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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Nov 30. 2021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이겨내는 과정

나를 만나는 시간

나는 혼자 하는 모든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자취를 하면서도 혼자 먹는 밥이 싫어 약속을 만들었고, 쇼핑도, 운동도 친구와 함께이길 원했다. 혼자인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고민해본 적도 없다. 누구나 다들 그렇게 친구를 만나 밥 먹고 쇼핑하고 술 한잔하며 산다고 생각했다. 홀로 있는 시간을 유난히 어려워한다고 느낀 것은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지내다 두 아이가 기관에 들어가고 난 후였다. 아이들이 나간 휑한 집을 치우고 잠깐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그 시간이 너무도 어색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안 해도 될 집안일을 하거나 저녁거리를 산다는 핑계로 장 보러 나갔다 오기도 했다. 적막한 공기에 홀로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시간도 잘 가고 즐거웠지만 혼자 있을 때는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단지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고 그렇게 사람들로 채우려고만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취미라고 부를만한 것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좋아하던 책을 놓은 것도 한참이었고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만한 재주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낸다는 혼자만의 시간이 낯설었다.


 


그러다 남편의 발령으로 타국 생활을 갑작스럽게 시작하게되었다. 지인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들은 낯선 친구와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고 남편은 과도한 업무에 책임감까지 얹어져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이 모든 환경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아야 했다. 한국인이 적은 시골 동네였기 때문에 몇 안 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내가 잘못 이야기하면 남편이 회사에서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에 어떤 말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전화해 넋두리도 했었지만, 상황과 환경이 다른 부분을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다 보면 내 힘든 감정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김이 새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점점 사람에 기대어 해결하기보다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렇게 3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생각지 못하게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다시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이 시작되었다. 처음 그때처럼 혼자 밥 먹고 혼자 커피 마시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예전보다 어색하거나 불편함이 덜 했다. 멍하니 TV만 보지 않아도 되고 SNS에 일상 기록도 하면서 꼭 누군가가 옆에 있지 않아도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름의 경험치가 쌓인 것일까?


 


혼자 앉아 있으면 괜히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 시선을 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카페를 가더라도 핸드폰만 보다 돌아왔는데 언제부턴가 무겁더라도 컴퓨터를 챙겨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혼자 잔잔히 빗소리를 듣기도 하고 늘 가던 마트가 아닌 조금 떨어진 시장까지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기도 한다. 주말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우면서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아침에는 혼자 바닷가까지 걷고 오기도 한다. 마음 맞는 사람이 생겨 많은 시간을 그 사람들과 보내더라도 가끔은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타국 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뭐예요?”라고 물을 때마다 대답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 한참을 떠올려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이지만 이렇게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내가 나를 조금 더 잘 알아가게 되고 대답도 조금씩 쉬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카페, 좋아하는 날씨를 스스로 만끽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좋지만 더는 나의 외로움을 다른 사람을 통해 채우지 않게 되었다.


 


이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가 자발적으로 나를 만나는 시간,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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