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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Apr 09. 2023

쇠똥구리의 고백

조회수가 50,000회를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50,000회를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폭등했다. 이런... 오만이라니...

 글을 쓴 지 딱 보름이 지난날이었다. 내 브런치 글방은 하루 조회수 평균 20여 명 안팎, 절대  두 자리 숫자를  넘어본 적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일하는  도중 반가운 라이킷을  확인하다  조회수에 얼떨떨해졌다. 일단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기뻤다. 두 자리  후반도  아닌  세 자릿수라니...


그  후로도   순식간에  이런 메시지들이  날아왔다.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2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10,000을 돌파했습니다-

이 정도 되니 웃음을 잃어버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원인을  찾아야 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최대한의  검색능력으로  찾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야말로 별거  아니었다.  


다음 브런치스토리에  노출이 되어있었다.

부침개 황금레시피-쉿! 를 내리게 하세요^^



따분한  일상 때문이었다. 브런치와 첫 만남은. 어느 날  너무 재미없는  일상에  홀로 욱해서 시작했다. 그때가 지난해 9월이었다. 욱한 것 치고는 성의 없이 끄적거리던 글을 던지다시피 신청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주일을 꼬박 기다렸다 받은  메시지였다. 세상은 매번 호락호락하질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잊어버린다. 재주 없어 보이는 나 자신에  실망을 했지만 욱한 사람들의  특징이  그렇듯  금세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봄이 왔다. 나는  또다시  늘어진  일상에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두 번째 도전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생각보다 빠르게 축하 메시지가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콩닥거렸다. 카톡 알림음을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었다. 카카오스토리를 보고 오래된 친구들 댓글이 하나씩 올라올 때 느끼던 설렘만큼이었다. 까끌거리던 일상에  물기가 스며들고 볕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늘어진 일상에 새싹이 빼꼼히 나오고 있었다. 내 열심히 해보리라 비장하게 마음을 먹었다. 한 달이 지난 후에나 내 자리를 잡거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알려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어설픈 브런치 작가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 글을 올리고 라이킷 숫자가 하나, 둘 올라오자 처음 접한 브런치 세상에 얼떨떨하면서도 어느새 나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무릎을 꿇었다. 글을 올리고 마음 졸이며 반응을 지켜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곧 글로 만난 작가님들의 라이킷은  나를 금세 일으켜 세우고, 웃게  만들었다. 쓰러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늦은 밤,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 오는 '아 해냈구나'하는 성취감과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내 글을 보며 내쉬는 한숨은 널을 뛰었다. 희망과 절망이  번갈아 가며  그  이마를  내보이곤 했다.


글 쓰는 과정은  내가  나다워지기 위한 여정이요,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길이라며 짐짓 어른스러운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내 안에는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 아이가 들어앉아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누군가 읽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행위이므로 반은 설렘으로 또 그 나머지 반은 두려움으로 두근거릴지언정 천천히 걸어가 보자고 마음을 다지며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눈질로 바라본 다른 작가님들의 구독자수와 라이킷 수에  급 좌절했다. 글을 올려놓고  부끄러웠다. 이제 보름도 안된 신출내기의 성마른 조급증이었다.


나는  그리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충 100점  만점에  80점 후반대를 선호한다. 이 정도를  두고  무슨  욕심이  없다는  군소리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내  기준치에서  늘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해 온  숫자일 따름이니 이해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게다가 답지도 해설지도 없는  일상에서의  점수는 내가  찍어놓은  100점의 좌표와 타인의  100점이 같은 지점에  있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니 대충 이해해 주길 바란다. 게다가  나는 목표치가 높지 않은 보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저  바닥에 있었다.  재료의 신선함을 X축으로 하고 요리솜씨를 Y축으로 한다면 브런치스토리 안에서 내 솜씨 좌표는  마이너스(-)에  마이너스(-)  4 사분면 어디쯤일 듯했다. 결국에는 '브런치작가'라는 글자를  보면  몸이 근질거렸다. 남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해서 벗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내 몸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브런치 시작 9일 만에  아들, 딸에게 알렸다. 열흘째는  단짝친구에게 소문을 냈다. 그리고  사심 가득한  구독자를  만들었다. 라이킷을 누르도록 종용했다. 그리고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내 글  얼마나 읽어줄 거야? 하고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노려보는  떼쟁이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조회수가 5만이 넘었다!

 전날 밤  고심 끝에  올린 글도 아니었다.   비도 오고  일도 많지 않아  한가한 틈을  타  난로 앞에서  어젯밤 쓰다가 저장된  글 중 하나를 수정을 거쳐 오전 11시쯤  올린 것이었다. 무엇이 이글 조회수를 올렸을까? 찾아보니 다음과 구글 포털사이트에 '부침개 황금레시피'가 노출되어 있었다. 그렇다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내 글은 포털에 올랐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의 클릭으로 6만을 넘어서고 있다.


3일 천하였다.

숫자에 집착하던 얼치기 브런치 작가에게 첫날 2만 7천의 조회수는 신흥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조회수와 달리 라이킷이나 구독자는 늘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조회수는  배가 너무 고파 죽을 것만 같은 제리 앞에서 치즈를 물고 달아나는 톰처럼 나를 비웃고 달아났다. 갑자기 졸부가 된 느낌이었다. 부자였으나 진심 부자가 아니었다. 갱년기 때도 잘자던 잠자리가 불편해졌다.


사흘 동안 생각이 많아졌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몇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첫째, 내 글처럼 조회수가 높다고 해서  모두 매력적인 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글의 완성도와 조회수가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브런치 내에서 낚싯대를 가지고 낚시를 했다면 포털 사이트에서 글 노출은 어망을 던져 조회수를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포털에 접속, '부침개 황금레시피'를 클릭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레시피가 궁금해서 클릭한 사람들로  '낚였군!' 하고 그냥 나갔을 것이다. 다행히 들어가 봤는데 추억 한 젓가락이라도 건질 수 있는 글이었기를 바라는 내 마음만 휑뎅그렁 남아있다.


둘째, 그렇다 하더라도  제목은 글을 읽게 하는 미끼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으로 첫인상처럼  독자에게 호기심을 일으킬 수 있는가 없는 가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그날 마침 비가 내렸고, 부침개가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제목은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충분히 팔딱거리는 미끼가 될 수 있었다.  이런 메커니즘?을 아는 누군가의 미끼 선정에 의해 내 글은 노출이 되었던 것이라 짐작한다.


셋째, 독자는 천편일률적인 한 가지 맛에 익숙한 한 사람이 아니라 셀 수없는 다양한 맛을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이 원하는 보편적인 맛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꼭 내가 그 입맛을 맞출 필요는 없다. 또 맞추지 않을 이유도 없다. 단지 내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그득하다면 최선을 다해 그 입맛을 맞추기 위한 공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나는 나의 방식대로 가겠다고 결론을 냈다.  


조회수에 의연하기란 간지럼 태우는 손에 웃음 참기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 사흘이었다. 그리고 조회수와 연결되지 않는 구독자수에 마음쓰리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씁쓸한 맛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경험이 주는 달콤함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바로 앉아 글을 쓴다. 어느 누군가에게 내 글이 가 닿기를 희망하며 글을 쓴다. 내친김에 내 생각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욕심내 본다. 그리고  브런치 입문 한 달도 안 되어 이런 일련의 과정을 일찍 겪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알 수 없는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며칠 중심을 잃고 흔들렸으나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을 실감하는 날들이었다. 남들은 모르지만 내 보폭대로 걸어야 함을 알려준 다소 요란한 날들이었다.


어느 날  써놓은 글을 자르고 붙이며 문득 내 모습이  쇠똥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놈을 닮아있었다. 낮에는 짬짬이 글감을 찾아 핸드폰에 짧게 끄적이고, 밤이면 몸을 구부린 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뭉치고 동글동글  빚어내는 쇠똥구리가  나였다. 나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소똥을  동글동글 빚고 있다. 하나를 굴리다가 아닌 듯하면 부서질세라 얼른 저장을 하고, 다시 다른 소똥을 굴린다. 모난 곳을 다듬고 단단하게 굴려서 그것도  아니다  싶으면  숙성실에  넣어놓는다. 그렇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는 한낱 소똥에 불과한 것들을 동글동글 경단을 빚듯 글을 빚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등허리 손 닿지 않는 어느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글이 되고 싶다. 자기 긍정의 힘으로 오늘도 나는 쓴다.


(검색결과 쇠똥구리에 대한 책 내용 일부를 올려놓는다)

"나는 길을 걷다가 혼자 쇠똥을 뭉치고 있는 쇠똥구리를 보았다. 쇠똥구리는 넓적한 머리 앞에 달린 써레 모양의 톱니로 쇠똥을 파헤치고 자르고 긁어서 모은다. 이때 부삽 모양의 앞다리도 함께 이용한다. 이렇게 모은 쇠똥을 조금씩 조금씩 뒷다리 쪽으로 보낸다. 그러면 가운뎃다리와 뒷다리의 종아리마디는 이 쇠똥 부스러기를 받아서 누르고 뭉친다. 이렇게 만든 쇠똥덩이를 이번에는 다리 사이에 넣고 빙글빙글 돌려서 경단 모양으로 만든다. 마치 사람이 손바닥으로 경단을 빚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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