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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Sep 05. 2023

산티아고 순례길, 출국 16일 전

D-16 Feat. 배낭 싸기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지인이 백두대간종주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몇 달 쉬고 싶었는데 백두대간종주를 한 번에 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쉬려고 계획했던 기간이 산방기간(산불방지기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좌절했다.(출입이 가능한 등산로가 있겠지만 또 뭘 열심히 알아보고 가는 성격이 못 되어서) 그러다 국토대장정을 완주한 친구가 산티아고순례길을 추천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가(역시나 뭘 열심히 알아보는 성격이 못 되어서) 인스타를 통해 산티아고순례길 완주 경험이 있는 분을 통해 기초적인 정보를 얻고 산티아고순례길이라는 단어를 들은지 15일만에 항공권 발권과 환전을 마쳤다.  


내가 걷게 될 순례길 루트. 최대한 혼자 있는 것이 목표였기에 비교적 덜 유명한 곳으로 골랐다.


포르투갈길 : 리스본 - 산티아고 (약 610km)
북쪽길 : 이룬 - 산티아고 (약 880km)



빼도 빼도 줄지 않는 순례길 짐싸기


짐 싸기의 과정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덜어내고 덜어내기를 반복해도 짐이 좀처럼 줄지 않았다. 3개월동안 지낼 짐을 배낭 하나에 담아야 한다니. 이런 짐을 싸본 적이 없으니 뭐가 진짜 필요한 건지 아닌 건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이것보다 더 최소한 일 수는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안 닫히는 배낭... 가방의 무게는 자기 몸무게의 10%가 가장 좋다는데 나는 4킬로나 초과되었다. 혹자의 말처럼 열심히 먹어서 내 체급을 올리는 것이 방법이려나 싶다.


드디어 짐 싸기 끝!



목소리들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하루종일 마음을 시끄럽게 하는 목소리들 때문에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주일을 보내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이것들이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라고 생각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목소리가 들려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쉼이 필요하구나 생각했다.


쉼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순례길을 선택한 이유는 백두대간종주에 끌린 이유와 맞닿아 있다. 나는 작년에 우연한 기회에 등산을 시작했고 금방 등산의 매력에 빠졌다. 적당히 가파른 산을 오르다 보면 나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이 온다. 내가 지금까지 닿아 본 적 없는, 그리고 닿을 수 있는 최고의 명상의 상태였다. 이번 쉼의 기간 동안에 이 상태에 오래 머물러 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백두대간종주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후 차안을 선택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생각했다.


1. 문명과 사람을 최대한 마주 치치 않는 환경에서

2. 잡생각이 잠식하지 않을 정도의, 하지만 생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적당히 힘든 행위를 지속하자.


살면서 내가 산티아고순례길을 걸을 것이라 상상해본 적이 없다. 우연히 가게 된 순례길에서 또 어떤 우연들을 만날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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