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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r 22. 2024

배꼽?으로 만든  골뱅이무침

배꼽 먹을까?

뭘 먹어? 

하마터면 기묘한 상상을 할뻔했다. 오만상을 찌푸린 얼굴을 보더니 그는 붉은 대야에 담긴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것이  배꼽?  왜?

왜라니? 배꼽이니까 배꼽이지!


그것은 움푹한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무심하게 넣어 가볍게 에둘러 빚은 매끈했다. 황갈색과 적갈색이 이음새 없이 흰색에 이어지는 동그마한 바다우렁이 '배꼽'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배꼽 먹는 인간'라는  괴상한 상상의 문은 절로 닫혔다. 


조기, 박대, 꽃게, 아귀, 물메기, 굴, 바지락, 백합, 꼬막, 홍합 널린 게  생선이며  조개인  해망동 어시장에서  굳이 '배꼽'이  먹고 싶다며 그가  멈춘 곳은  바로  조개전(廛) 앞이었다. 산골에서 바닷가로  시집온 새댁은 그날 배꼽이 처음이었다.

  

 시댁 식구들을 만나는 날은 시골 수문 앞에  펼쳐진 뻘바닥에 널려있던 아사리(작은 바지락)와  배꼽과  새우,  망둥어와  숭어등  갯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밥상 위에  올랐다. 남자들이 모여 군대이야기에  열을 내듯  어느새  큰 시누이는 갯골을 건너고,  아주버니는 그물을 걷고, 어머니와 둘째 시누이는 아사리를 까서 젓을 담그던 그날로 걸어가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밥상 위에 올라온 생물보다 더 갯비린내를 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발자국이 찍힌 뻘바닥에 짭조름한 냄새가  고이는 날은 그리움으로 길어 올리는 샘물처럼  어릴 적  입맛은 마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날, 시댁에서는 배꼽을 삶았다.

남편에게  향수 어린  입맛이 배꼽에  있다면  내게는 '대사리'라 불렀던 다슬기가 있다.

시골아이는 한여름 뙤약볕에  대사리를  잡느라 이층단발머리 밖으로 드러난 목덜미는 늘 까맸다. 냇가에  피서를 온  도시 사람들이 '다슬기 잡나 보네요?'라고  물살을 어지럽히며 다가왔다. 그 아이는  짧게 답했지만 돌을  뒤집어가며  바구니에 주워 담는  모습을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지켜보는  도시사람들이 낯설고 불편했다. 

지금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금지되고  있지만 어릴 적에는  냇가 주변  커다란  상수리나무나  느티나무 아래는  여름  피서객들로  북적거렸다. 그런 날이면  다슬기  잡는 것을  피했다. 다행히  대사리도  한낮에는  숨어있다  해 질 녘이면 슬그머니  돌밖으로  기어 나왔으므로  해가  이울기 시작하는  시간에  바짝 잡아 돌아오는 게  좋았다.

시골 마트에서 발견한 다슬기. 이런 모양의 다슬기는  씁쓰레한 맛이  강하다. 좀 더  뭉툭하고 표면이 황갈색으로 골이 많이 지지않은  다슬기맛이  더  좋았다.

어릴 적, 큰집 형부들이 오는 날이면 엄마는 다슬기장을  만들어 놓곤 했었다. 다슬기를 확독에 싹싹 손바닥으로 밀어 껍데기에 묻어있는 물이끼를 벗겨내고 물에 담가 놓았다. 그러면 다슬기는 제 덩치보다 훨씬 큰 혓바닥을 내밀었 간혹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도 있었다. 다시 헹궈서 살살 손바닥으로 씻어내면 미끄덩하던 다슬기 껍데기가 보드득 소리가 날듯하다. 이때 물 빠짐이 좋은 바구니에 건져놓으면  다슬기는 다시  혀를 쏙 내밀며 굼실거린다. 

 이때다. 조선간장을 넣고 끓이던 물이 팔팔 끓으면 한 번에 탁 다슬기 바구니를 털어 넣는다. 그래야  움츠러들 사이 없이 나와있는 다슬기 알맹이를 빼먹기 쉽다. 엄마는 탱자나무 가시나 옷핀에 줄줄이 꿰어 한입에 털어 넣는 우리들과 달리 다슬기 뒤쪽인 똥구멍도 깨뜨리지 않고 쏙 드시는 것이 어린 우리들에게는 너무 신기했다.

굼실거리는 다슬기를 재빠르게 털어 넣고 나서 통마늘과 청양고추를 두어 개 썰어 넣어주면 칼칼하고 짭조름한 '대사리장국'이 완성된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대사리장국이면 밥 한 공기는 뚝딱이다.

산골에 처갓집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대사리장국을 먹은 남편은 지금도 그 푸른 국물은 무척 좋아한다. 바닷가에 시댁이 생기면서 찔깃 찔깃한 배꼽의 식감을 좋아하게 된 새댁처럼.


마 전, 아침부터  가게에서  바닷뻘을 끓이는 냄새가  났다. 이른 아침, 해망동에  들러  시장을  보던 지인이 계절을  따지지 않고 해망동에  갈 때마다 배꼽이 나왔나부터  확인하는 남편이 생각났는지 10킬로그램을 왔다.

 신이 난 남편은 직수압이 센 물줄기로 뻘을 최대한 깨끗하게  털어내고  배꼽 위로 물이 올라오지 않을 만큼 자박자박 넣어 삶는다. 배꼽은 오징어 낙지와 달리  오래 삶을수록  연해지므로 끓기 시작한 후 꺼내어 먹어보고 식성에 맞춰  불을 꺼야 한다.

 알맹이를  잡아당겨  빼서  내장을  모두 떼내 버리고  구석구석 씻어준다. 남편은 배꼽을 껍데기에서 꺼낼 때 마지막 부분에  붙은 누르스름하거나 푸르스름한 부분(우리는 이것을 배꼽 똥이라 부른다)을 절대 버리지 않고 싱싱한 똥을 골라 따로  놓는다. 다슬기 똥구멍 부분을 쏙 빨아들여서 먹었을 때 시원한과 씁쓰레하고 서걱거리는 맛에 대한 기억과 비슷하다고 나름 생각한다.

복부다리(일명 우리는 혓바닥이라 부른다)를 이용해  움직이는  복족류이므로 뻘이 많아  꼼꼼히  씻지 않으면 아주 가는 모래가  씹힐 수도 있다. 그래서 꼼꼼하게 씻은  배꼽을  담은  그릇에 굵은소금 뿌려  바락바락  치대  숨어있는  뻘을  씻어  헹궈주었다. 

강릉 여행 중 삶아 먹은  물레고둥은  배꼽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고  소라에  가까운 달큼한 맛이었으나 훨씬 저렴하고 씹히는 식감을  선호하는 남편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배꼽, 어릴 적부터  먹어온 쫀득거리는 그 맛을  좋아한다.


이렇게  배꼽을 먹는 날, 우리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낚싯줄에 강물에  부딪히는 햇비늘 같은  장면을 낚아 올린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배경인  미국 몬태나주 블랙풋 강의 풍광에  못지않은 우리의  강과  갯벌을. 하얗게  흐르던 여울물소리와  툼벙거리며 멱을 감던  시골 아이들, 장마가  지거나  큰 물이  일 때면 숨 쉴 곳을 찾아 물가로  나온  꺽지를  맨손으로 잡아오는  손맛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시냇물도 갯벌도  사라진 그곳에는  댐과 방조제가  생겼다.  태어난 곳을  찾아  물살을  거슬러  치열하게  지느러미를  흔드는 연어처럼, 고향에서 끊어진 탯줄을  찾는 이들처럼,  배꼽과  다슬기를 찾지만 허탕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갯벌도 냇물도 남아있었더라면

다시 찾은 그곳에서 물빛의  파닥거림과 유년의 벗들을 만나는  그  한가로움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저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리움으로  입맛을  다실뿐이다.


* 배꼽은 지역에 따라 정구지나  솔로  불리던  부추처럼  흔히  골뱅이라 부르는  큰 구슬 우렁이를  군산이나 부안, 서천 쪽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주로  서해안이나  남해안처럼  뻘과 모래가  있는 곳에서  서식하는 큰구슬우렁이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다이어트에 많이 애용되며 노화방지 효과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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