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나빠진 이유

by 시기화

어릴 때 TV를 가까이서 볼 때면 부모님이 눈 나빠진다고 뒤에서 보라고 하던 말이 떠오른다.

물론 그때는 눈의 소중함을 몰라서 그런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도 잠깐 TV와 눈 사이가 멀어질 뿐. 금세 원위치로 돌아갔지만 안경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자면 그때가 그립지 않을 리가 없다.


안경이 없다면 집 앞 도 나가질 못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프린트기에서 금방 뽑은 유인물에 물 한두 방울 떨어트리면 잉크가 번질 텐데 그것처럼 모든 것들이 선명하지 않게 보인다.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지만 안경을 분실하거나 파손되면 그날은 아마 최악의 날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어렸을 적에 나는 평생 안경 따위는 쓰지 않을 줄 알았다. 초등학교를 갈 때면 저 멀리 있는 차 번호판까지 선명하게 보였고 교실 칠판에 적힌 건 말할 것 없이 맨 뒷열에 있어도 잘 보였다. 오히려 안경 쓰고 다니는 친구가 부러웠다. 왜 안경을 쓰고 다니는 친구가 더 멋있어 보였을까? 아마도 안경의 고충을 몰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막상 써보면 바지 위에 속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하다. 적어도 일주일은 지나야 그 감각에 익숙해진다. 또 안경 쓴 채로 거울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이 거울에 비치고 있다. 이 모습 또한 몇 주는 봐야 익숙해진다. 처음 쓴 안경을 생각하면 대부분 내 말에 동의하지 않을까?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나는 시력이 한순간에 나빠졌다. 가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초등학교와 집이 멀기에 커다란 횡단보도를 두세 번 건너서 꼭 은행 건물을 걸쳐서 집에 가야 했다. 그날따라 바람이 세게 부는 것이다. 나는 어딘가로 피신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눈에 띄는 건 그 은행 건물뿐이었다.(거짓말이 아니라 힘을 빼고 있으면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거센 바람이었다. 진짜! 더욱이 키 작은 초등학생이면 말 다 하지 않았는가.) 겨우겨우 거센 바람을 이겨내고 비를 피하려고 개구리 집에 들어간 들쥐처럼 은행 건물 뒤에서 숨죽이고 옷 속으로 고개를 파묻고 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는데 건물 뒤편 아래에 있는 작은 텃밭 안에 클로버가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쪼그려 앉아서 네 잎클로버를 찾으려고 클로버를 손으로 쓸어내리는 순간 바람이 불며 클로버 안쪽에서 어떤 씨앗인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게 눈으로 들어갔다. 나는 재빠르게 눈을 손으로 쓸어내렸지만 이물감은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에 걸쳐서 시력이 점차 떨어졌다.


아직까지도 나는 그게 뭐였는지 궁금하다.

어떤 씨앗의 종류인 건지 아니면 곤충의 침인 건지 어쨌든 그런 사연으로 시력을 잃었다. 아마 믿지 않을 사람도 꽤 많겠지만. 100% 사실이다.(약간의 기억의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전자기기와 거리가 가깝다면 거리를 두고 읽길 추천드린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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