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와의 인터뷰-미술창작과 미술교육 간의 관계 (4)
H는 내가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예술가이며, 현재 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선생님이시다. 많은 양의 시간과 노동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창작을 해왔으며, 예술에 대한 존재론 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주로 재작 한다. H에게 예술가로서 창작을 하는 것과 미술교육을 병행하는 일은 삶의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는 스스로 예술가 기질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사유를 돈이나 조직을 위해 포기하거나 희생시킬 수 없었다. 또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교육'이라는 용어와 교육하는 환경이 익숙했다.
H에게 미술교육은 창작을 지속하기 위한 경제적 장치인 동시에, 창작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기 위한 사회적 위치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나 H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교육을 단순한 창작을 위한 수단 정도로만 여길 수 없었다. 미술교육이 나와 타인에게 그리고 창작에 갖는 의미를 찾지 않는다면, 모두를 위하여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H의 교육의 목표는 개인의 잠재된 예술적 에너지를 발견하고 발현시키는 것이다. 기술의 습득은 이 에너지가 충분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예술적 에너지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해 나갈 때, 교육자로서의 자신과 학생 모두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경험을 하였으며, 이에 보람을 느낀다.
미술교육자로서 H와 유사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창작자이자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자율성이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점에서 H는 대학 미술교육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한다. 미술대학은 미술전문가를 양성하고자 하는 곳이기에, 현재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창작자로서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미술창작과 교육의 시너지가 가장 잘 발생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창작자로서 개인의 고민과 관심사를 교육에 녹여낼 수 있기 때문이다. H의 경우에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접근방식과 태도가 학생들을 교육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데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점에서 그에게 가르치는 일은 창작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처럼 자신의 관심사와 태도가 교육에 그대로 적용될 때, 창작자로서의 관심사가 학생들에게 필요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의미 있게 수업을 진행해 갈 수 있을 것이다. H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는 학생들에게도 본인이 가르치는 내용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설명해준다. 그래야 다소 버거울지라도 학생들이 열심히 따라오기 때문이다.
H의 말대로 미술대학교육의 목표는 미술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 H는 학생들이 "나"의 문제를 보편화시키고 현대미술의 좌표에 위치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고 이것이 세상과 어떻게 의미 관계를 형성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미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다. 각자가 자신이 잘하는 것 혹은 자신의 일과 사회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야 의미 있는 개인으로서 사회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H의 말대로 대학은 창작자이자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서로에게 생산적인 방향으로 잘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는 대학 또한 조직사회임을 상기시켜주었다.
H에게 미술창작과 교육 간의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 시간 분배를 하고 계획을 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강의가 많은 학기 중에도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다 느낀 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조직 내의 소모적 관행과 인간관계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 순간들을 경험했다. 이런 어려움들에 대해 H는 대학에서 교육을 하며 본인이 받는 여러 종류의 보상에 따르는 마땅한 책임이라고 받아들인다. 미술창작과 교육 이 둘을 잘 병행하려면,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식의 낭만적 순진함을 가장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H의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예술가도 제도화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개인이다. 사회의 제도가 모든 개인의 마음에 들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가 특정 제도권 내에서 받는 유익에는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을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오늘날의 미술계에서는 미술교육을 병행하는 작가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대학은 예술가의 무덤이다.', ' 미술교육일을 병행하는 예술가는 B급이고, 전업작가로서 활동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가이다'라는 식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왜 이런 얘기들이 나왔는지 이해는 간다. 창작에 투자하고 몰두해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의 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창작 말고 다른 일에 시선을 분산시키면 그만큼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자기하기 나름이다. 모든 전업작가들의 작품이 다 좋은가? 미술교육일을 병행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전업작가의 것보다 덜 좋은 작품인가? 작가란 꼭 어떠해야 한다라고 누가 규정지을 수 있을까?
각자의 성향에 맞는 삶의 방식과 형태가 있다. 미술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H에게 창작은 삶을 살아가는 도구 중의 하나이다. 그는 '작가는 이래야 한다' 혹은 '대단한 작가가 돼야 한다'라는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창작시 불필요한 힘이 빠져서 작품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나에게 창작은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도구이다. 나란 사람의 위로 무언가를 만들어 쌓아 올린다기보다는 나를 이루고 있는 뿌리를 파 해쳐 가는 과정이다. 또한 보편적, 상식적 세계의 너머를 탐구하고 경험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창작자로서 스스로의 사고에 갇히지 않고 계속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지점을 발견해 나가고자 한다. 창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H와 내가 크게 공감한 부분은 창작 현장의 열기와 생기를 그대로 수업으로 가져갔을 때, 창작자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교육적 성과가 크다는 점이다.
그럼 반대로 미술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창작을 하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어떠할까? H는 가르치는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술교육자가 창작을 왕성히 하는 예술가일 때 교욱에 있어 더 시너지가 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특정 미술교육자가 당장 작업을 잘 못하고 있다고 해서 나쁘다 혹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H에게는 개인이 갖는 진실성이 중요하다. 한 개인이 어떤 에너지를 갖고 창작 혹은 교육을 하고 있는가? 내 경험상으론, 미술 창작을 하지 않는 미술교육자가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은 더 제한적이다. 주로 기능적인 부분이나 이론 설명에 그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창작에 대한 끊임없는 심도 있는 고민을 던지고 현대의 미술의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세워가려 하는 사람이 경험하는 미술과는 그 폭이 너무나도 다르다. 미술전문가를 양성하려 한다면, 교육자 본인이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창작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각각의 학생들과 그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도 많아질 것이다.
창작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는 입장에서 H와의 인터뷰는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으며, 스스로의 고민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H에게 미술창작과 교육은 자신이 믿는 가치와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능적으로는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그는 두 영역에 쓰는 에너지의 종류가 너무 달라서 호환될 수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모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례로 그는 수업을 하고 작업실에 들어오면, 작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고 만들어 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또한 개인차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 전환이 매우 빠른 편이다. 창작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따라 H와 같이 모드를 전환하는 별도의 시간의 필요한 경우도 있고, 나와 같이 바로 창작 행위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미술의 창작과 교육을 병행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영역이 통합되어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통합이라 함은 같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유성은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 하나의 덩어리로 꿰어짐을 의미한다. 마치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두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가면서, 더욱 거대하고 견고한 구조를 가진 사물의 동력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처럼 두 영역의 통합이 갖는 시너지를 통해, 예술가이자 교사로서의 성취들이 점점 더 실한 결실로 성숙되어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