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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토 Sep 22. 2022

같이 별 보러 와줘서 고마워

반짝반짝


4명의 친구 무리가 있다. 3월에 한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4명의 생일이 3, 6, 9, 12월에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분기에 한 번씩 만나서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로 약속했다. 


3월은 공덕의 루프탑 와인바에서 만나 분기모임을 약속했다. 6월은 한 녀석이 약속을 잊고 여행을 가는 바람에 약속이 미뤄졌고 그 미뤄진 약속 날에는 내가 제주도를 가고 싶어서 제주도로 도망가는 바람에 결국 7월에 만났게 되었는데 이태원에서 5차를 달리고 6차로 우리집에서 마무리하는 대여정을 보냈다. 


9월은 내 생일모임이다. 나는 지난 3월 와인바에서 친구들에게 '9월 16일, 강원도 별 보러 가는 날'을 저장해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6개월은 쏜살같이 흘렀고 어느덧 9월이 되었다. 와인바에서 말했을 때는 진심 반, 술김 반 섞인 말이었는데 막상 9월이 되니 조금은 주저하게 되었다. 어느 세월에 별이 보이는 강원도까지 간단 말인가. 막상 때가 닥치니 동네에서 술 한 잔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흔들릴 때 오히려 내 친구 한 명이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술 NO". 나는 한때 술을 싫어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술 없이 친구들과 즐기는 법을 잊고 지내곤 했는데 그 친구의 간결한 말 한마디가 3월 와인바에서의 각오를 되새겨주었다. 퇴근 후 저녁 6시가 되자 친구들이 퇴근 후 우리집에 집결했다. 회사에서 이리저리 고생해서 쉬고도 싶을 텐데도 이 터무니없는 계획에 별말 없이 합류했다.


아 한 명 왜 이렇게 안 와



아, 그런데 이날은 태풍의 영향으로 한반도가 구름에 뒤덮인 날이었다. 난 회사 업무로 위성사진을 종종 보곤 했는데 오늘은 별 보러 갈 지역을 찾기 위해 위성지도를 켰다. 온 대한민국이 구름에 뒤덮여 있는듯했으나 단 한 곳 구름을 비껴갈 것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강원도 태백산이었다. 태백산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동고서저 태백산맥 정도로만 들었지 단 한 번도 갈 엄두를 못 내던 지역이었다. 태백산까지 거리는 200km가 넘었지만, 친구들은 이 말을 듣고 오히려 킬킬대며 이 무모한 여정을 흥미로워 했다. 



유일한 구름 청정지역. 태백산.


우리는 렌터카를 타고 태백산을 향해 달렸다. 중간에 저녁을 먹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는데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아서 라면, 우동, 만두, 돈까스를 시켰다. 소소하지만 오히려 좋아. 오히려 느낌 있어.


오히려 좋아.


차 타고 가는 길 내내 참 소란스러웠다. 노래는 무엇을 들을 것인지, 젤리는 어떤 젤리가 맛있는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어떤 연애를 할 것인지, 소개팅은 어땠는지 등등. 작년 이맘때 혼자서 기차를 타고 고독한 야간산행을 하러 떠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밤 12시쯤 되어서 목적지였던 태백산 만항재에 도착했다. 구름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곳은 구름이 눈앞에서 움직이는 게 보일 만큼 높은 곳이었는데, 그 구름들이 지나가는 사이사이로 별들이 모습을 보였다. 지난 추석 때의 보름달이 아직 아쉬웠는지 반 밖에 안 남았는데도 밝게 빛나고 있었고,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는 곳이었지만, 별은 서울에서는 보지 못한 밝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반짝반짝

무섭긴 하지만 가로등이 없는 어둑한 곳을 찾아 나섰다. 자동차를 타고 조금만 더 가서 가로등이 없는 곳을 찾아냈고 길가에 차를 세웠다. 구름이 오고 가며 좁게 하늘을 보여주었고 그곳에서 우리는 별을 멍하니 바라봤다.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캄캄한 거리였지만, 별 아래서 뉴진스 춤을 추기도 하고 멍하니 별을 바라보기도 하고 카메라에 별을 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기도 했다. 


야간모드 짱짱


서울에서는 퀘퀘한 공기에 가려 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해와 달 그리고 날아가는 비행기 정도만 보인다. 이렇게 먼 길까지 달려와 겨우 찾아낸 별이지만 사실 그 별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요새 기술이 좋아 스마트폰 앱으로 별의 이름을 알아낸다 한들 너무 생소한 이름인지라 다시금 잊어버린다. 그래도 이름 모를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평소에 얽매어 있던 것들이 얼마나 사소하고, 내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지 느낀다. 구름에 가려 보지 못한 별들, 늙어서 더 이상 밝게 빛나지 못해 내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별들도 제각기 수십억 년의 사연을 담고 있다. 아등바등 사는 일백 년짜리 현생이 작고 미천해 보인다. 


내일 월요일이 되면 날 당황하게 만드는 일들이 닥쳐오겠지만 그 또한 이 우주에서는 먼지만큼도 못한 작고 귀여운 해프닝이다. 뭐 이렇게 말은 하지만 막상 내일이 되면 또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 내쉬는 날들을 보내겠지. 그래도 이 큰 우주의 지구를 밝히는 작은 일원임에 감사해야지.


별을 보고 돌아오는 길, 친구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떡끄떡이며 졸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긴 밤을 함께 보내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산 길을 나름 안전하게 운전하는데 친구 한 명이 조심히 운전하라며 잔소리를 했다. 잠이나 자라 똥쟁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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