라진 시멘트 틈을 밀고 올라온 쑥과 괭이밥도 호미로 긁어 정리해 버리고 한창 노란 꽃을 부산하게 피워 올리는 민들레 한 포기는 남겨두었다.
그때였다. 도로 쪽으로 걸어가려는 꽃잔디 긴 다리를 올려놓으려다 보았다.꽃마리였다.
'아, 네가 꽃마리였어?'
어느 글귀에서 이름이 예뻐서 찾아보았던 풀꽃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이름을 몰랐던, 낯익지만 낯선 친구라 반가웠다.
안경을가지고 나와 바라보아도 그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들이밀고 5배 정도 확대하니 그제야 그 작은 얼굴을 보여준다.
'너도 꽃이야. 내가 선택했어.'
아래쪽부터 먼저 피어있는 연한 하늘색 꽃과 아직 벙그러지지 않은 분홍빛 꽃몽우리를 타고 꽃차례를 더듬어 올라가니 끝이 도르르 말려있다. 부드러운 꼬리 말리듯. 그래서 꽃말이었다고 한다.
꽃말이 꽃말이 꽃마리-
솜다리꽃에 비할바 아니지만 보송한 솜털이 줄기에 보인다. 다섯 장 하늘색 꽃잎을 따라 중앙으로 가면 안쪽에 오각형 노란 테두리가 보이고 그 안에 암술과 수술이 들어있다. 그 노란 테두리는 2~3mm 크기의 작고 앙증맞은 꽃마리가 종을 유지하기 위해 벌을 유인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할 일을 다한 노란색은 흰색으로 바뀐다고 하니 그저 자연이 신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