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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Oct 12. 2023

나의 작은 영웅, 그 이름 아버지

"아들! 아빠 들어갔다 올게!"

“아들~ 바구니에 옷 좀 줄래?”     

“네, 아빠~ 여기요.”     


주말 오전, 따사로운 햇살이 하얀 구름을 타고 내려와 세상에 온기를 조금씩 불어넣고 있다. 눈썹을 간지럽힐 정도의 미세한 바람은 무겁게 널려있는 빨래의 건조를 거들고 있고, 바가지 머리를 한 일곱 살 소년은 작은 손으로 아빠의 빨래 널기를 거들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반바지 차림에 대충 신은 슬리퍼. 늘어난 민소매티를 입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꼬마 패션이다. 이에 질세라 마치 사각 트렁크 팬티 같은 큰 반바지를 입고 구멍이 숭숭 뚫린 '러닝'(이라 불렸던 속옷)을 입고 빨랫줄에 옷을 척척 널고 있는 남자는 꼬마의 아버지다.


“아빠, 이것도 받아주세요.”     

“어~ 고맙다 아들~”     


얼마 전 두 남자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10평  안 되는 작은 집이었는데, 주인집에 딸려있는 집이라 주인집 옥상을 이용해 빨래를 널 수 있었다. 문은 따로 없지만 주방 옆으로 몇 발 걸어가면 화변와 수도꼭지가 있어 집 안에서 씻을 수 있는 화장실도 있었다. 안 방과 주방이 따로 있고 쪼그려 누울 수 있는 방도 있어 꽤 구색을 갖춘 집이다. 작은 방은 대학교를 다니는 엄마의 막냇동생, 삼촌이 사용하기도 했다.


빨래를 널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치 빨래 널기 국가대표라도 된 것처럼 호흡을 척척 맞춰가며 신나게 널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탁 트인 하늘은 마치 오늘 이곳 주변으로는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때였다!


“아빠, 저거 검은 거 연기 아니에요?”


남자의 뒤로 거뭇거뭇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잇? 저기가 어디지?”


연기는 어느새 주변 건물보다 더 높게 치솟고 있었다.  남자는 “화재 같은데... 어디지...?라며 혼잣말을 하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빨랫감을 바구니에 집어던지며 말했다.


“아들! 화재가 발생한 것 같아. 너는 아빠 따라오면서 사람들이 지나가면 불이 났다고 알려드려 알겠지?”


“...? 네? 네? 네! 아빠”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등 뒤의 연기를 목격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옥상 계단을 빠져나가기까지 30초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남자는 집 안으로 들어가 빨간 소화기를 하나 들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심장이 쿵쾅거리며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아빠를 따라가는 작은 꼬마는 아빠를 놓치지 않으려고 슬리퍼를 신은 채로 열심히 내달렸다.


좁은 골목을 지나 약 100여 미터 정도를 달리니 큰 도로가 나왔다. 남자는 다시 한번 따라오는 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화재 위치를 대략적으로 특정한 것 같았다.           


“아들! 코너에 있는 자동차 대리점에서 불이 난 것 같으니까, 주변에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어른이 있으면 소방서에 신고를 해 달라고 해. 전화번호는...”          


이미 전화번호를 여러 차례 교육받은 아들은

“아빠~ 번호 알고 있어요! 신고하고 따라갈게요!”

“알았어~ 소화기 있으면 빌려와!”

“네! 소화기도 챙겨 드릴게요!”           


1990년대에는 화재, 구조, 구급 등 각종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지역 소방서에 전화해 신고를 하곤 했었다. 그래서 남자는 아들에게 위급한 상황에서 빠르게 신고할 수 있도록 평소에 소방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한 것이다.           


반바지에 축 늘어진 러닝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대리점으로 들어선 남자를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한 손에는 빨간 소화기마저 들려 있으니, 뒷걸음질을 치는 직원도 있었을 것이다.           


숨을 몰아쉬며 남자가 말했다. “여기! 여기... 후... 후... 그... 뒤로 나가는 문이 있습니까?”


놀란 직원들 사이로 나름 침착함을 유지한 직원 한 명이 말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문이요?”

“아, 네 여기 건물 뒤로 불이 크게 난 것 같습니다. 건물 뒤에 좀 확인해야겠습니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직원은 건물 뒤편으로 이어지는 문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깁니다!”          

“아, 고맙습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남자는 문을 열자마자 내부 확인한 후 다시 곧바로 닫았다.


자동차 대리점 뒤 편에 있던 창고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고, 화염과 연기는 최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참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여기, 직원분들 다 나가 계시고 소방차가 오면 안내만 해주십시오”

“네, 네”

짧게 대답한 직원들 건물 밖으로 모두 대피하자 남자는 숨을 크게 한 번 몰아쉬며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주말 오전, 밀집되어 있는 주택과 상가건물들 한가운데에 있는 창고에서 시작된 불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검은 연기 하위로 쭉쭉 뻗어 올라갔지만 특히 가까이 지나다니는 행인들의 시야에는 잡히지 않았다.


무언가 타는 냄새는 나지만 요즘처럼 가스 냄새만 맡고도 신고를 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기에 신고는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119'를 떠올리는 사람도 거의 없던 시절이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의 바로 옆 건물 1층 상가 주인도 그러했다. 부채를 연신 휘두르며 밖을 바라보던 주인아저는 자신의 가게에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남자아이를 보며 놀라고 말았다. “무슨 일이니 얘야”, 숨을 급하게 몰아쉬던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소방서에 전화 좀 해주세요! 그리고 소화기 하나만 좀 빌려주세요” 옆 건물에 불이 났는데 아빠가 들어갔다는 사정을 이야기했고, 주인아저씨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주었다.     

      

아이는 소화기를 받아 들고 자신의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건물 내부에는 창고에서 침투해 들어온 시커먼 연기가 천장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문이 열렸다. 화염과 연기, 하얀 소화약제가 뒤섞인 공간에서 시커멓게 얼굴이 위장된 사람 한 명이 빈 소화기를 내려놓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나왔다.    

      

아이의 아빠였다.       

   

먼저 가지고 들어간 소화기 한 대를 막 소진하고 다음 소화기를 가지러 나오는 길이었다. 멀리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 119 신고했어?”

“네!”

“그럼 그 소화기 문 앞에 갖다 놓고 다시 나가 있어. 아직 불길이 좀 남아서 다 잡고 나갈게”

“네, 아빠”           


화재현장의 뜨거운 열기와 숨 막히는 가스, 연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리 없는 아이는 시커멓게 그을린 아빠를 바라보며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윙~~~~~~~ 빵! 빵! 위~~~~~~~잉’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빨간 소방차 여러 대가 현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아이는 손을 크게 흔들며 ‘여기요~ 여기요~’하며 자신의 아빠를 구해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소방차를 바라보았다.           


대리점 창고에서 막 2차 진화를 끝낸 남자는 아들이 가져다준 소화기를 마지막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 번 더 진입했고,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즈음 남자는 드디어 대리점 밖을 빠져나왔다.


고통스러운 마른기침을 하며 온몸이 땀에 절어버린 남자는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하얀 이를 내보이며 대원들을 향해 웃었다.           


“아이고~ 고생 많으십니다~ 본서 장비계 OOO입니다.”     

“어잇? 반장님 들어갔다 오신 겁니까?”     

“아~ 예예, 이제 막 다 끄고 나왔습니다. 한 번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다행히 한 사람의 인명피해도 없이 화재현장은 빠르게 진압되었다.


어느새 현장 주변으로 모여든 구경꾼들과 소방차, 소방대원들 사이로 호탕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남자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아들을 찾아낸다.           


“아들? 고생했다. 집에 가자 이제”     

“네, 다 끝난 거예요?"

"응, 이제 소방관 아저씨들이 왔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실 거야."

          

100m 밖에 되지 않는 두 남자의 귀갓길이 1,000km처럼 느껴졌다. 안에 상황은 어땠는지, 어떻게 불을 껐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이따 여쭤보기로 했다. 꼬마는 빈 소화기를 무심히 흔들며 걸어가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멋진 소방관이 될 테야’




그리고 약 20여 년 후...          


소년은 바람대로 소방관이 되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2017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소방관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갔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쓰던 사물함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나보다 남을 위해, 어려운 사람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남자는 현재도 고향마을의 발전과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방관이라고 해서 크게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숭고한 직업정신과 사명감으로 근무하는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그 어떤 일도 천하다 여겨지는 것이 없으며, 그 어떤 일도 특별히 귀하다 여김 받는 것도 없을 것이다.

 

소방관들은 영화 속 베트맨도... 슈퍼맨도 아니지만, 그저 늘 주변을 살핀다. 재난상황을 접하는 것이 일이라면 일이라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선배님들 말씀으로는 상가에 가면 비상구부터 찾아놓고 볼 일을 본다니 말이다. 하지만 장비나 경험, 문제해결 능력이 없이는 함부로 달려들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다.


소방관의 안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남자'의 관한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한 통 왔다.


"아들 오늘 일 하는 날이야?"

"네? 아, 아뇨~ 오늘 쉬는 날이에요. 내. 일. 출. 근"

"그래? 아빠가 보 영상 봤어?"

"네네~ 그, 코스모스요? 엄청 많이 피었던데요?"

"시간 나면 한 번 보러 와라~ 사진 찍어서 홍보도 좀 해주고"

"이번주에 콩쿨에다 애기 운동회다 너무 바빠서, 다음 주에 바로 들를게요"

"바쁘네~ 그래 다음 주 보자"

"네, 아빠~"


마을에서 문화해설사를 하고 있는 나의 작은 영웅,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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