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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Apr 30. 2024

 할미꽃

301호, 반쯤 열린 문 사이로  구겨진 흰 시트와 벌거벗은 회색 철제 침상이 보였다. 안쪽 창가와 출입문  침대만 덩그러니  놓인 2인실, 문 뒤에 누군가  숨었을 리 없건만 병실문을  활짝 열어보았다. 침대 틈에 끼어있는 냉장고와  벽을  등지고 서있는 옷장은 괴괴했지만 오히려 산란했다.

"어디 가셨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보았던 간호사 스테이션으돌아가 엑스레이 촬영하러  내려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언니와 나는 엄마가 앉은 휠체어를 밀고 휴게실을 찾아 나섰다. 들창 밖으로  여전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초록으로  굼실거리는 공원 너머  삐죽 솟아오른  아파트가 시골 읍내 풍경이라 하기엔 어쩐지 어색했다.


 가끔  시골에  들러  듣는 소식 중 하나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한 두 명쯤은  늘 이곳에  입원해 있거나, 얼마 전 퇴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읍내 소재 개인병원 중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이곳이  때로는 마지막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동네 한가운데 한옥집 아주머니와 언니의 이웃집 할아버지도  입원해 계신다고 했다. 마당에서 당신 자동차에  밀려 골절이 생긴 할아버지는  입원을 고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데, 일주일 전 옥상까지  할머니를  부축하고 올라와  동네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무언가 말하는 듯하던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읍내에 대학병원이 있었지만  응급실을  이용하지 않는 한  거쳐야 하는 여러 절차와 대기시간에  지친 그들에겐 개인병원이  신속했다. 그러한 이유로 칠팔 년 전 척추압박골절로 입원한 엄마가 객지에 있는  가족을 불러들였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언니와 나는 비 오는 날이면  물웅덩이가  생기던 주차장이  아스콘 포장 위에 깔끔한 흰 주차선이 그려진 곳으로 탈바꿈한 것을 내려다보며 주변 주택가 땅을 사서  넓힌 모양이라는 둥,  건물도 늘린 걸 보니 시골에서  돈은  병원이  다 쓸어가는 모양이라는 둥 가랑비를  바라보며 애써 주절거렸다. 마스크에  가려  눈만 보이건만  부슬부슬 떨어지는 창밖 풍경 같은 엄마를  모른 척하기 위해서.  


"이모, 오셨어요!"

일주일 전  보았던  사촌오빠가 밀고 오던  휠체어를  멈췄다. 이모는 윗몸을 지탱하고 앉아있기도 힘든지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수액을  줄줄이  매달고 산소 콧줄을  이모와 휠체어에  앉은  엄마. 아흔 인 엄마는 여든네 살  동생 손을 잡고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눈물을  훔쳤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 힘조차 없어 보이는 이모와  홀로  설 수 없는 엄마는 서로를 보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외삼촌을 떠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 엄마, 이모 그렇게  세 모녀는 한마을에  살았다. 이모는 한동네에  살던  이모부와  결혼을 했고,  엄마는  십리정도  떨어진  마을로 시집을 갔지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외할머니 집으로  아버지와 함께 큰언니와 작은언니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 후 외할머니  집에서  내가  태어났다. 그러니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이모, 세 모녀지간은  어린 시절부터 죽 내 기억 속에  함께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가끔 시골에 올 때면 마주하는 이모의 얼굴이  어릴 적 보았던 그 얼굴이 아닌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사촌오빠는 휠체어에서 이모를  어렵사리 침상으로 옮겼. 창문 쪽으로 모로 누운 이모는  파란색  모포를  덮어주는 올케언니의  손길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폐렴으로  입원한 후  다리에  힘을 잃고  걷지도  못하는  이모는 산소 콧줄을 끼고  마스크 안에서 겨우  말했다.

"감기가  안 낫더니만 이렇게 딱 몸을  부려부냐안..."

파란 모포 위로 근육이 다 빠져버린 다리를 만지니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주삿바늘 자국으로 검게 멍든 팔뚝도 소 마구간에 살짝 부딪치기만 했는데도 쉽게 멍들던 외할머니의 흔적만 같았다. 창밖 쪽으로 겨우 모로 누운  이모  등을 쓸었다. 이모의 말은 힘겨웠고,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손녀들이 와서  날마다  주물러준다는 말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늘 자식들에 이어 손주들 자랑하기 바빴던  이모는 그대로였다. 서툰 솜씨로 발가락과  을  풀어드리고  다리를  주무르고  등을  쓸어드리니  마스크에서 새 나오는 내 입김에  땀이 배었다.

 

어느새  가늘게  코를 골고  주무시는  이모를  두고 우리는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1층까지 따라 나온 사촌오빠에게 우리는 아버지도 폐렴을 앓고 한 달 후 퇴원하셔서 몇 년을 더 사셨다는 이야기로 걱정을 덜어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모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까지 등록해 놓았더라며 저러다 일어나시지 못하고 가시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 사촌오빠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행을 걷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이모가 엄마였으면 하고  가끔 생각했었다.

늦가을, 엄마 심부름을 가는 길이었다. 동네 앞으로 가면 모롱지에 있는 이모집까지는 멀었다. 그래서 지름길인 뒷길로 총총 걷다가 뛰기를 반복했다. 송 씨 선산이 있는 뒷동산 밑을 지날 때, 겁이 많던 나는 쉬지 않고 내달렸다.

"이모, 이모!"

마당에 들어서기 바쁘게 숨을 몰아쉬며 이모를 찾았다. 부엌에서 나오는 이모는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뭘 가지고 오라고 보냈는데..."

"심부름을 왔는데 잊어버렸어야? 그것이 뭣이끄나?"

"몰라....  잊어버렸어요..."

이모는 웃고 말았다. 전화기가 있어 물어볼 수 있는 때도 아니었으니 다시 되돌아가서  엄마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사챙이 꼰 거 좀 갖고 오라고 했더구먼... 저것은  통 뻘게여서... 저 정신에 학교는 어떻게 다니는가 모르겄어..."

하는 수 없이  엄마의 야단을 맞고  다시  뒷길로  뛰었다. 다시 모롱지도착한 내게 이모는 말했다.

"그것이 생각이 안 나드냐? 인자 사챙이 사챙이 허면서 뛰어왔드냐?"

눈앞에 물건을 두고도 잘 찾지 못하거나, 학교에 우산을 두고 오거나, 뭘 물어보면 '몰라'라고 자주 대답하는 내게 엄마는 화를 내며 꾸짖었지만 이모는 그저 웃으며  말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모가 엄마였으면 하고  가끔 생각했었다. 이모가 사촌오빠에게 '호랭이 물어갈 놈!'라며  소리치는 것을  보았지만, 그래도 엄마보다 잘 웃고 젊은 이모가 좋았다.


"이모님, 이모님 다녀가시고 어머니 마음이 불편하신 모양이에요. 어머니 어제보다 좀 더 나으시니 걱정 마시고 이젠 오시지 않으셔도 된대요."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 엄마는 다시 이모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잠이 안 와서 한숨을 못 잔 엄마가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건 전화를 받은 사촌올케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를 시골에 두고 혼자 돌아오는 길, 그래도 동생 얼굴 한번 보고 와서 후련하다는 엄마의 말에  병문안을 다녀왔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과, 창문을 향해 모로 누운 채 아무도 바라보지 않던 이모의 등을 떠올리며 아직  총기 좋은  이모의  마음을  아프게는 하지 않았을까? 하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휠체어를 탄 엄마의 병문안이 도리어 그만큼 당신이 위중한 상태라는 것을 이모는 알면서도 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안 오면  서운했겠지만.


 한 달도 못돼서 염색을 해야 직성이 풀리던 이모는 비바람에 쓰러진 보리대처럼 엉클어진 붉고 뇌랗던 머리카락 사이 듬성듬성  허연 뒷머리를 내보인 채  누워있었다.   자줏빛 꽃잎이 아직도 곱고 고운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할미꽃처럼 둥글게 등을 말고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언니집 마당 가에 심어진 할미꽃을 보았었다. 붉은 자줏빛 꽃망울을 찍으려 했으나 땅을 향해 고개 숙인 꽃은 그 얼굴을 내어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굽은 줄기와 활짝 꽃을 피운 뒤 다시 고개를 드는 아직은 푸른 꽃씨, 그리고 기품 있는 붉은 자줏빛 벨벳 같은 꽃망울의  옆모습을 찍었다.

 그날,  바람에  날리는 씨앗을  만들기 위해 땅을 꼭 붙들고 있는 뿌리와 속삭이느라 고개 숙인 할미꽃  굽은 등뒤로 여느 날과  다름없이 푸른 햇살이  일어섰다 누웠다. 그리고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꽃가루  받이가  끝나고  씨앗을  바람에  날릴 때쯤  하얀  백발이 되는  그때, 아주  잠깐 할미꽃이 되는 할미꽃은 할미꽃이라 평생 불리는 것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챙이: 새끼(짚으로 꼬아 줄처럼 만든 것)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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