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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호 Apr 23. 2018

처음처럼

글쓰고 싶은 당신에게

나는 글을 언제부터 썼는지 기억에 없다.
그러나 중학생 때 노트에 시를 썼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쯤 부터가 아닌가 한다.
꽤 오랜 시간이라면 오랜 시간이라 할 것이다....
그 오랜 시간을 어떤 목적으로 글을 쓴 적은 없다.
예를 들면 등단이나 책을 쓰는 것들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누구에게 보여 줄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쓴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글쓰기는 나에게 일종의 치유를 해 주는 역할이었다.
기쁠 때는 기쁜 마음을, 슬플 때는 슬픈 마음을 적었다.
한 참 후에 안 일이지만 글쓰기가 훌륭한 치유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학문적으로도 밝혀진 일이다.
그런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써야 하거나 주제나 기간이 정해질 때이다. 
때로는 책으로 묶어야 할 때도 그렇다.
그러나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듯 그래야 할 때가 있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로 글을 써야 할 필요가 많아졌다.
최근 석 달 동안 꼬박 글 쓰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덕분에 원고 매수는 늘어났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나에게 글쓰기를 정의하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시간.’
내가 여러 가지 조건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직 직업적인 작가가 아니거나
 프로정신이 투철하지 못해서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내가 작가가 되거나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써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직은 나를 가장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글쓰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글이 누구를 행복하게 해 주는 대상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당연히 그 글을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행복하지 않는데 누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물론 모든 일이 반드시 자기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글쓰기의 우선순위는 나다.
내 글이 아무리 별 볼일 없더라도 내가 행복하다면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시를 쓸 때가 그랬다.
그 당시의 글들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십 년 전의 글을 보아도 누구에게 보여주기 민망할 만큼 엉성한 글인데 그 때의 글은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그 때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한 편의 시를 써 놓고 읽고 또 읽곤 했었다.
어쩌면 노벨 문학상을 탈 것도 같다는 망상에 젖기도 했었다.
나는 그것이 ‘글을 쓰는 초심’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순수함과 진정성을 담아 낼 때 좋은 글이 된다고 믿는다.
글에 쫓긴 시간들을 뒤로 하고 나는 그 초심을 다시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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