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푸레한 산속의 까마귀 소리

by 시기화

어릴 적 산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기억나는 그때의 감정은 아직 고스란히 갈변 없이 나뭇잎에 겹겹이 싸여있는데 생각난 김에 조심스럽게 열어보려고 한다.


여름에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 친했던 친구가 자신과 산에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었다. 날짜는 기억나진 않지만 토요일이었고 그날은 공휴일이었다. 주말에 딱히 뭘 할 게 없던 터라 알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세히 듣고 보니 우리 둘만 산에 가는 게 아니라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서 만든 자잘한 행사로 교회 안에서 같은 또래 몇 명이 모여 산을 오르기로 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같이 갈만한 친구도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 꼬임에 넘어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산을 올라서 얻을게 뭐였을까 싶지만. 아마 교회에 다니라는 포교활동이지 않았나 싶다.


그날 나는 옷을 입고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갔는데 처음 보는 또래 친구들이 대여섯 명 모여있었다.


원래 누군가와 친해지는 속도도 느리고 말수도 없던 터라 많이 어색해하고 있는데 같이 가자고 제의한 그 친구는 나만 빼놓고 교회친구들과 어울렸다. 나는 뒤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겨우 따라가고 있었다. 속으로 나를 골탕 먹이려고 같이 가자고 했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집에 간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 거기엔 초등학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인솔자가 한 명 있었는데 20대 초반 남성으로 기억한다. 그 사람은 주로 앞에 서서 길을 안내했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들은 산으로 향하는 걸 멈추고 중간에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챙겨 오라는 소리도 듣지 못해서 먹을 게 없자 그 친구들이 먹을걸 하나둘씩 나눠주어서 배를 채웠던 기억이 난다.


어떤 곳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걷자 산이 나왔다. 나는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 후회스럽고 화가 났다. 여전히 그 친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 두었다. 우리들은 그 인솔자를 따라서 한 줄로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자기들끼리 떠드는 모습에 나는 먼저 앞으로 가 혼자 산을 탔다. 목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나는 무턱대고 앞서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빨리 집을 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모르겠다. 나는 산을 타다가 어느새 혼자가 됐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산은 고요했고 나무사이를 헤집고 나오는 바람 소리는 기괴했으며 멀리서 들려오는 까마귀소리는 나를 웅덩이 속에 떨어드려 놓았다. 분명 어떤 게 나를 보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초저녁으로 접어들자 파스텔톤 하늘은 어슴푸레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곳은 몇십 분간 인적이 없었다. 나는 어느 쪽에서 걸어왔는지 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어느 쪽으로 걸어 나가야 하는 것조차 정할 수 없었다. 그곳에 서서 주변을 볼 뿐이었다. 혹여나 호랑이가 나온다면 나는 이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나를 동굴 깊숙한 곳으로 데려갔다. 나는 멈춰있을 수 없기에 길로 보이는 곳으로 나아갔다. 몇십 분간 걷자 드디어 사람이 보였고 두 갈래 길이 나왔다. 한쪽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곳이었고 한쪽은 산 정상으로 향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게 싫어져 산 아래로 향하는 길을 택하고 빠르게 내려갔다. 그러고 나서 겨우 버스 정류장을 찾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하늘이 어둠으로 깔리고 나서야 집에 도착했고 나는 거실 바닥에 손과 발을 벌리고 누워서 산속을 생각했다.


한두 시간이 지나자 그 친구가 집을 찾아왔다. 그러고 나서 나를 다그쳤다. 책임감도 없이 너 먼저 집에 갔냐고 우리들은 다 너를 찾으며 산속을 헤집고 다녔다고 아래에 그 인솔자가 너를 보고 싶어 한다면서 나를 아래층으로 데려갔다. 그 인솔자는 나를 보고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다음부터는 말하고 가달라고 부탁하고 그 친구와 가버렸다.


그들은 나를 엄청나게 무책임한 애로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도 산을 혼자가지 못한다. 모든 게 둥글게 돌아가던 그때의 고립이 자꾸 생각이 나서. 혼자 가면 산은 나를 그 상황으로 다시 데려다 놓으며 그때의 어둠 속으로 동화시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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