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카운터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네시가 지나고 있었다.
오늘은 예약도 거의 없고 손님도 다른 날과 비교하면 많지 않았다. 밖에서는 칼바람이 부는지 입구에서부터 무언가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모텔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아도 정확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밖은 아침과는 다르게 날씨가 길 잃은 새떼처럼 매서웠다. 찬바람이 라운드넥 사이로 들어오자 몸서리가 쳤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문을 닫고 카운터로 들어가서 담요를 덮고 키홀더 개수를 확인하고 물을 마시고 가만히 앉아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멍하게 있은지 십여분 뒤에 한 커플이 반납함에 키홀더를 두고 나가서 청소부가 쉬고 있는 객실로 전화를 걸어 202호를 청소해 달라고 말했다. 이십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청소를 담당하는 50대 중년 여성이 청소를 마치고 카운터 옆에 놓아둔 믹스커피를 타 마셨다. 그러고 나서 내게 말했다.
"오늘은 조금 한가하네요. 다른 때 같았으면 이럴 여유도 없었을 텐데."
"날이 추워서 그런가 봐요." 내가 말했다.
"추운 날에는 여행을 가야 하는데." 그녀는 허공을 보며 상기하듯이 읊조리며 말했다. "어디 여행이요?""국내든 해외든 어디든이요. 여행을 가서 방을 잡고 근처 편의점에서 먹을 걸 사들고 와서 창문을 열고 풍경을 보면서 컵라면을 먹고 밖으로 나가서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거죠. 골목길이나 사람들 생김새나 분위기 같은 것들을요."
나는 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저는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얼마 없어요. 여행을 가면 뭔가 두려워요. 고립된 것처럼 갑자기 뚝하고 떨어진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멀리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친구들이 여행 가자고 할 때는 거절하겠어요. 제 친구들은 가정이 있는 아줌마들이라 같이 가자고 해도 항상 가족들 때문에 못 간다고 해요. 저는 지금은 혼자니까. 그런 것에는 자유롭죠. 일이야 뭐 쉬는 날에 다녀오던가 그만두는 텀에 다녀오던가 시간을 만들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가능하죠. 중요한 건 돈만 있으면 돼요. 여행비." 그녀는 말을 마치고 활짝 웃어보았다. 그러고 나서 커피를 다 마셨는지 종이컵을 구겨서 버리고 쉬는 곳으로 들어갔다.
아르바이트 교대를 하고 집으로 가기 전에 근처 카페에 들러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생크림이 얹어진 와플을 주문했다.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테이블에 앉아있은지 얼마 안 되어서 음식이 나왔다. 천천히 와플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여자 두 명이서 날씨가 춥다고 말하면서 남자얘기를 했다.
단발머리의 나비모양 은귀걸이를 낀 여자가 말했다. "오늘은 남자친구 안 보기로 한 거야?"
그러자 머리를 묶은 여자가 맞은편에서 말했다. "응, 오늘은 감기기운이 있다고 집에서 쉬고 싶대. 너는 소다 몇 시에 보기로 했어?" "나 너랑 얘기하고 헤어질 것 같으면 부르면 돼. 근데 너 남자친구 사실 다른 약속 있는 거 아니야? 저번에도 아프다고 해놓고 친구들이랑 클럽 갔었다며 어떻게 들켰다고 했더라? 실수로 전화를 받았다고 했나." "오늘은 진짜일 거야. 목소리가 반쯤 썩은 목소리거든 통화해 보니까 이건 흉내도 못내. 꾸밀 수도 없고. 새벽에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봤는데 클럽소리가 나서 나한테 들켰지. 그러고 나서 다음날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계속해서 비니까 용서해 줬어."
"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는 거야. 남자는 믿을게 못돼. 전부터 네 남자 친구 분위기가 이상했어. 잘생겼는데 뭔가 사기꾼 같았어. 말투부터. 내가 항상 말하잖아 사람 관상은 과학이야. 물론 겪어봐야 아는 게 있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어. 이건 무시하지 못해. 관상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야." 그러자 머리를 묶은 여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관상은 뭐래? 사람들이."
"지금 그게 왜 나와. 중요한 건 네 남자친구가 이상하다는 거야." "너랑 사귀는 것도 아닌데 왜 네가 난리야. 일이 터진 것도 아니고 가만 들어보면 꼭 말싸움하자는 사람처럼 물어뜯는 것 같아." 머리 묶은 여자가 살짝 화가 났는지 발끈한 뒤로 그들은 말없이 커피만 마셨다. 순간 카페의 공기가 다른 결로 바뀐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다 먹은 와플을 치우고 그들의 얼굴을 한번 더 훑고 밖으로 나갔다. 참. 저럴 거면 뭐 하러 만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