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샤워하고 마지막 머리 헹굼을 하는데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았다. “뭐야~물이 왜 안 나와?” 이런 경험이 없었던 터라 당황스럽기만 했다. 물을 틀었다 잠갔다 의미 없는 행동만 반복하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대충 수건으로 머리를 감아올렸다. 주방으로 들어가 생수를 들고 다시 욕실로 들어가 머리에 물을 부어가며 마무리까지 하고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단수인가?’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같은 아파트 사는 분께 물어보라며 연락을 하고 기다렸다. 읽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태라 혹시나 아파트 공지를 놓쳤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단수의 경험을 떠올려봤다. 어린 시절 단수 공지가 미리 내려지면 엄마는 전날 욕조 가득 물을 받아두고 큰 양동이에는 주방에서 사용할 물을 받아두셨다. 갑자기 아파트에 단수가 되면 맞은편 동 친한 지인 집에서 긴 호수를 연결해 급하게 물을 사용했던 기억도 난다. 종종 갑자기 단수가 되긴 했어도 대부분은 공지가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고 없는 단수는 사고가 아닌 이상 없었고 보통은 며칠 전부터 알림이 있어 대비가 가능했다. 말도 없이 물을 끊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투덜거리고 있을 때 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확인해보니 단수 예정은 없고 수도 요금을 내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고 전해주었다.
아차! 중국 생활 한 달 차, 생각해보니 한 달 동안 공과금을 처리한 기억이 없다. 이삿짐 정리에 아이들 학교 적응에 바빠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당장 오늘 저녁 준비부터 화장실, 세탁기 등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인데 근무 중인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다. 고민하다 오가며 인사하던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 분께 연락하기로 했다.
월말마다 고지서가 날아오면 결제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아파트마다 다르기는 하지만)그때만 해도 가스 요금, 전기 요금, 수도 요금, 관리비 모두 제각각 처리해야 하고 가스는 회사로 직접 가서, 전기는 인터넷으로, 수도와 관리비는 관리실에서 지불해야 하는데 모두 선불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전기 요금을 중국 돈 100원(한화 약 17000원)을 결제해두면 그 금액을 모두 소진하면 전기 공급이 끊기는 방식이다. 선불시스템이자 충전 시스템 개념인 셈. 머리 감다 물이 끊긴 것도 이사 오는 첫 달에 결제해둔 금액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이다. 오 마이 갓! 선불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선 가장 급한 물 충전을 위해 관리실에 갔더니 카드나 핸드폰 연동된 페이 결제는 불가능 하고 현금만 가능하다고 한다. 중국은 핸드폰으로 결제하는 페이 시스템이 일반화 되어 있어서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 결국 현금이 없어 집에 갔다가 다시 방문했다.
관리실에서는 번역기를 사용해도 그들이 하는 말은 직역으로 번역이 되어 이상한 말로 해석이 되었고 점차 내 머리도 멍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지 결국 나와 함께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하더라. 관리소 직원과 집 앞에 도착하니 우리 집 현관 밖에 물방水房이라 불리는 수도 검침하는 곳을 열어 카드를 대고 충전한 금액을 인식 시키더라. 교통 카드를 충전하고 카드에 다시 올려서 금액을 확인하는 방식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생각지도 못한 수도 충전 방법에 그날 하루에만“아~~~~”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루는 전기가 끊겨 충전하는 법을 배우느라 한 시간 넘게 낑낑거렸고 이유 없이 정전이 되어 깜깜한 밤에 핸드폰 손전등으로 한참을 보냈던 적도 있었다. 그 후로는 보조배터리는 항상 가득 충전해서 준비해두고 손전등도 가까운 곳에 두게 되었다. 살기 위해 업그레이드 된 철저함이랄까...
신경 쓰지 않아도 날짜 맞춰 날아오던 고지서와 명세서, 일일이 뜯어보기도 귀찮았던 일이 지금에서야 얼마나 편한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자동으로 통장에서 쭉쭉 빠져나가 통장 잔고는 줄어들었지만 물이 끊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면 한번쯤은 겪었던 일이더라. 샤워하다 물이 끊겨 생수로 거품을 대충 헹구고 나갔던 일, 설거지하다가 멈추고 물 충전 하러 나갔던 일, 전기가 끊겨 냉장고 안의 음식이 녹을까봐 걱정했던 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순간 온수기(뜨거운 물을 일시적으로 데워주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씻는 것도 쉽지 않았던 일... 그때는 황당하지만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하게 된다. 새로 오면 정신이 없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라며 괜찮다는 위로까지 더해서.
같은 도시, 바로 옆 아파트에서조차 시스템이 달라 왜 이렇게 일처리를 어렵게 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집세를 내는 개념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공과금 시스템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불편한 것도 사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게 생활하고 있으니 내 방식을 맞추는 수밖에 없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 전산화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 아파트는 여전히 카드 충전 방식이지만... 차차 전산화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함께 이번 월말에도 나는 수도 카드를 들고 관리실로 가야한다. 물 걱정 없이 머리 감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