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할 수 있는 거냐?

by 루싱

스무 살 즈음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나와는 아직은 먼 이야기, 어른들의 이야기같이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어르신이 따라주는 술자리도 불편하기만 나이에 결혼은 진정 성숙한 ‘어른’이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지금 서른 살이 넘어버린 나인데 여전히 어르신이 따라주는 술잔은 불편하고 결혼은 먼 나라 이야기 같이 느껴지는 건, 내가 성장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그 어른으로만 보이던 사람들도 사실 나와 다를 바 없는 청년일 뿐이었던 걸까?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에 대해 사뭇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하나 둘 청첩장을 건네는 것을 보고 있자면, 나 혼자만 덩그러니 철이 안 드는가 싶곤 하다. 뭐, 요즘 남자 결혼 평균 나이가 33세라는 걸 보면 아직 평균보단 젊으니까 싶다가 지금부터 연애해도 1년 후에 결혼할 가능성이 있는가 생각해 본다면 난 매우 높은 확률로 평균보다 늦을 것이다. 여자 평균 결혼 나이는 30세라고 하니 단순 통계만 본다면 이미 내가 알던 동갑내기 여자애들 절반 이상은 결혼을 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나머지 극한에 수렴할 정도로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안 하는 여성들도 통계에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라면 70~80퍼센트는 이미 결혼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맨날 뭉쳐 다니는 친구 6명이 모두 결혼과는 요원한 삶을 사는 것을 보니 퍽 안심이 되곤 한다. 예전에는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진심으로 같이 아파해줬으나 지금은 그저 놀려먹을 궁리만 하고, 다들 철들긴 글렀다. 그래도 다들 나름 진지하게 결혼에 대해서 자기만의 생각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 더러는 상황이 아니라서, 누군가는 딱히 생각이 없어서, 어떤 녀석은 무서워서, 뭐 들어보면 각자 다양하게 결혼을 나름 진지하게 생각은 해본 모양이다.

자연스럽게도 당연히 그 질문은 나에게 넘어와 물어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너는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야?”

“00 씨도 결혼 준비해야 할 나이죠?”

뭐 질문의 포맷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결국 다 비슷한 이야기다. 그렇다. 오늘 푸념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혼에 대해서이다.




결혼에 관련되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를 먼저 말하자면,

“딱 첫 만남에 저 사람이랑 결혼할 줄 알았어.”

혹은 그와 비슷한 포맷의 “저 사람과 결혼할 줄 알았다” 유형이다.


미리 말해 두건데, 나는 저 소리를 (젠장) 거의 만나는 여자 한 테마다 들었다.


내 친구 놈 중에 굉장히 잘생긴 녀석이 하나 있는데, 언젠가 그 녀석이 자기 대학교 여자 선배 한 명을 소개해 준 적이 있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무용과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자. 그분은 수줍음을 많이 타셔서 둘이서 만나기는 부끄럽고 셋이서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그렇게 셋이서 만나서 밥을 먹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타입이 아니었다. 자리가 파하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어떻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거절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찰나, 친구 놈이 말하기를,

“야! 누나가 니 보자마자 ‘이 사람이다!’ 싶었다던 데?”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한번, 두 시간 남짓 봤는데? 그것도 셋이서 봐서 대화의 대부분은 친구 녀석 이야기였다. 다행히도 적절한 이유가 마침 생겨서 거절을 할 수 있었고, 그 누나는 1년인가? 후에 진짜 ‘이 사람’인 사람을 만나 바로 결혼했더라.


뿐만 아니다. 예전에 20대 중반쯤 잠깐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나랑 사귄 지 대략 한 달 정도 되던 때에 자기 부모님에게 ‘이 사람이랑 결혼할 거 같아요’ 했단다. 연애를 제법 많이 했다던 친구였는데 처음 부모님께 그렇게 말했다고 얼굴 붉히며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 물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소식도 모른다. 관심도 없고. 덧붙여서 세 달 만났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 사람이다!’ 싶다면 그 사람일 확률은 100%에 수렴할 것이고, 반대로 결혼하고 나서, ‘이 사람 일거라고 알아봤다.’라고 한다면 그 또한 논리 상으로는 참이 되어 버리니 사람 운명이라는 것은 얄팍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두 번째로 내가 결혼에 관련되어서 가장 싫어하는 말은,

“결혼은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을 때,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앞선 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싫어, 아니 혐오한다. 더 큰 문제는 살면 살수록, 이 말이 너무나 맞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이 환멸이 드는 것이다. 위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감정이 생각난다. 살면서 이렇게 패배주의에 찌들고 한심해 보이는 말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때도 들었던 감정은 ‘정말 부정하고 싶지만 맞을 것 같다.’였다. 그리고 나이가 수년은 더 먹은 지금, 그 말은 진짜 맞는 말 같아서 몸서리치게 싫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 정말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 어쩌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사람. 그래, 첫사랑. 분명 있었다 나에게도. 만나는 그 짧고도 긴 시간들 동안, 그 사람은 꿈이 세상 전부인 줄 알았던 나에게 다른 세상이 되어있었다. 아이들을 싫어하던 나였지만 처음으로 그녀와 나를 반반 닮은 아이를 상상하며 행복에 눈물 흘렸다. 그리고 행복으로 눈물 흘리던 나를 바라보며 같이 눈물 흘리던 사람이 나에게도 분명 있었다.


매운 음식을 지독하게 못 먹는 나였는데,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엽떡을 입안에 욱여넣던 때를 떠올린다. 차마 씹을 용기가 없어서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켜버렸는데, 그녀가 놀라서 날 부르던 소리가 아직도 흐릿하고 또렷하게 들려온다. 내가 혀에서 올라오는 통각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다 흩어진다.


너무 사랑하고 어렸던 나는, 현명하게 사랑하지 못했고, 현명하게 이별하지 못했다.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너 꿈 찾아가."

하지만 끝내 나의 남아있는 한 줌의 자존심은, 그녀가 나의 꿈이었다는 마지막 말을 가로막고 그대로 가슴에 그녀를 향한 미련과 함께 순장시켰다.

지금 그때를 공허하게 회상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잔불 같은 사랑인지, 찬란했던 나의 청춘에 대한 그리움인지조차 경계를 찾을 수 없다.


시간은 야속하게, 야속하게 내일로만 내달리고, 나의 무언가는 과거의 그 시간 속 어딘가 에서 수년째 머뭇거리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분명 약이고 그 약효는 망각이라는 작용을 착실히 해냈다. 그녀의 얼굴이 해를 거듭해가며 흐릿해져 간다.


나는 이제 다른 누군가를 그보다 더 나를 불태워가며 사랑할 자신이 없다. 그때의 나보다 나는 더 현명해졌지만, 용기는 잃었다. 그때의 나보다 더 여자를 알지만, 나 자신의 찬란함을 잃어버렸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준비된 시간에 옆에 있던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 사람에게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 뻔뻔하게 거짓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만나,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준비된 시간에 내 옆에 있음에 감사할 수 있을까?


나에게 결혼은 여전히 먼 이야기이다. 성숙한 어른들이나 할 수 있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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