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일호 Apr 25. 2018

끄적거리기

글쓰고 싶은 당신에게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펜으로 쓴다.
글은 어디에 쓰는가....
종이에 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쓰기 편한 것으로 편한 곳에 쓰는 것이다.
나는 거의 대부분을 컴퓨터에 쓴다.
그렇다고 항상 컴퓨터가 내 옆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는 간단하게 메모를 한다. 메모를 하는 곳은 휴대폰, 노트, 연습장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정말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전혀 그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쓴 글보다 잊어버린 글들이 더 많은지 모르겠다.
그런 수많은 아쉬움의 기억들이 어디든 메모를 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믿지 말아야 한다.
나도 처음부터 컴퓨터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간 80년대에야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개인 컴퓨터를 가지게 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고 난 이후다.
그렇게 보면 컴퓨터를 사용한 것 보다 필기구를 사용한 기간이 훨씬 길다.
내가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 것은 보관의 어려움 때문이다.
노트에 적어 놓고 보니 노트를 잃어버리면 그 소중한 글들도 함께 없어져 버렸다. 내가 쓴 글들이 사라져 버렸을 때의 허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글 자체보다는 그 글속에 담겨 있었던 내 지나간 시간들이 아쉬운 것이다.
이후에 글을 적는 것에서 벗어나 정돈 된 형태로 편집을 해서 책을 만드는 과정을 겪다보니 이제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필기구의 향수는 여전하다.
동아나 문화 같은 상품명의 연필을 사용한 초등학교 시절이 있었다.
그 후로 파이롯트 만년필을 쓰고 모나미볼펜으로 글을 썼었다.
볼펜 뒤에다 펜촉을 꽂아 파이로트 상표가 붙은 병속의 파란 잉크를 찍어 쓰던 때도 있었다.
샤프가 나오고 파카 만년필이 유행하던 때도 있었다.
최근에는 젤리롤 펜을 즐겨 썼었다.
종이도 마찬가지다.
갱지라고 불리던 노란 시험지에서부터 줄이 가지런한 공책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쓴 글들과 함께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여전히 펜과 원고지를 사용하고 있다.
외국의 작가들은 아직도 타자기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펜을 쓰는 사람도 역시 있다.
글을 무엇으로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가장 손에 익은 것으로 쓰는 것이 정답이다.
중요한 것은 글이지 도구가 아니다.
오랜만에 글을 써야지라는 생각에 새로운 필기구를 장만하기 위해서 문방구에 갈 수도 있다.
노트를 새로 사도 좋고 펜을 새로 사도 좋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잠시 기분 전환용이 될 확률이 높다.
평소에 쓰던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노트도 마찬가지다. 새로 노트를 장만할 필요는 없다.
일지를 사용해도 좋고 연습장을 사용해도 좋다.
아니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컴퓨터나 폰을 사용해도 좋다.
어디에 쓰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습관적으로 쓰는 것이다.
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끄적 거린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싶은 대로 몇 자 적어 놓는 것이다.
단 몇 줄의 글인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그 몇 자를 적을 때의 느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것이 글이 가진 힘이다.
글은 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글에 담긴 무엇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손에 주어진 그것으로 몇 자 끄적거려 보자.

작가의 이전글 가깝고 작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