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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호 Apr 24. 2018

가깝고 작은

글쓰고 싶은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문제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이미 머릿속에는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
그 무엇을 써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마치 눈감고 코끼리 만지기와 같다.
너무 덩치가 크면 무엇을 만지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럴 때는 작은 것만 생각해야 한다.
코끼리의 코를 만졌으면 코만 생각하고 다리를 만졌으면 다리만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에 대하여 쓰라는 과제가 주어졌다고 하자.
자신의 전체 모습을 보려면 죽기 직전에야 가능하다.
아니면 철학 수업을 듣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밤새 고민을 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먼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작은 부분을 골라보자.
신체의 일부분도 좋고, 입고 있는 옷이나 신발도 좋다.
손을 보면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손을 다친 경험이나 그 사람과 처음 손을 잡았을 때의 기억 같은 것이다.
그래도 생각이 나지 않거든 손가락으로 범위를 좁히면 된다.
손가락이 못 생겼다든지, 왜 손가락이 다섯 개인지 궁금하다든지 하는 것도 있다.
그것마저도 아니라면 손톱을 생각해 보자. 손톱을 깨무는 버릇이나 메니큐어를 칠 해 본 경험에 대해 써 보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왜 없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경험과 생각을 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신체는 물론이거니와 살고 있는 집이나 주변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연결고리를 더듬어 가는 것이다.
그 어떤 작가도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아니, 그릴 수가 없는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을 보면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작은 장소, 작은 기억, 간단한 대화 등등.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이 사건과 기억의 연결고리를 타고 점점 넓혀졌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작은 점으로 모이는 것이다.
내 방안에 있는 사물들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고 해 보자
 책상, 의자, 옷장, 전등, 노트북, 책 등등 엄청난 기억의 창고들이 있다.
이것만 가지고도 몇 년을 써야 할 소재가 될 수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는 휴대폰이 있다.
이 휴대폰에 연결 되어 있는 이야기들만 해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내가 제일 처음 휴대폰을 샀을 때나, 그동안 휴대폰을 몇 번이나 바꾸었는지에 대한 기억들. 왜 나는 이 휴대폰을 골랐는지, 내 요금제는 어떻게 되는지.
휴대폰 배경화면은 무엇이며 주소록에는 몇 사람이나 있는지.
휴대폰을 분실한 경험이나 찾아 준 경험도 있을 것이다.
뭐 이런 시시콜콜한 것이 이야기가 될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원래 이야기는 시시콜콜한게 재밌다. 모든 소설과 수필을 보라. 대부분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다. 단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말이다. 실제로 서점에 가보면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에 관해 적어 좋은 책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설마 당신이 노벨 문학상을 탈 야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런 사람은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담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의 글을 읽어보면 그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을 소재로 삼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우리는 어차피 지구 위에서 공통의 것을 누리고 사니까 말이다. 같은 것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같은 소재로 열 명이 쓰면 열 가지 이야기, 백 명이 쓰면 백 가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에 대해 쓰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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