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말야 스무살즘엔 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고
어릴 땐 말야 모든 게 다 간단하다 믿었지
이제 나는 딸기향 해열제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징그러운 일상에 불을 지르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찬란하게 빛나던 내 모습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느 별로
작은 일에도 날 설레게 했던
내 안의 그 무언가는 어느 별에 숨었나?
어릴 때 즐겨 부르던 체리필터의 Happy Day라는 곡이다. 도대체 제목이 왜 Happy Day 인지는 이 글을 쓰는 지금 가사를 다시 한번 읽어보는데도 모르겠다. 예전에 저 곡으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가사에 집중하진 않았다. 그때가 중 3 때(어떻게 조유진의 고음을 올렸는지는 지금도 미지수다)였던 것 같다.
예전에 나와 친했던, 나이 차이가 제법 있던 형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있다.
“너 나이 든다는 게 뭔 줄 아니?”
“글쎄요?”
“너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거야.”
나는 그때 그 말이 정말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는 말처럼 만 들렸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게 대관절 나이 드는 것이랑 무슨 상관인 것인가? 본인이 살면서 실패만 하고 살았으니 스스로가 특별하지 않다고, 자신은 원래 안 되는 거였다고, 그렇게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말을 했던 그 형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너는 아직도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니?’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믿는 것은 힘이 아니라 독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 자식은 특별하다고 믿는 부모가 위험한 것처럼, 내 꿈은 특별하다고, 내 상처는 특별하다고, 내 사랑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랑이었다고. 그렇게 놓지 못하고 그 ‘특별함’에 의미를 계속해서 부여한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고. 그리고 그게 자신을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독하게 갉아먹는 것을 나는 이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독하게 아픈 사랑을 하고 길가에 나오는 노래가 다 내 이야기 같은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 유행가가 내 이야기 같다면, 사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그저 그런 이별 이야기 중 하나인 것을, 참 살을 에는 듯한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우리는 깨닫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 우리가 기억하는 스스로의 찬란함에 눈이 멀어 그것이 마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것인 양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농담이 아니라 내가 진짜 천재인 줄 알았다. 뭘 하든 제법 빨리 배웠으며, 평균보단 조금씩 뭐든 뛰어났다. 공부도, 운동도, 음악도 딱히 누구에게 패배감을 느껴본 적 없이 살면서 ‘나는 특별하다’ 이렇게 느끼곤 했다. 어른들의 칭찬은 익숙했으며, 기대된다는 말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어느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촉망받는 그런 젊은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는 친구들은 나의 특별함에 대해 말했으며 나는 그러는 새, 그 별 것 아닌 ‘특별함’에 중독되어 그 쌓여온 독이 어느 날 나를 떨어뜨릴 때, 그 낙차는 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망가뜨려버렸다.
나는 꿈도, 사랑도 그저 실패한 20대 만을 남긴 채 쓸쓸히 30대를 맞았다. 세상 모든 것이라고 외치던 꿈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나의 특별한 척 함’을 아니꼽게 보던 사람들의 비웃음만이 남았다. 정말 내 세상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랑도 처참히 실패한 채 하루하루 잊혀지는게 두려워 혼자서 꼭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실패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 모든 게 사실 ‘별 것 아닌 흔한 이야기’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었다. 정말, 정말 죽기보다 어려웠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고 나서야 그때 그 형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거야.”
난 철저하게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형의 예언이 들어맞기까지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내 안에 남아있는 조금의 반짝거림마저 부끄러워하며 애써 감추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시간들을 살아갔다.
그 사이 아무렇게나 사람을 만나 연애했다. 특별하지 않은 난데, 누군들 특별할까? 그냥 닥치는 대로 만나고 헤어졌다. 그 사이 꿈이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도 내지 않았다. 그 단어가 가지는 무개가 내 오장육부를 짓누를 거 같았다. 그리고 구걸하듯이 사람들에게 내가 특별하지 않으냐고 묻고 다니곤 했다.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그런데 사실 난, 아직도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믿는다. 아직도 나의 꿈은 특별했다고, 아직도 그녀와 나의 사랑은 특별했다고. 지났지만. 특별하다고. 그리고 아직 나의 어딘가는 반짝인다고. 찬란함은 아직이라고. 그리고 언젠가 더 찬란한 날이 올 수도 있다고. 그렇게 나를 신명 나게 두들겨 패던 나 스스로의 특별함을 아직 나는 놓지 못하고 있다. 그것마저 놓아버리면, 나는 진짜 평범한 회색 빛깔의 아무개가 되어 버릴 것 같아서.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 안의 이 희미한 빛을 발견해 주기를. 염치없이 바라곤 한다.
이제 아까 했던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을 한다.
“나는 내가 아직 특별하다고 믿어”
혹시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리고 이 평범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같이 특별함을 포기하지 말자고. 특별한 걸 비웃는 이 짙은 세상 속에서 스스로의 찬란함의 파편을 꼭 갈무리해서 가지고 있자고 같이.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는 거 크게 별거 없으니까. 그냥 깨지고 박살 나도, 내가 특별하다고 믿는 그 정도는 간직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날 정말 거짓말 같이 딸기향 해열제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이 나타나, 우리의 찬란한 특별함이 빛을 발할 때가 올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