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꿈.

15.

by 시기화

요 며칠째 어떤 꿈도 꾸질 않았다. 문을 열고 불쑥 찾아오던 꿈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모습을 감췄다. 나는 왜 눈을 감으면 그 꿈이 항상 맴돌 것이라고 생각했던가.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다시는 그 꿈을 꾸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엄습하자 심장부터 허벅지까지 찬기가 퍼졌다. 이 기분 분명히 어딘가에서 겪었던 기분이었다. 어디서였지? 찾아보려고 해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마치 물속에 손을 넣어서 송사리 떼를 잡으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나는 기약 없이 머릿속만 휘저었다.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하니 시간은 오후 열한 시 사십이 분이 지나고 있었다. 두 눈은 선명해지고 잠은 도저히 오질 않아서 겉옷을 걸치고 집 근처 오육분만 걸으면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우두커니 불빛을 비추고 있는 공원 가로등을 보았다. 가로등빛은 내 마음도 모르고 보름달처럼 밝게 빛났다. 늦은 밤이라 사람은 한 명도 지나가지 않았다. 근처 가게의 간판은 진즉에 내려갔고 저 멀리 편의점 간판만 나뭇가지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나는 어느 책에서 말했던 세계의 끝에 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갑자기 울컥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한숨 나왔다. 나는 되뇌었다. 지금 어디에 있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냐고. 대체 나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몇 번이고 나에게 소리 없이 질문을 했다. 내가 원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단지 운명 같은 우연을 원했다. 밖으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길이 있어서 그대로만 걸어가면 되는 그런 것. 잔혹한 숙명이어도 좋았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원인 모를 꿈. 그 마저도 희미해진다. 가만히 숨죽이고 있노라니 갑작스레 어릴 적 기억이 났다.


초등학생이었고 1학년이었다.

학교생활은 언제나 추웠다. 내가 인기가 많은 타입도 아니었고 머리도 나빠서 시험은 항상 꼴찌였다. 나는 볼품없이 초라한 탓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항상 무시를 당했다. 선생부터 머리가 좋은 학생을 더 편애했다. 하루는 선생이 종례시간에 만들기를 한다고 집에서 안 쓰는 상자를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혹여라도 잊을까 봐 그날 바로 집에 가자마자 있는 과자상자를 찾아서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평소에 머리가 좋아 선생이 이뻐하던 애가 실수로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애는 가져온 친구들에게 준비물을 하나씩 달라고 하더니

오히려 전날 미리 준비해 온 사람보다 과자 박스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만들기 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씩 받은 것들로 망원경을 만들어냈고 선생은 그것에 대해 입이 닳도록 칭찬을 했다. 전날 준비물을 챙겼던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애들은 정해진 것처럼 어떤 행운이 몸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양이다. 같은 반 친구도 그를 좋아해서 준비물을 하나씩 주었을 것이다. 내가 가져오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마치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특별함이 항상 따라다녔다. 이건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살아오면서 느낀 어떤 현실이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나는 현실을 어떨 땐 부정한다. 왜일까? 나도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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