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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Apr 19. 2024

 버섯 사랑땜

독버섯, 버섯의 일생, 버섯이 잘 자라는 환경, 버섯이 나는 이유, 표고버섯 충격요법...

'버섯은  식재료'라는 것 밖에 모르는 문외한며칠째 검색창에 쓰고 찾아본 내용들이다. 생뚱맞은 사건이어서 납득만한 실마리를  찾는 동안 자두나무꽃이 피었다 졌다. 


 4월 10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달달한  믹스 커피 한잔  들고  가게 안쪽 문을 밀고 나갔다.

 '플라워카페가  별 건가? 마당은 손바닥만 하지만 블루베리 꽃이 조랑조랑 열리고, 고개 들면  넓은 하늘이 열려있는 이곳이  바로 풍광 맛집이지!'

한 모금 들이킨 커피의 달달함이 목구멍을 타고 온몸으로 햇살처럼 번졌다.

열흘 전부터  봉긋한 꽃망울을 터트려  달고 시원한 향기를  내뿜는  자두꽃과 새 부리처럼 뾰족한 푸른 잎에 눈길이 닿았다.  벌들을 꼬이느라  흘리는 향기에  취해  벌름벌름하던   안으로 흙냄새가  들어왔다. 이른 아침 원룸건물 틈새로, 연두색 이파리와  흰 꽃 지붕을  두른  자두나무 사이로, 얼기설기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볕을  먹고도 오종종 올라온  작고 여린  벼룩나물이 보였다.

3월30일경  비맞은  자두꽃

꽃이  피는 것은  두려움이라던   문장이  잠시  스쳤다. 세상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꽃을  피워 올린다는  그 말.  

'이제  정점에  오른  꽃은  지고  열매를  남기고 사그라져가겠지...'

아주 잠깐 자연이 일깨워 주는 글을 주어  만지작거리다  다시 커피 한 모금  들이키고 희끗희끗 떨어져 내린  자두꽃잎을  눈으로  밟아갔다. 동그란 도  즈려밟고 지났을  때쯤 흙을 드밀고 올라오는 기세에 흠칫 놀라 멍하게  떠다니던 시선을  되돌려   자리에 멈췄다. 

"자기야, 나와 봐! 이게  뭐지?"

 갑자기 자두나무 그늘이  수선스러워졌다. 

"표고버섯과 너무 닮았다. 큼큼, 흙냄새 섞인 촉촉한  향도 비슷한데!"

 흙을  밀고  올라오는  동그란 머리가, 쩍쩍 벌어진 표고 같은 무늬가 너무 앙증맞고 귀여워 미치광이버섯을  먹은 사람처럼 비실비실 웃음이 새 나왔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곳저곳에서 둥근 버섯갓이  땅을  열고 올라오고 있었다. 심심하던 차에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들처럼  우리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부터 검색창에 '버섯'이라는  단어를  올려놓고, 텃밭에서 버섯이 나는 생뚱맞은 현상을 설명할 만한 궤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 그랬었지!"

한 주 전쯤  버섯 한송이 발견했었다. 그때만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두나무  밑동에서  가끔 영지버섯 한 개 정도  보았기   때문에  별다른  의구심은 들지 않았었다.


"그때, 비닐 걷어냈을 때 말이야, 밭 두둑이 하얗지 않았어? 꼭 서리 내린 것처럼 말이야!"

 손바닥만 한 밭을 꽉 채운 풀을  뽑아놓고 뿌듯한  마음에 찍어놓은 사진을 찾아 상세정보를 보니 3월 15일이었다. 그날 한 시간여 남짓  따뜻한 겨울이  가꾸어놓은  벼룩나물과  괭이밥나물, 새포아풀을 뽑아냈다. 검은 비닐이  씌워진 두둑과 황토흙이 얼굴을 그제야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해 고추와  가지를  심느라 씌워놓았던 검은 비닐은 풀이 나지 않게  하려고 그냥  두었는데, 며칠 후  남편이  걷어버렸었다.

"그래서 비닐 걷은 자리만 그렇게  하얗게 서리 내린 것 같았구나! 그게 모두  버섯균 덩어리였던 거야!"

남편도 검은 비닐을 걷어낸 땅이 유난히 하얀색이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후  봄비가  유난히  자주 내렸었다.

버섯은 식물도 동물도 아닌 곰팡이, 균류에 속한다. 나무나 흙 속에서  실모양의 세포로 이루어진  균사(팡이실)는  일정한 모양으로 서로 합쳐지거나 갈라지며 방사형으로 퍼져 나간다. 이때, 균사체는 다른 생물의 신체를 분해하여 양분을 얻기 때문에 생태계에서  죽은 생물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분해자의 역할을 맡는다.


"그럼 작년 4월에  시작된 거였네. 저 버섯들은."

우리가  이곳에  정착한 지  8년 차이지만  이렇게 많은 버섯이  피어나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작년 4월 말에  들여온  거름이 가장  유력한  원인이었다.  거름 대여섯 포대  부어  골고루  쇠스랑으로  펴서  네 개의  두둑을  만들고  군데만 비닐을  씌웠었다. 그런데 비닐을  걷어낸  자리에만  버섯이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일 년여 동안  비닐 안에서는 적정 온도와  습도를  만난 균사체가 서서히 발을  넓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버섯곰팡이는 독특한 성질이 있어 보통 때는 실모양으로 있다가  주변환경이 변할 때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서로 협동하여 갓모양(자실체)을 만든다. 갓은 일종의 생식기관으로 갓밑의 주름진 부분에 씨(포자)가 무수히 매달려 있다. 포자는 자실체 바로 아래 떨어지기도 하지만 먼지처럼 바람을 타고, 혹은 다른 생물에 붙어 멀리 옮겨간 후 다른 곳에서 발아하여 균체를 시작할 수도 있다.


"그것이  쪼금만 거시기해도  날아가서  그렇게  핀당게," 

오래전 동네 버섯재배사에서  종균작업 품팔이를  했던  엄마는  핸드폰으로  보낸 사진을  보고  표고라고 하셨다. 그러나  표고는  흰색 포자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버섯을  따서 놓았던  자리에는  검은색  포자가 그림자처럼  내려앉았다. 이름 모를 버섯은  독버섯과 같이 여기라는 경고를  읽고, 표고였으면  하는  바람을  놓기로 했다. 버섯도  살아갈 환경이 적합하지 않았는지 며칠 사랑땜을 마치고 시들어갔다.


표고버섯 발아가 잘 안 되는  경우  충격요법으로  종균 접종을 마친 참나무를 물에 담그거나,  망치로  때리거나, 눕히거나, 세우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잠을  깨운다고 한다. 익숙한 환경에  안주하고 있는 팡이실(균사)  이러한  외부 충격에 의해 이곳에서  이사가야겠다는  집념으로 갓모양(자실체)을 만들고  그 아래  주름살에  포자를  만들어 멀리  날려 보낸다고 한다.


브런치에  입성한 지  일 년을  넘겼다. 지난해 3월 22일, 첫 글을 올리고 쿵 내려앉는듯한 심장을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끌어올렸던 기억이 난다.  누구의 엄마, 딸, 며느리, 배우자라는 타이틀을 벗어나 나만의 이름을 찾고 싶다는 열망으로 내민 실낱같은 브런치와의 만남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들어온 변화였다.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첫 글을 올려놓고 긴장과 기대가 뒤엉킨  복잡한 마음으로  출발했던 브런치는 참 잘했어요!라고  토닥이는 듯한 라이킷과  늘어가는 구독자수로 잊혀가던  설렘도 주었지만, 때론 작가님들의  변화무쌍한  글을 보며  부러움과  절망도 함께했다.


그럴 때면 브런치 홈화면 맨 윗상단 프로필사진 왼쪽, 알림 종에 찍힌 초록점은 희망의 씨앗이 되어 '처음이  아닌 것이  있었던가?'라는 오기와 함께 정체의 순간 나를 일으키곤 했다. 아직도 댓글 쓰기에 손가락을 멈추고 있는 소심한 수더분한 버마재비는 이 자리를 빌려 구독자님들과 라이킷으로 격려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 곳에 머무르는 자는 변화할 수 없다. 버섯의 균사체가 낯선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곰팡이가 밖으로 자실체를 내밀어 버섯으로  탈바꿈하듯, 긴장과 기대와 불안한 감정이 뒤엉켜 일렁이는 시간을 가져야만 새로운 포자를 뿌리듯, 내 글쓰기도 그렇게 흘러가기를 희망해 본다.

아직도  흙을  걷어내면  안에  보이는  팡이실(균사)와 작은 버섯들

며칠 사랑땜을 한  버섯은  이제  사진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사진은 이렇게 말하며  나를 깨운다.

변화와 정체, 선택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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