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이 가진 고유한 색과 빛, 바람, 향기를 떠올려보면 그 계절은 다름 아닌 젊음의 모습일 거라고 말해준다. 이글거리는 태양 빛, 폭풍처럼 밀려오는 파도가 있는 가 하면 초록이 일렁이는 바람과 그 바람에 묻혀 날아드는 여름의 향기가 있다. 때로는 청춘의 피처럼 끓어오르는 형질일 수도 또는 언제 터질지 모를 화산 같은 열정이 숨 쉬고 있을 수도 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여러 편 감상하면서 남프랑스의 여름 한가운데를 거니는 상상을 해보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맨다.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말을 토해 내는 일상의 모습들은 대체로 영화 같지 않은 영화들이었다. 프랑스 누벨바그 세대의 대표주자인 에릭 로메르 감독은 국내에는 홍상수 감독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에릭 로메르는 사회적 지위가 상승된 중산층 브르주아 집안으로 모계로는 농부이며, 부계로는 장인인 시작점은 양쪽 모두 하층 계급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40대 중반에 장남인 그를 얻었고 신체적으로 허약하고 근심이 많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의 영화는 일상의 미세한 감정 변화나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내용으로 사람들 간의 대화나 내적 독백이 많은 편이다. 특정 주제를 갖고 연작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냈는데, 네 편의 도덕 이야기, 여섯 편의 희극과 격언, 사계 시리즈 등이 있다. 내성적이면서 보수적인 개인주의자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20~30대에 보았다면 아마 다소 비판적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나마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은 2025년 늦여름에 만난 게 다행이었고 행운이었다.
1. 해변의 폴린 (1983)
얼마 전 이혼한 마리온이 사촌동생 폴린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휴가차 여름 해변을 찾아오는데서 영화가 시작된다. 마리온은 해변에서 우연히 옛 남자 친구 피에르를 만나게 되는데 이 피에르의 지인인 중년의 호색한 앙리 교수에게 묘하게 끌리게 된다. 10대인 폴린의 눈에 비친 성인들의 사랑은 미성숙하고 유치한 모습인데, 어른들은 폴린을 걱정하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이어간다.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허세와 거짓말, 소유욕과 질투, 욕망이 드러나는 가운데 폴린은 사랑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폴린을 연기한 아망다 랑글레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도 자연스러운 연기가 영화에 매력을 더한다. 남프랑스 여름의 초록빛이 바람에 넘실대는 가운데 파랑과 빨강, 흰색의 색조가 영화를 지배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폴린의 침실에는 앙리 마티스의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이 걸려 있고 완벽하지만 지루한 아름다움의 표상 마리온의 여름 의상은 80년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행을 뛰어넘는 세련된 멋이 있었다.
2. 여름 이야기 (1996)
‘해변의 폴린’에서 폴린 역을 맡았던 배우 아망다 랑글레가 성인이 돼 여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니 괜히 흐뭇한 기분이 든다. 여름 해변을 혼자 찾아온 가스파르의 목적은 단 하나! 좋아하던 여자 친구 레나를 우연히 만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다리는 레나는 오지 않고 대신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거기서 일하던 마고를 알게 된다. 가스파르와 마고는 며칠간 해변 주변을 함께 거닐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자신들의 일과 미래,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둘 사이에 감정이 싹트지만 알아차리지 못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각자 이성 친구가 있는 다소 복잡한 처지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 마고의 친구 솔렌느가 노골적으로 가스파르에게 접근하고 가스파르는 솔렌느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던 차에 오매불망 기다리던 레나까지 도착하면서 뭔가 복잡해진다. 삼각관계도 아니고 거의 사각관계나 다름없다. 여름 해변에서는 왜 이렇게 사랑이 복잡해지는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청년기의 여름 한 시절이라서 그런 건가? 세 명의 여성과 서로 다른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가스파르는 모호하고 수줍은 태도로 일관하다가 결국 헛다리를 짚고 떠나 버린다. 여름의 기쁨과 슬픔은 뱃사람의 노래 선율과 함께 리듬처럼 반복된다.
3. 녹색 광선 (1986)
프랑스인에게 여름 바캉스의 의미가 이토록 중요한 걸까? 한 해의 한가운데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일상을 떠나 지내는 휴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알아 채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의 바캉스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휴가를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우주 속 미아가 된 듯하다... 친구들과도 겉도는 것 같고 남자 친구도 없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제목 <녹색 광선>은 쥘 베른의 동명소설에서 차용했으며, 영화 중에도 언급이 된다. 녹색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타로점 얘기를 듣고 난 후부터 주인공 눈에는 여기저기 유독 녹색이 들어오는데, 여행길 중에 우연히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나누는 얘기를 듣게 된다. 맑은 날 해가 수평선 너머로 넘어갈 때 빛이 굴절되어 간혹 녹색 광선을 볼 수 있는데 이때 그 빛을 보는 순간 타인의 진심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름 바캉스를 망쳤다는 심정으로 기차역에서 파리행 기차를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고 둘 사이에 묘한 감정이 흐른다.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 여주인공 델핀은 남자와 동행한다. 바닷가에 앉아서 석양을 바라보는 두 사람... 이윽고 해가 사라지는 순간, 녹색 광선이 희미하게 보이다 곧 사라진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그 짧은 순간 델핀은 상대의 진심을 알아차렸을까?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을까?
4.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1987)
“내 친구의 친구도 내 친구다.” 파리 외곽 계획 신도시에서 벌어지는 애인 바꿔치기 소동. 신도시 중심에 자리 잡은 몰에서 주인공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마주치는 상황이 좀 우스꽝스럽다. 일터와 아파트가 효율적으로 배치돼 있는 모습이나 직장인과 학생이 점심시간을 활용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일상도 꽤 현대적인 것들로 보여진다. 이 도시적인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그 관계에서 피어난 우정과 사랑의 경계가 느슨하게 펼쳐진다. 주인공들의 마음이 사랑과 우정 사이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그 한켠에서는 도덕적 딜레마를 안고 갈등에 빠진다.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와 어떻게 잘 헤어질 것인가? 또는 어떻게 잘 만날 것인가? 왜 남의 것은 내 것보다 더 매혹적일까? 사랑은 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5.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1987)
르누아르 그림에서 막 튕겨져 나온 듯한 여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장면 하나하나가 그대로 그림 같은 영화다. 특히 첫 번째 장인 ‘파란 시간’이 그렇다. 파리에 사는 미라벨이 시골 소녀 레네트와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해 시골 자연의 경이에 푹 빠져드는 내용이다. 레네트는 미라벨에게 파란 시간에 대해 알려준다. 동이 트기 직전 1분간 밤새들이 잠들고 아직 낮새들은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의 시간... 바로 파란 시간이다. 레네트는 그 블루 아워를 이제 막 친구가 된 미라벨과 함께 하고자 한다. 시골 풍경을 바라보고 배경을 가득 메우는 자연의 소리를 집중해 들어볼 수 있는 마법의 시간들이 흘러간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다 함께 집중해 블루 아워를 경험해 보고자 한다. 이 얼마나 마법 같은 일인가! 무소유에 가까운 소박한 시골살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림처럼 보여진다. 주인공인 레네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레네트가 미라벨을 따라 파리로 거처를 옮기면서 시작된다. 도시에서 경험하는 편견과 비윤리, 도덕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1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서 같은 영화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시골과 도시가 대비되기도 하고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경쾌한 방식으로 가볍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는 에릭 로메르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6. 수집가 (1967)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 연작 중 4번째 작품이자 에릭 로메르의 첫 컬러 영화라고 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여름 풍경이 자연광속에 펼쳐지는데 조용한 휴가를 즐기고 있는 두 남자 앞에 “천사의 얼굴과 눈부신 혈색, 그리고 풋풋한 태도를 겸비한 평판이 나쁜”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 두 남자 중 한 명은 그녀와 자고, 나머지 한 명은 거리를 둔다. 자기만족에 취해 여성에 대한 혐오적 태도를 드러내기도 하고 그녀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비난한다. 그녀를 경멸하지만 그녀의 매력에 끌리는 것을 피할 수도 없었다. 시골 풍경과 여름의 시간들이 시각적 아름다움을 증폭시킨다. 급기야 그는 여자를 유혹하고 싶어 하는 늙은 골동품 수집가의 집에 그녀만 내버려 두고 떠나온다. 그리곤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다가 수집가의 집으로 되돌아간다. 밤 사이 아무 일도 없었던 그 집에서 그녀는 귀한 골동품 화병을 보란 듯이 깨뜨린다. 에릭 로메르 영화 중 비교적 퇴폐적인 편에 속하는 데, 냉소적인 분위기도 흐른다. “난 말이야,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친구 집에서 사는 게 더 명예로운 일 같아.” 생각해 볼수록 이런 농담이야말로 가장 에릭 로메르 다운 멘트가 아닌 가 싶다.
에릭 로메르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싶다면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에릭 로메르 은밀한 개인주의자>를 권한다.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내용이라 읽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역자는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로메르는 정치적으로 모두가 좌파이던 시절 당대의 분위기와 거리를 두고 모든 종류의 정치적 참여를 거부했던, 보수적이고 가톨릭 왕정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정당에도 가입한 적이 없지만, 환경보호 운동에는 그 누구보다 먼저 적극 참여했고 평생 그 생각을 유지했다. 그는 반동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얘기에는 개의치 않았지만, 연출에 대한 비평에 더욱 민감하게 여기고 훨씬 더 견딜 수 없어했다...”
생각해 보니 그를 동시대 같은 나라에서 만나는 일은 약간의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성적 세계를 섬세하게 표현해 낸 그의 영화적 접근과 변화는 놀랍고 아름다운 일임에 분명하다. 사회구조적 문제보다는 개인의 문제, 일상의 문제에 좀 더 집중하는 요즘 시대 분위기도 그를 옹호한다. 일상의 대화에 흐르는 세밀한 감정에 집중해 보는 시간은 힐링이 돼 주기도 한다. 그의 영화 속 여름이 아름다움과 경이 그 자체인 자연으로 우리를 안내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