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헤어졌다.
이번이 몇 번째 이별이었는지 새는 건 이미 오래전에 멈추었다. 수많은 만남. 딱 그 수만큼 많은 이별.
매번의 이별은 각각 다르고. 매번의 이별은 각각 나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간다. 몇 번째 이별이었을까, 언제쯤엔가 나의 눈물이 사라졌고. 그 후 또 몇 번 재즈음에는 슬픔 감정마저 공허함으로 치환되어 기계적인 하루를 반복하게 해 주었다.
사랑은 했었던가? 아니, 좋아는 했었나? 이젠 이런 의미 없는 질문조차 묻지 않는다. 그저 약간의 상실감에 조금 헛헛함만 가지고 잠을 청할 뿐.
가끔 돌이켜본다.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가끔 그리운 건 그들인지, 아니면 그때의 나인지 조금 생각해 보곤 멈춘다. 그마저도 의미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들도 나도, 그리워하기엔 이젠 더이상 나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첫 연애의 마지막은 온통 눈물이었다. 정말 민폐다 싶을 정도로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고, 많은 이들이 위로했다. 토닥이며 '괜찮다', '여자는 많다', '힘내라' 등 옆에서 술잔을 기울여주며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감정에 공감해 주는 역할극에 충실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가슴 시원해지게 울었다.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쉴 때까지 울었다. 그리고 그 울음에 나의 온 세상이 위로를 건네었다.
세 번째 연애는 나를 부쉈다. 문자 원의미의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진짜 처음으로 사랑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너무 사랑했고, 그래서 서툴렀다.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했고 끌어안았다. 그리고 부서졌다. 나도 그녀도. 내 온 세상이던 그 사람은 가고, 그 빈자리에는 온통 자기혐오와 파괴만이 남았다. 나는 내가 너무 미워 나를 철저히 망가뜨렸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울지는 않았다. 다만 아플 뿐이었다.
여섯 번째 연애는 공허했다. 그즈음이었나? 내가 이별해도 울지 않게 된 것은? 아니 조금은 울었던 것 같다. 참 많이 웃게 해 준 사람이었다. 사랑할 때는 사랑한 줄 몰랐는데, 지나 보니 참 많이 사랑했더라. 지나 보니 참 좋은 사람이었더라. 젊음은 젊음에게 주기 너무 아깝다고 했던가? 사랑할 땐, 행복할 땐 나는 모른다. 지난 자리를 돌아보고서야 비로소 그곳에 사랑이 머물렀음을, 행복이 있었음을 잔잔히 느끼고 고개를 끄덕인다.
열 번째 연애를 마지막으로 새는 것은 그만두었다. 연애의 횟수가 그렇게 의미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탓일까? 누군가는 5년 10년도 만나던데 나는 왜 몇 개월만 만나도 이렇게 괴로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정말 별의별 사람을 만나보았고, 믿기지 않는 이별도 여럿 경험해 보았다.
오래전 이별 후 세상 모든 노래가 나의 노래 같이 느껴지던 적이 있었다. 유행가의 가사들이 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것만 같고, 멜로디만 흘러나와도 가슴이 아렸다. 온 세상이 슬픔에 잠겨 우울한 눈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늘 혼자서 노래방을 갔다. 예전과 달리 동전 노래방에 동전을 챙겨가지 않아도 된다. 무심하게 좁은 방으로 들어가서 마이크를 잡고 내가 아는 구슬픈 이별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 어떤 가사도 나의 이야기 같지 않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고 그저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나에게 집중한다. 복식호흡에 집중하며 기교를 멋들어지게 넣는다. 시원하게 열창하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어느 노래도 나의 가사는 없다. 나의 이야기는 없다.
마모될 대로 마모된 것일까 나는? 이별에도 덤덤해져 버린 것일까? 주변 친구들은 이제 벌써 둘째 아이 임신 소식을 건넨다. 다 나와 같이 초라한 청춘들이었는데 어느새 아버지가 되어 사랑하는 아내와 본인들을 꼭 닮은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나는 기계적인 축하를 건넨다. 아니 이젠 그마저 건네지 않는다. 이미 온 세상의 축하를 받고 있을 테니.
예전에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는 것을 꿈꾸었다. 너무 사랑해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무치는 사랑. 죽고 못 사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람하고 살 줄 알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죽고 못 사는 그런 사랑이 어디 있나? 아무리 사랑해도 지독하게 안 맞는다. 사랑할 수록 안맞는다. 타인은 나일 수 없다. 결혼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못 참아주겠는 게 없는 사람이랑 하는가 싶다. 정말 이것만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부분이 없는 사람이랑 하게 되는가 싶다.
사랑을 못 믿는 게 아니다. 인간에 대해, 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20대 언젠가 미칠 것 같은 사랑도 하고. 눈물 펑펑 나는 이별도 하고 서로 싸우고 깨지고 끌어안고 부서지는 이 모든 과정을 지나. 비로소 가슴 미어터지는 것만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님을 알게 된 탓이다.
또 이별했다.
참 이번에는 그래도 많이 참으려 노력했다. 정말.
그럼에도 안 되는 무언가가 밟혀 우린 또 작별을 고했다.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이 내 이야기에 등장하고 사라진다.
또 누군가의 이야기에 나는 등장하고 퇴장한다.
이별이란 건 별거 아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등장한 등장인물 E-8 정도가 사라지는 그런 작은 에피소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녀와 나 모두, 아니 그녀들과 나 모두 안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