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30일. 각각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인 하연이와 서연이와 나는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5년반을 살다가 귀국한 지 정확히 3년이 지난 후에 우리는 다시 국제공항 출국장 앞에 선 것이다. 두근거리고 들 뜬 마음을 겨우 꾹 누르고 있었다. 혼자 두고 가는 아내에게 미안했기에. 물론 우리의 출국은 장기 이민이 아닌 18박 19일간의 유럽여행을 위함이었다.
[여권과 보딩패스를 손에 쥐고 출국 전에 둘째 서연이와 한 컷]
왠 유럽여행?
직장에서의 다른 일정을 위해서 조금씩 저축하고 있었는데 그 일정이 취소가 되어서 약간의 공돈이 생겼다. 물론 두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정확히 240만원. 다른 곳에 사용하면 유용할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귀국 후 한국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흔한 영어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영어로 말할 환경이 전혀 없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무엇인가를 보상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중학교에 진학하면 좌우로 눈 돌릴 틈이 없을 것 같은 큰 딸 하연이와 둘이서 가는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전체 여행 계획과 노선은 내가 정하지만, 가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길을 묻거나 하는 일상은 하연이가 영어로 소통하며 헤쳐가는 일종의 학습여행이었다. 아내도 흔쾌히 찬성해줬다. 그런데, 유럽여행을 조사하다보니까, 둘째 서연이가 간다면 교통비나 입장료에서 무료인 곳이 많아 보였다. 안 그래도 언니하고만 여행가면 불만이 많았을 것 같았는데 항공비와 몇몇 일정 비용을 제외하면 크게 추가되지 않을 것 같아서 서연이도 같이 가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렇게 아빠와 함께 하는 두 딸의 유럽여행이 계획되기 시작했다.
겨우 240만원으로 유럽여행을 간다고?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앞 뒤 없이 무작정 덤벼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철저히 조사하고 계획하는 편이다. 240만원으로 세 명의 유럽여행은 절대 불가능하다. 우린 오랜 유학생활로 모아 둔 돈도 없다. 나와 아내의 재정에 대한 가치관이나 형편을 따져보면 유럽여행은 터무니없는 계획이었다. 빚을 내거나 무리하지 않고 어떻게 비용을 마련할 것인지 여러모로 고민했다.
일단 한국-유럽 이동간의 항공비는 최대한 조사해서 한국-영국, 로마-한국의 일정으로 세 명 항공비(아랍 에미레이트 항공) 2,855,700원에 예약할 수 있었다. 영국으로 가면서 두바이에서 스탑오버로 22시간동안 체류 가능한 항공편으로.
여행일정은 거리, 운송수단, 방문지들을 계산해서 총 6개국 9개 도시 방문을 계획했다. 한국 - 두바이(UAE, 스탑오버)- 런던(영국)- 옥스포드 (영국), 파리 (프랑스) - 뭔휀 (독일) - 비텐베르그 (독일) - 프라하 (체코) - 베네치아 (이탈리아) - 로마 (이탈리아) - 한국.
[6개국 9개 도시 방문 스케쥴]
국가 및 도시간 이동은 항공편과 유레일을 겸하도록 계획했다. 한국-유럽간 항공비의 반은 카드할부로 돌리고, 나머지 항공비 반, 유럽내 이동비, 숙소, 식사, 최소 관람비를 산정해서 대략 예산을 짰다. 항공비 지불 후 남은 금액, 아이들을 위한 여행이므로 본인을 위한 재정참여 의미로 명절용돈 통장에서 조금씩 인출한 금액, 그리고 적금 조금 든 것 깨고 받은 금액, 남은 기간의 약간 저축금, 여행기간동안 아껴질 8월 생활비 등을 합산을 해서 예산을 짰다. 그래서 카드할부로 돌린 항공비를 제외한 총 500만원의 예산으로 세 명의 18박 19일간의 6개국 9개도시 유럽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금액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세 명이 이 일정의 유럽여행을 하기에는 그냥 봐도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이 금액으로 이 일정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제 출발합니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준비했다. 아빠 손에 이끌려 가는 여행이 아니라 주도적인 마음으로 여행에 임할 수 있도록 했다. 둘이서 각 나라별로 사전 조사하고, ppt를 작성해서 나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여행 중에서 스스로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식당이나 여러 장소에서 계속 영어로 소통하는 학습여행임을 강조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전의 하연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전의 서연이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렇듯이 인천 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우리 역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공항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될 시작점이다. 여행자들은 공항에 들어설 때부터 이동하게 될 다른 장소에 대한 기대감, 그 곳에서의 스케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특히 여행을 목적으로 갈 때는 더 그런 것 같다. 우리 세 명의 얼굴에서도 그런 기대감과 흥분이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