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신년 인사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남편이 있는 중국으로 왔다. 3월부터 우리가 살아야 할 집을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겨우 1시간 20분 걸렸을 뿐인데 축축한 공기, 낯선 냄새,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있는 다른 세상에 도착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라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집부터 보러 다녔다. 몇 군데 집을 보고 나니 이미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들린다는 현지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중국은 과일이 저렴하고 정말 맛있어. 생과일 주스도 얼마나 맛있는지 내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더라!"
배도 부르고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별로 안 먹고 싶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아이들과 나에게 그 생과일 주스를 꼭 맛보게 하고 싶다는 표정이다.
낯선 도시에 의지할 곳은 남편뿐, 군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데려간 곳은 마트 2층 푸드 코트에 위치한 가게였다. 그곳이 마트였는지 백화점이었는지 기억도 없었던 곳을 이사 오고 나서야 그곳이 푸드 코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걸 먹자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왔다니;;;) 남편은 망고 주스가 맛있다며 기다리라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10분은 지난 것 같은데 남편은 계산대에 그대로다. 아이들도 추운 날씨에 여기저기 집 보러 다니느라 피곤했는지 주스는 언제 먹을 수 있냐고 보채기 시작했다. 기다리다 못해 남편에게 가봤더니 망고 주스를 달라고 했는데 점원은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서 주문을 못했다고 한다.
아차, 남편도 중국 생활 겨우 한 달 차... 나보다 조금 나을 뿐,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나도 옆에 서서 번역기를 동원해보고 손짓, 발짓, 영어 다 해봐도 직원은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한다. "찌아 리, 찌아 슈웨이?" 무슨 말인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의 모든 중국 사람들이 우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전부 쳐다보고 있으니 한 명은 날 도와줄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젊은 커플에게 "Excuse me"하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날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야?' 눈앞이 깜깜해졌다. 앞으로의 내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남편의 손을 끌며 그냥 가자고 해도 남편도 오기가 생겼는지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한다.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 곁으로 돌아와 앉았다. 올해 겨우 여섯 살, 일곱 살인 연년생 남매. 겁 많고 걱정 많은 엄마 때문에 아이들도 덩달아 긴장한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아이들을 챙기며 문득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시켰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편이 제법 완벽한 문장으로 피자와 콜라를 주문했지만 점원이 "뭐?"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고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다시 말해도 같은 상황, 내가 문법이고 발음이고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one coke, one pizza"라고 짧게 이야기하자 그때서야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설명도 없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이방인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가는 찰나, 남편이 드디어 망고 주스를 들고 나타났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던 아이들도 시원하고 달콤한 망고 주스를 마시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빠, 진짜 맛있어!!”라는 말에 남편이 진땀 나게 주문했던 고생이 잊히는 듯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기를 "찌아리 加 梨,찌아 슈웨이 加 水?"라는 말은 “배를 추가할까? 물을 추가할까?”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배와 물을 보여주기만 했어도 좀 더 이해가 빨랐을 텐데 허탈하기만 했다. 남편도 나도 니하오, 씨에씨에 정도만 알고 왔으니 저런 말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앞으로 나는 이런 시선을 얼마나 많이 마주하게 될까? 이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중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겪은 어려움은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와 중국어를 배워야 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때의 남편은 걱정 많은 아내에게 중국의 좋은 점을 보여주며 조금이나마 걱정을 떨쳐버렸으면 하는 마음에 멋지게 주스를 사러 갔으리라. 주스 한잔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혼자 시장은 갈 수 있을까 싶었던 막막했던 마음은 몸으로 부딪히며 이겨냈다. 중국 생활 4년 차, 이제는 커피 샷 추가도 할 줄 아는 내공이 생겼으니 말이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주문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결국 마시게 되었던 달고 시원한 망고 주스처럼 살아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달콤하고 시원한 일들도 종종 펼쳐진다. 쓰기만 할 줄 알았던 중국, 오늘은 어떤 달콤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