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대하는 사람들이여! 친절하여라!

by 키고마

시작은 그냥 넷플릭스 드라마였다. <은중과 상연>이라는 제목의 여성 취향 드라마.

두 명의 여성이 학창 시절부터 성인기까지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진 인연 속에서 겪는 갈등과 우정, 질투와 성장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오랜 기간 이어진 애증의 관계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설정은 죽음을 앞둔 친구의 안락사 여정을 한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다른 한 친구가 함께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중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15편 내내 죽음에 대한 성찰보다는 지나온 삶의 여정 속에 지뢰처럼 꼭꼭 숨겨 놓았던 상처들, 짝사랑 오빠의 이른 죽음, 삼각관계 등을 다룬다. 김고은과 박지현이라는 주목받는 여성 배우들이 연기한다는 점 또한 두드러진다. 드라마를 다 본 후 친구에 관해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회사 사무실 대각선 맞은편에는 문학작품이나 예술 영화에 안목이 있는 선배가 있는데 주말에 보았던 좋은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룸 넥스트 도어(2024)’라는 영화다. 아 그런데 이 영화의 중요한 설정 역시 한 작가가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의 안락사 선택을 존중하며 그 곁을 지킨다는 내용이었고, 무려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가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역시 넷플릭스에서 쉽게 선택해 볼 수 있었다. 이제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는 영화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연기이고 미술이고 미장센인 거 같다. 영화가 다루고 전하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배우들이 압도해 버린다.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그려 넣은 아름다운 색의 향연에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라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색채를 더해 영화를 그린 듯했다. 주인공이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는 전반적으로 냉소적이었는데 삶을 대하는 자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했다. 줄리안 무어는 나이 들수록 우아해지는 마법을 어떻게 부리고 있는 거지? 감독이 얘기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나이 든 여성도 충분히 지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가?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매력을 가져야 한다는 건가? 가질 수 있다는 건가? 철없던 한 때는 남편이 있었고 이후로도 수많은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인 사람. 딸이 있긴 하지만 온전한 소통이 어려운 이제는 오롯이 혼자가 돼 늙어가고 있고 병들어버린 인간이지만 이런 아름다운 마무리 정도라면 영화에 담을 만하다는 건가? 영화를 다 본 후 밀려오는 이 공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행히 이 영화에는 원작 소설이 있었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 소설 ‘어떻게 지내요’. 자연스럽게 소설책을 읽게 됐다. 소설은 안락사에 함께 해달라는 친구의 요청을 놓고 갈등하는 가운데 기후 위기, 환경, 전쟁, 범죄, 양극화 등에 대한 작가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구성돼 있다. 작가는 자의식 과잉의 남성 지식인들이 뱉어 놓는 인류와 문명에 대한 건조한 비판에 대한 은밀한 조롱, 따뜻한 보살핌과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지성을 전한다. 나약한 생명일수록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은 여성 지식인들이 서로를 향해 속삭이는 말들은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어떻게 지내요.’는 시몬 베유의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말은 원어인 프랑스어로는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이고, 이웃에 대한 관심은 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일이라고 한다.


“...금빛 시간, 마법의 시간, 뢰르 블뢰. 변화하는 하늘의 아름다움을 보며 우리 둘 다 가만히 몽롱함에 잠기는 저녁 시간, 비스듬히 떨어지는 해의 빛이 잔디를 가로질러 올려놓은 우리 발에 닿는가 싶더니, 느리고 긴 축복처럼 우리 몸을 타고 올라오면, 만사가 아무 문제없다고 당장이라도 믿을 수 있을 심정이었다.

달을 보라. 별을 세어보라. 거기 당신은 없는 모든 시간이. 그리고 영원히 존재할, 세상이 한없이. (조이스.) 한없이 풍요롭고 한없이 아름다운. 다 괜찮을 거야.”


종말을 대하는 사람들이여! 친절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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