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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Jan 19. 2024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

일하고 돌아오셔서도 집안일을 하시느라 진이 빠지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런 엄마를 힐링시키는 것은 전통 트로트 가요였다. 일요일이면 아침부터 전축을 틀어 놓고 청소하기 바쁘던 엄마와 이불 속에서 더 꾸물거리고 싶었던 우리가 생각난다. 엄마에겐 노동가이면서 상당한 치유력도 있는 것이 바로 노래였다. 귀동냥으로 들은 노래와 박자와 리듬감이 한국의 정서인듯 내게도 익숙해졌다. 산복도로 동네에서 부모님들이 아이의 꿈을 보살필 여력은 그다지 없었다. 주말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는 일은 드물었다. 알아서 커야 했다. 알아서 큰다는 것은 알아서 놀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돈을 잘버는 엄마는 못 되었지만 하고 싶은 걸 하고 즐기는 엄마는 되었다. 경험의 폭이 좁긴 하지만 엄마에게 노래가 있었던 것처럼 내가 만족하는 놀이는 바로 독서다. 치열하게 살되 낭만과 꿈은 가지고 싶다. 그안에서 성장을 추구한다.  내가 그래야 딸도 하고 싶은 걸 해나가는 삶이 될 것 같다. 나를 닮은 집순이 성향보다는 좀 더 외향적인길 바랐는데 이미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나는 유독 책상을 좋아한다.
이것저것 많이 펼쳐 놓아도 좋은 책상을 좋아한다. 수없이 흐트러지고 다시 정리되고 치워지고 쌓이는 책상에서 행복한 놀이 중이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상이 행복의 거점이 되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씻고 나면 우린 각자의 취미생활을 한다. 그러니까 각자 논다. 육아라는 말과 내가 멀어진지는 꽤 오래되었다. 아이가 혼자 먹기 시작하면서 부터 편해지더니 혼자 옷입고 벗으며 세탁실에 넣었다. 잠도 혼자 자기 시작했다. 혼자 머리감고 목욕하면서는 혼자 공부도 했다. 혼자 라면이나 간단 조리도 하게 되었고 부모가 집을 비우게 되는 때가 있어도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혼자 놀수 있다는 것으로 육아를 졸업한 것 같다. 아이는 스스로가 매우 바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가족이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면 포만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밀려든다. 자유시간이 되었다. 아빠는 뉴스, 드라마, 영화를 주로 보고 엄마는 그것을 같이 보거나 책을 읽는다. 아이는 피아노를 치고 게임도 하다가 문제집도 곧잘 푼다. 각자 자기의 일과에 대해 나름의 루틴과 시간 개념이 있다. 자유시간에 대해 아무런 방해도 없고, 눈치 봐야하는 상황은 더더욱 없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해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지 않을까 싶은 시간이다.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셋이서 게임도 하고 야식도 먹고 늦은 밤까지 그렇게 부비고 얘기하며 논다. 놀면서 해온 것들로 초등 5학년 딸은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5개 땄다. 피아노도 재밌어 하고 게임도 상당히 즐긴다. 공부 잘하는 딸보다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통해 잘 노는 딸을 보는 마음이 괜히 다. 딸은 분명 스스로 공부도 챙겨갈 줄 아는 아이다.  해야 할 일과 각자의 욕망이 살아있는 공간에서 억압이 없으니 반항과 저항, 부정적인 말도 필요 없어서 감사하다.



인간을 정의하는 많은 말들 가운데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호모 루덴스를 떠올리게 된다. 인간뿐아니라 동물들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잘 노는 자기만의 방법과 노하우가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고 그것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 차이로 MBTI도 만들지 않았을까. 자기의 본성에 맞게 잘 노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된다. 잘 노는 그 안에 '꿈'도 생겨날 것이기에 잘 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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