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아 안녕?
아침 출근길 아파트 이웃들과의 인사는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과 나누는 인사는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해서일까? 아이들의 표정에서 감정과 기분이 느껴진다. 미간이 구겨져 있는 아이는 유치원 등원 준비로 한바탕 실랑이를 보낸 흔적이 역역하다. 입이 한발은 나온 아이도 있고, 엄마에게 혼이 났는지 눈가에 눈물 자국이 난 아이도 있다. 엄마가 인사를 시켜도 시쿤둥하게 반응한다. 유치원 셔틀시간에 맞춰 아이를 준비 시키는 엄마의 능력은 거의 원더우먼 급이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깨워서 씻겨서, 입히고, 단장하기까지 엄마의 감정은 몇 번이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렇게 셔틀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타고나서야 엄마는 준비해온 과일까지 챙겨 아이입속에 넣어준다. 아이와 아침 등원준비를 하느라 진이 빠진 엄마는 그때서야 후회한다.
허둥지둥 준비하느라 아이를 닦달하고 빨리 못하는 아이에게 한숨을 보이며 곱지 않았던 엄마의 말투, 눈빛, 행동 때문에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내가 엄마가 맞나’ 하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올라온다.
엄마가 된 후부터 아이로 인한 감정이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엄마에게 있어 출산과 육아는 엄마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대격변이다. 감정이 좋은 감정만 있으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감으로 충만한 천국에 가깝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조금씩 자아가 생성되는 시기부터는 엄마가 원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동안 예뻐만 했던 내 아이는 어디로 가고 옆집에 말 안 듣는 그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생각한다. 내 속에서 뭐 저런게(?) 나왔나 하는 욱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는 ‘내가 엄마가 맞나?’하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원장님 오늘 소풍은 못 가겠어요,”
“왜요? 어머니”
“승준이가 화내고, 짜증내느라 준비를 안 하고 있어요.”
승준이는 평소 원에서는 모범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다. 그런데 집에서 엄마를 대하는 모습은 정반대다.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데 엄마에게만 짜증내고 화를 낸다고 한다. 승준 엄마는 그런 승준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나에게 하소연을 하곤 하는 엄마다. 나는 차량을 지연시키기는 어려우니 먼저 가겠다고 말하고 아이를 잘 달랜 후에 개별적으로 소풍장소에 오셨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알겠다고 하시며 한숨을 푹 쉬신다. 함께 가지 못하는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기다리는 다른 엄마들의 눈치가 보인다.
오전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할 무렵 아이와 엄마가 소풍장소로 왔다. 아침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등장한 엄마를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소풍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 버스 안 옆자리에 앉았다. 아이는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고, 나는 아침의 일을 물었다.
승준 엄마는 직장맘이다. 친정엄마가 근처에 사시면서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아이에게도 친정 엄마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으로 생활 한다. 아이에게도 늘 미안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엄마는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준다. 어른들은 아이 버릇 나빠진다고 말을 해도 승준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가 버릇이 없어도 그저 엄마 때문으로만 생각하고 크면 나아 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승준이의 말과 행동은 점점 더 강도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유독 엄마에게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는 불안하다. 엄마에 대한 신뢰와 불안이 늘 공존하는 마음을 갖고 자라게 된다.
아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이 말은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꿰뚫는 제 3의 눈이 있는건 아닐까?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쩜 귀신처럼 엄마의 감정을 캐치하는지 속일 수가 없다.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감정 전파가 아이에게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엄마의 감정 변화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에 엄마는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살펴주어야 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고자 한다. 편안하고 좋은 환경을 위해 좋은 집과 건강을 위해서 유기농 식품으로 준비해주고, 아름답게 꾸며 주고 싶은 마음에 멋진 옷을 구입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엄마의 감정을 전해주는 일은 그 이상의 선물이다.
우리가 선물을 준비할 때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는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살피게 되고 상대가 고맙게 받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다. 엄마의 감정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감정이라는 선물을 잘 가꾸고 다듬는 방법은 감정을 들여다보고 살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감정이 느껴졌는지 알아차려주고 감정의 원인을 찾아봐주는 것이야 말로 나의 감정을 보석으로 다듬는 과정이다.
과거의 어떤 기억 때문에 상처가 있는가? 그 생각만 하면 몸서리 쳐지는 기억으로 괴로운가? 속상하고 슬픈 과거의 상처로 넘어져 있을 일이 아니다. 감정에 약을 발라 주어야 한다. 약을 발라주는 일은 그 원인을 아는 것부터 시작된다. 몸이 아픈데 원인을 몰라서 답답할 때 가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원인을 아는 것부터 회복의 시작이다. 알기 때문에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물론 안다고 하여 모든 상처가 회복되고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시집오기 전 친정아버지의 사업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친정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다. 아버지는 항상 경사장으로 불렸고, 큰 부자는 아니였어도 먹고사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3형제 결혼시킬 때 주신다면 집도 3채식이나 마련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사업에 복병이 있었다. 그 복병은 작은 아버지다. 작은아버지는 집을 짓는 사업을 하셨다. 작은 아버지의 사업이 잘되어 승승장구 할 무렵 사업을 확장하셨고 재정이 어려워진 작은아버지는 형님인 친정아버지에게 보증을 요청하셨다. 다음 이야기는 무슨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3형제 결혼시킬 때 주신다던 집은 경매로 다 넘어 갔고, 살고 있는 집마저 빨간딱지로 뒤 덮히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아버지는 재기하기 어려우셨고, 몇 해 후 어느 해 겨울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작은아버지의 대한 원망과 아버지의 잘못된 판단으로 가족 모두를 궁지에 몰아넣은 친정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가슴 한켠에는 늘 가득 차 있었고, 돈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이 늘 따라다니고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너무 괴로웠다. 인생이 늘 행복한 꽃길만을 걸을 수 없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선택하여 얻은 고난이든 누구로 인해 얻은 고난이든 결국 고난은 내가 이겨내야 한다.
나는 사람에 배신과 돈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앎을 통해 사업을 할 때 한 번 더 신중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돈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면 ‘그때 아버지 사업 때문에 내 감정이 이렇구나. 잘될 거니까. 걱정 하지마.’하며 나의 감정을 다독인다. 그렇게 하고 나면 어느 순간 조금 전 느껴던 감정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근본을 알 수 없는 두려운 감정이 느껴질 때는 의식을 성장시킬 수 있는 독서를 하기도 한다. 성경에 나온 인물들의 고난을 헤쳐나간 이야기나, 사업 성공에 관한 성공스토리를 읽거나 또는 극한 고난을 극복한 이들의 강연을 통해 새 힘을 얻고 매순간 느껴지는 사업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고 감정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몸에 난 상처는 밴드를 붙여주고, 약을 발라주면서 치유되는 것을 볼 수 있어 다행이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싸매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럴 때마다 일단 멈추고 내 감정을 들여다보자. 그렇게 연습을 하다보면 내 감정을 연주 할 수 있는 감정연주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