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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Dec 10. 2023

감자탕 김치찌개 삼계탕 찜닭 순댓국

D+60 북쪽길 18일 차 

✔️루트 : Santander -Boo de Piélagos (약 15km)

✔️걸은 시간 : 4시간











가방을 싸고 주방에 나와 아침을 먹은 후에도 하루 더 묵을지 고민을 했다. 11시 체크아웃이었는데 10시 59분까지 결정을 못 했다. 며칠 더 쉰다고 오래 누적된 피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걸어내야 할 길, 조금이라도 걷자 싶었다. 키를 반납했다.


걸으며 엉덩이를 붙일만한 곳이 보일 때마다 멈춰 쉬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도시락으로 싸두었던 오믈렛이 금세 상했다. 가방에 남아있는 유일한 음식인 건조한 
바게트에 초콜릿을 얹어 먹었다. 요즘 유난히 한국 음식이 그립다. 그래 참 잘 먹고살았지.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올레길 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븐일레븐. 씨유. 그립다. 


이제는 노란색만 보이면 다 순례자 표식으로 보인다...


걷다가 한 순례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은퇴를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순례길에 올랐다고 했다. 그도 나처럼 3월 31일부터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집인 노르망디에서부터 걷기 시작했 누적 1200km를 걸었다고 했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3일만 쉬고 계속 걸어왔다고 했다. 


같은 시점에 시작한 것이 반가웠다. '이제 걷기 피곤하지 않냐', '체력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더 피로만 누적되지 않냐' 라며 공감대 형성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아주 괜찮다고 대답했고 실제로도 괜찮아 보였다.  60대의 나이에 대단하다. 나도 그의 나이가 됐을 때 저 정도의 체력이 되면 좋겠다.






나는 오늘 얼마나 걸을지, 어디에서 머물지 정하지 못하고 그냥 무작정 걷고 있었다. 그는 4km 정도 남은 마을의 알베르게로 가고 있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 알베르게가 있다는 이야기는 피곤한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 나도 거기로 갈래!"


자연스럽게 남은 거리를 그와 함께 걸었다. 그는 발걸음이 꽤나 빨랐다. 날도 더운데 말도 하면서 빠른 속도로 걷다 보니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잠시 쉬다 가자…"


벤치에 쓰러지듯 드러누워 포효를 했다. 


"우오오오… 너무 더워!!!"



그늘 하나 없어 더 더웠던 까미노




도착한 알베르게는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너무 예쁜 곳이었다.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이 쉬고 있었다. 일본인처럼 보이는 3명의 동양인 무리가 있었다. 걸으며 동양인을 보기가 힘들기에 반가웠다. 그들은 나에게 일본인이냐 물었다. 알고 보니 우린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 일단 체크인을 먼저 했다. 3 베드룸이었는데 8인 이상이 함께 묵는 도미토리룸에서 묵다가 방 안에 샤워실이 있는 3인실에 묵으니 스위트룸처럼 느껴졌다.


샤워 후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있던 성당에 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스페인에선 걸으며 지나가는 많은 성당 문이 닫혀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성당에 들어가진 않아도 성당 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에 그냥 한 번씩 들어가 보곤 했는데 여기는 다 자물쇠로 문을 잠가 놓았다. 이럴 거면 왜 순례길이지? 산티아고순례길에 종교적 이유로 오는 별로 사람들이 없다는 반증인 것 같다.



햇빛에 휘날리는 순례자들의 빨래들~



오랜만에 한국말로 대화하니 즐거웠다. 그리고 나에게 이 대화는 다른 측면에서도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다. 세 명의 한국 순례자들은 50대로 보였는데 한 명은 순례길 유경험자였고 다른 두 명은 나처럼 처음이었다. 한 순례자는 나에게 하는 대화의 80퍼센트가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유경험자 순례자 칭찬이었다. ‘잘 챙겨준다.’ ‘덕분에~’라며 대화를 이어 나갔는데 분명 말을 하는 눈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말은 내가 아니라 유경험 순례자를 향해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이 말에 내가 호응을 해주는 게 맞는 건지 헷갈렸다. 그 칭찬이 너무 길고 과해서 나중에는 놀리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직장 상사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면 기분 나쁠 수 있겠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 유경험 순례자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활짝 웃고 계셨다. 고령자 띄워주기 대화가 어느 순간 너무 불편하기 시작했는데 한편으론 너무 익숙했기에 재미있었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며 분명했던 대화 방식이다. 말을 하는 사람과 들었으면 하는 사람이 다른 그런 대화 말이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이 순례자는 50대 여성이었는데 그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도 참 흥미로웠다. 지금 문장이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자신의 성향을 방어적으로 설명하는? 겸손을 넘어서 자신을 부정하고 뭔가 나의 눈치를 보며 문장을 수정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이 지점이 재미있던 것은 내가 하던 말들과 참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두 달간 영어로 대화할 때는 하지 않았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이 순례자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남들에게 소개하는 (정의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보게 되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고트치즈를 얹은 샐러드, 돼지고기 스테이크, 아이스크림이었다. 한 테이블에 앉은 순례자들과 테이블보에 그려진 세계지도에서 자신의 나라를 서로에게 보여줬다. 한국은 너무 작아서 모양이 뭉개져 있었다. 우리나라 진짜 작은 나라구나 새삼 다시 느꼈다. 저녁을 먹은 후 순례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방 저녁 10시가 넘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밤 중 잠에서 자주 깬다. 화장실 가느라, 몸의 통증 때문에, 잠자리가 불편해서, 특히 요즘은 기침하다가 깬다. 마스크를 써도 기침을 하길래 오늘은 마스크를 안 쓰고 잤다. 근데 잠에 갑자기 숨이 안 쉬어져서 일어났다. 근데 무서운 건 과호흡 왔을 때 느낌처럼 숨을 들이켜면 가슴에서 꽉 막혔다. 급하게 마스크를 쓰고 다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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