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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y 07. 2024

어린이날이라 쓰고  고추 심는 날이라 읽었더랬다.

빨간 날의  이몽(異夢)

빨간 날, 이렇게 비가 내리면 우리는 작은 방에서 시시덕거리며  뒹굴거렸지만, 엄마는 어쩌다  

꼬막손 좀 빌리랬더니 하느님도 무심하다 파마머리에서  빗방울을  털며 하늘을  원망했다.

"아무래도 요것들이 어젯밤에  빌었는 갑서... 하느님도  느그들  편인갑다!"

아버지는  태평하게  웃었다.


어린이날 즈음이면 하필  고추모종을  옮기는 때였다. 일 년 중  달력의  빨간 글자가  싫지 않은 날은  겨울 뿐이었지만(모든 날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유독  5월 5일은  싫었다. 다른 날은 다 놓아두고 적어도 어린이날만은 도시락을 싸서 어린이대공원 소풍을 못 갈지언정 이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버이날이라고 우리가 쉬더냐?"

아버지가 되물었을 때 허를 찔렸다. 뒷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

 말끝을 늘이고 말았다.

"그럼 그냥 그날도 쉬면 되지!"

어깃장을 써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봄이면 감자를 심고 고추를 심고 모 심고 또 무엇인가를 심어야 했다. 여름이면 보리를 베고,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따고, 가을이면 벼를 베고, 밤을 줍고, 때마다 할 일은 잊지 않고 돌아왔다.  엄마 말대로 눈이라고 달린 것들은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학교에  갔으면 했지만 고추모종을  심지 않고  지나는  해는  없었으므로  어린이날  학교에  간다면  가까운 일요일로 다시  날을  잡을게  뻔했다.


하느님이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날은 흔치 않았다. 얼핏 깬 새벽, 창호지로 스며오는 빗소리에  이불을 끌어당기며  히죽 웃고 다시  잠들었건 말간 아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이라고 날이 좋을 수가  없다! 느그들 일하라고 날도 덥도 않고 안그냐?"

아침  밥상에서  기분 좋은  아버지가 물어올 때면 갑자기 반찬을 입에  넣는 것도  잊고  밥알을  씹었다. 계속 씹은 밥알은 눈치 없이 달기만 했고 어느새 절로 꿀떡 넘어갈 뿐이었다. 지게에 고춧대(고추 지지목)를 한 짐 지고  올라가는 아버지 뒤로 호미와 모종삽 물조리개를 들고 언니와 나 그리고 동생들은 여지없이  동네 앞 언덕을 올라야 했다.   


검정 비닐이 씌워진 밭두둑에  아버지가  간격을  두고  모종삽으로  찍어  구멍을 내면 큰 동생은  주전자로  그 안에  호복 물을  넣었다. 작은 동생이  구멍하나에  하나씩  고추 모종을 놓고 가면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여자 셋은  물먹은  구덩이에  고추 뿌리를  넣고  검은  비닐 안에 손을 넣어 주변 흙을  끌어당겨  덮고, 고랑에  있던  흙까지  긁어  꾹꾹 덮어주었다. 그리고  나면  파란 물조리개 통에  물을  담아 온  동생은  심어놓은  고추모종 위에 빗살무늬 화살처럼 물을  뿌렸다. 그 사이 아버지는 고춧대를 고추모종 옆에 하나씩 박았다.  


어느 해인가는 이모네  고추까지  심었다. 우리 밭의  두 배가  되는  넓이에  시작부터  입이 댓 발 나와있었다. 사촌 오빠와  사촌 동생 그리고  우리 집엔  언니와 남동생 둘, 어린이날  동원된 꼬막손이  여섯이었다.   턱에 까만 복점이 있는 사촌오빠와 곱슬머리 사촌동생은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워했지만 그것도 잠시, 사촌오빠와 언니는 어른들을 향해 '어린이날 이 무슨 일이냐!'고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느그보다  한참 어린것들도, 아니 동네 눈이라고  달린 것들은  죄다  밭으로  나왔응께  쓰잘데기없는  소리  집어치워라!'는 것뿐이었다. 정말 그랬다. 앞집 한 살 위  언니네도,  옆집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네도, 내가 아는  아이들은 모두 가는굴, 시암굴, 서당굴, 피아굴, 정자나무굴에서 어린이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도 낳아놓고 서러워 울었다는 걸 태어나자마자  알았는지  순둥순둥하게  자란 셋째 딸, 나는 어느새  고추심기에  맛을 붙여버렸다. 파란 하늘과  초록으로 쉼 없이  번져가는  산과 들, 그리고  맨손에  만져지는  흙의  진득한 느낌, 맨  발에  와닿는  까슬한 흙에  빠져들었다. 고추모종을  구덩이에  넣고  흙을 끌어당겨  덮고  꾹꾹  뿌리가  땅속에 자리를  잡도록  입술까지  힘을  주다 보면 튀어나온  입도  어느새  송골송골한  땀방울을 닦느라 들어가 버렸다. 그러면 칭찬을 받았다.  말도 없이  잘한다는  칭찬과  동시에  누군가는  혼이  나야 했다. 그것은 언니와 오빠 몫이기도 했고 어느 날은 내 몫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린이날인데  일을  시켰다는 것이 미안했던지 해 질 녘  엄마는 특별히 팥소가 들어간 찐빵 한판을  쪄냈다. 우리는  마루에  걸터앉아 꽃그림이 그려진  쟁반 위에서  하얀 김이 오르는 촉촉하고 반질한 빵 한 덩이  집어  입술이  닿지 않게  이로  배어  입안에  넣었다. 이미  목젖부터  흥건한 침이 올라왔다.

우리는 마루에  걸터앉아 볼가득  찐빵을  밀어 넣고 두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어가며 히히덕거렸고, 엄마는  어느새  끊어온  고사리  한 보퉁이를   솥에 삶아내서  멍석에 툴툴 털어 널며  지청구 한마디 보탰다.

"복 달아난당게, 다리 가만 두고  못 묵냐!"


어린이날은 고추 심는 날이라 기억하는 그때  어린이들이 이제 오십 줄에 앉은 제비들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모여 앉아  지저귄다. 선물은커녕 밭으로  내몰렸지만 그날 발가락 사이로  밀려 나오던  황토흙과  검은  비닐 안에서  두 손이  물먹은 흙을  만지던   몰캉한  느낌, 송홧가루가  날리고  연둣빛이  햇살에  익어가던  오월의 바람, 눈감으면  바로  만져질 것만 같은  기억을.

때론  홀로  어린이날이 되면  언덕배기 황토밭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곳엔 그날의  푸른 공기가 젊은  엄마와  아버지가  어린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묵힌  선물 보퉁이가  이제야  풀리는 모양이다.


<사진: 어린이날 시골 텃밭에 고추를 심었다는 친구사진을 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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