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임신, 출산, 육아 경험기
덴마크에서는 임신 12~13주가 되어야 초음파 검사를 통해 처음으로 아기를 보게 됩니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고 6주에 주치의를 만나기로 예약을 잡았을 땐, 한국에서 하듯 첫 초음파 검사를 할 줄만 알았지요. 시어머니가 함께 가주신다고 해서 입덧으로 뒤집힌 속을 부여잡고 주치의를 만났을 땐 피검사를 포함해 거의 한 시간에 달하는 문진과 상담만 할 수 있었습니다.
문진이 끝난 후엔 노란 봉투에 담긴 임산부 저널을 주는데, 출산 전 어떤 병원 기록이든 기재하도록 되어있는 종이입니다. 대충 이 종이의 빈칸이 없어질 때쯤 되면 출산일이 도래한다고 하는데, 모든 게 전산화되어있는 요즘 임산부 저널이 아직도 남아있는 게 이상하다며 주치의는 자신이 보관해야 하는 종이의 공란을 힘겹게 꽉꽉 채워넣었더랬지요. 기형아 검사를 위한 피검사 할 때도 갖고 가야 했었는데, 막상 갖고 가서도 꺼내는 것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그건 기재 못한 것이 왠지 아쉽습니다.
다운증후군 등 기형아 검사를 위해 12~13주 차에 첫 초음파를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덴마크에서 출산은 종합병원에서 이뤄집니다. 따라서 제가 배정받은 집 근처 종합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시작부터 임산부 저널을 달라고 해서 잊어버릴 수 없었네요. 이 초음파로 얻게 되는 정보가 무엇인지, 기존에 한 혈액검사와 종합해 1차 기형아 검사 결과를 오늘 집에 가기 전 판독해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등 설명을 듣고 바로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참고로 초음파 담당의에게는 제가 외국인인 것을 설명하고, 덴마크어를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줄 것을 요청하고, 모르겠으면 다시 물어보거나 영어로 바꿔서 질문하겠다고 사전에 이야기를 해두었습니다. 의료진이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의학은 대학 과정이 전부 덴마크어로 진행되는 탓에 영어로 말하는 것을 편해하지 않고, 저도 가급적 모든 상황에 덴마크어를 연습해야 나중에도 늘 수 있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혹시라도 빠뜨린 부분은 나중에 남편이 보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죠.
신체검사 등으로 익숙한 차가운 젤의 느낌이 배에 느껴지고 나서 탐촉자가 배에 닿자마자 화면엔 아기의 머리가 바로 나타났습니다. 그냥 신기하고 기쁠 줄만 알았는데, 순간 울컥하더군요. 눈, 코, 입의 위치가 명확히 보였고, 팔, 다리도 그랬으며, 영락 없는 사람의 모양이었습니다. 신체검사로 복부나 갑상선 초음파를 했을 땐, 뭐가 뭔지 모를 종류의 기관들을 의사의 설명만으로 그렇구나 해야 했다면, 이번 초음파로 처음 만난 아기는 완연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6주에 점으로 표시된 아기를 봤다면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미 10cm에 달하는 아기의 모습을 보며 제 안에 정말 사람이 하나 있구나 싶은 그 강렬한 느낌을 말이지요.
모든 검사가 끝나고 나서는 종합 소견으로 저희 아기가 다운증후군 등 문제가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은 저위험군에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안도되던지요. 초음파 담당의에게 괜히 엄청 고마움이 느껴졌습니다. 힘든 소식을 전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요.
나와서도 그 감흥은 가시지 않았고, 남편과 병원 정문을 나서 걸어가는 도중, 저희 둘 다 꽤나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담소를 나눴습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와서 남편을 안고 조금 울었습니다. 안도의 눈물이었죠. 아이가 심장이 뛰지 않는 등 계류유산의 가능성도 있기에 기쁜 마음속 깊이 꼭꼭 숨겨두었던 불안한 마음이 한 번에 터져 나옴과 동시에 해소돼서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그 불안이 제 생각보다 훨씬 컸음을 뒤늦게 느낀 순간이었지요. 제가 만으로 얼마 전 36살이 되었고, 남편과는 7살 차이라 혹시나 싶은 마음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입덧으로 먹어야 하는 영양제 등도 잘 다 챙겨 먹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런저런 불안한 마음이 증폭되었고요.
한국이었으면 훨씬 더 자주 초음파도 볼 수 있었겠지만 (물론 여기도 사설 클리닉에 가면 4차원 초음파 등 원하는 대로 다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이 나라 정부가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면 안 봐도 되겠지라는 믿음으로 버텼습니다. 임신 기간 중 단 세 번의 초음파를 보게 된다는 이야기에 한국에서 임신 7개월인 친구가, 한국은 비싼 초음파를 정말 자주 본다는 이야기에, 뭐가 과연 좋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 번은 사실은 부족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부모의 불안감을 이용한 과잉 진료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튼 다음번 기형아 검사는 20주에 있을 것이고, 그보다 전에는 산파도 만나게 되겠지요. 다음번 초음파 검사에는 성별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자세에 따라서 알려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요. 이름 짓기는 어려운 일이라, 성별을 알고 나면 일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실용적 이유 때문입니다.
한국 출산 경험도 없지만, 그냥 귀동냥으로라도 들어 한국 시스템은 대충 알지만, 덴마크 시스템은 이제야 배우고 있습니다. 해외살이의 힘듦은 어려서부터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배워왔던, 살면서 직면하게 되는 무수한 작은 일들을 아이처럼 새로이 다 배워야 하는 데 있다 생각합니다. 임신과 출산은 안 그래도 생소한 일이기에 남편도 잘 모르고 저도 몰라,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통해 이것저것 배우고, 미리 출산한 주변인을 통해 조금씩 알음알음 배우게 되네요.
제가 그렇듯이 한국에 있는 엄마들도,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하나,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하나 궁금할 거라 생각합니다. 제 좌충우돌 덴마크 임신, 출산, 육아 경험기를 통해 그런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